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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12. 2024

마음이 아프지 않게

마음을 살뜰히

두 해 전쯤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인도인인데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연구소에 들어가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 때는 어딘가 모르게 주눅 들어있고 이방인으로서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었는데, 졸업과 함께 취업하고 나니 신수가 아주 훤해졌다. 그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은 자유롭게 흐트러진 머리털과 콧수염에서도 드러났다. 수염에 음식물이 묻을까 수시로 입을 닦으며 말하는 네가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화가처럼 베레모를 써봤다. 살짝 각도를 틀어 눌러썼을 때 구레나룻 길을 따라 자라난 머리털 덕분에 머리가 민망하지 않았다.

오랜만의 인도 음식 앞에서 식욕이 났다. 인도 음식이 좋아 인도로 허니문을 떠났던 내가 아니던가. 오랜만에 먹는다며 인도식을 반기던 친구는 의외로 소식을 하였다. 음식을 더 권하는 내게 자기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간 깜빡 잊고 있었다. 친구는 채식을 하며 새벽마다 요가로 아침을 여는 좋은 루틴이 있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참 많았을 한국에서의 학생 시절은 어쩌면 요가를 통해 내면을 살피고 다독이면서 견뎌 온 것으로 보였다. 인도의 요가원에 들어가서 지내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던 그의 반응에 놀랐다. 요가는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것이지, 지금 현실을 도피하듯 인도에 날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에 격하게 끄덕였고 그의 생각과 정신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질병으로 인한 아픔은 고칠 수 있고 방법도 많아. 내가 네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걱정한 건 네 몸이 아니라 네 마음이었어. 몸의 아픔이 마음의 아픔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고마웠다. 몸의 아픔은 적당히 고비를 지나갔으나 문득 밀려오는 불안과 공포에 내 마음은 여기저기 뜯기고 찢어진 상태였다. 겉모습을 돌보고 모자를 쓰고 미백크림을 발랐지만 단 한순간 속을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쿵쾅 뛰는 심장 박동에 놀라서 깨는 것도 내 마음의 불안이 컸기 때문이었다.


날뛰는 마음을 명상으로 잡아보지만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검은 공포가 자주 나를 떨게 했다.

검진일, 이름이 호명되고 들어간 진료실에 "좋네요. 6개월 후에 오세요." 자료를 다 살펴보고도 10초밖에 안 걸리는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잠 못 이룬 밤이 오래다. 의사의 진료가 짧으면 짧을수록 하늘에 더욱 감사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만큼 무심했던 작은 혹이 잇몸 안쪽으로 느껴졌다. 유방암 발견 시에도 촉진으로 발견했던 것을 기억하면 혀끝으로 느껴지는 이물감에 안심할 수 없었다. 중국 병원으로 갈까 국제 병원으로 갈지 잠시 고민을 했다. 중국 병원으로 가면 진료비는 18위안(한화 3000원) 가량에 짧고 명료한 진료가 될 것이고, 국제 병원에 가면 700위안(한화 14만 원)에 친절하고 자세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의료 기술이 선진화되어 어느 곳의 진료가 더 정확할지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어느 쪽을 더 원하냐는 것이었다. 그 사이 뾰족해진 불안으로 흐트러진 마음은 기꺼이 차액을 지불하기로 정한다. 일반 의료말고 의료 '서비스'에 기대면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주름 잡힌 흰 가운에 방호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한 깨끗한 의사는 혀 밑을 살펴보더니 설소대 구조 안의 정상 조직이라고 했다. 사진 찍어서 정확히 보면 안 되겠냐는 내 말에 의사는 CT를 권유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와 태도가 정확히 NO를 표하고 있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지레 겁을 먹고 확대 해석을 한 탓에 의사의 진단이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CT를 찍고 조직검사를 해야하는 게 맞게만 여겨졌다. '이상소견 없음'이라는 진단서가 후련하지 않고, 내 마음이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이러니컬했다. 내 마음은 자꾸 원치 않는 방향에서 원하는 것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날의 인도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중요한 건 마음의 아픔이다. 좋게 말해 건강전도사지,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어버린 나는 이 뾰족하게 자라나는 마음의 아픔을 매일매일 사포로 일삼아 닦는다. 금세 자라나 버린 두려움 앞에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로 약을 치고 윤을 낸다. 마음의 아픔을 무작정 덮어두지 않고 자주 들여다보며 살뜰하게 살핀다. 요가를 다시 시작하며 나대는 마음을 잠시나마 진정시켜보려 한다. 하루의 노력이 쌓이면, 인생은 알아서 흘러갈 것이다.


날씨가 찬란하다. 이해인 수녀님의 책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들으며 한 시간을 걸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과 불안과 공포, 마음의 아픔을 안고 있던 한 사람으로서 보내주는 그녀의 공감이 오늘은 따뜻한 이불이 되어 이 뾰족함을 감싸준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그녀의 글 안에서 이 세상 각진 것들이 다 누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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