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 접은 나의 마음 당신에게 전해지길
어느 항공사 승무원의 일상 에피소드를 읽다가 발견한 그들의 웃픈 사연에 웃음이 터졌다. 직업 특성상 본인이 어느 나라 어디에 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을 때가 있어 장소를 명기하지 않은 것도 이미 웃픈 일이었다. 그녀는 한 식당에서 화장실을 이용한 후에 습관적으로 휴지 끝을 세모로 접어 놓고 나왔다고 한다. 그녀 다음으로 화장실을 이용한 식당 사장님이 그녀의 화장실 매너에 감동하여 기어이 그녀를 찾아내 감사인사와 감사음식을 건넸다고 했다.
세모나게 끝을 접은 휴지는 호텔에서 청소가 완료되었다는 뜻의 의미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표시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행위는 기내나 고급 식당 등의 화장실에 보편화된 화장실 매너로 자리 잡았다. 뾰족하게 접어 놓은 끝부분으로 이용자는 휴지 끝을 찾기 쉽고 이용하기 편하며, 한편 귀하게 대접받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 휴지 삼각형 접기가 살짝 주춤했다. 다른 이가 쓸 휴지를 미리 누군가가 손을 댄 것에 대한 반감이 생겨서이다. 삼각 접기를 가장 처음 시작했다는 일본에서도 제발 삼각 접기를 하지 말라는 문구가 화장실에 붙어있곤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다시 삼각 접기가 눈에 띈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위생을 염려한 누군가에게는 환영스럽지 않다.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생각의 회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누가 접어 놓고 간 휴지가 좋다. 다음 사람을 위한 그 사람의 예쁜 마음이 감사하고, 그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아서 감사하다. 정성 들여 접은 휴지를 쓰는 기분은 내겐 결코 나쁠 수 없는 기분이다.
누군가 빌려갔던 내 스카치테이프를 내가 이어서 사용하려 할 때, 그가 접어 놓은 삼각형이 고맙다. 그 끝을 찾아서 손톱의 날을 세워 한 바퀴를 돌지 않아도 되는 그의 사려 깊음에 감동한다.
돌봄과 배려는 휴지나 테이프 끝처럼 구석진 곳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잘 보이지 않으며, 그래서 쉽게 할 수 없으며, 너무 소소해서 감사할 타이밍을 찾기도 애매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상대를 위한 선한 마음이 없다면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이다. 내가 쓸 휴지를 누가 미리 만졌다거나, 테이프가 낭비되게 접어놨다는 생각의 시작은 좀 싸늘하다. 호의도 받아들일 사람에게 골라서 해야 할까. 위생이 마음에 정 걸리면 공용 화장실의 휴지를 쓰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본인 휴지는 본인이 챙겨 다녀야 한다. 코로나 특정 상황에서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온 삼각 접기에 상대의 배려와 정성에 힐책은 좀 넣어두자.
그렇지 않아도 냉혈한 세상에 휴지에 남은 온정으로라도 체온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폭우에 길이 잠겼다. 도로의 차들은 수륙양용처럼 육지에서도 물에서도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느려진 주행 속도에 빨간 브레이크 등이 발아래 물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장화를 신었고 딸은 크록스를 신었다. 어차피 젖을 발이라고 생각해 신은 크록스와 절대 비에 젖지 않겠다는 장화의 기싸움은 결국 하나의 종착지에서 서로 만난다. 젖어서 편한 발이 있고, 말라서 편한 발이 있다. 목표는 '발의 안녕'이고, 어느 누구도 운동화를 신은 채 젖고 싶지 않다.
허나, 누군가는 아침에 출근하며 신은 구둣발로 이 물을 건너야 하고, 누군가는 스펀지 운동화를 신었을 수도 있다. 이미 낙심하고 포기했을 마음에 누군가가 놓아둔 조그만 징검다리를 보며 내 입술에 미소가 스쳤다. 이미 젖은 발이라도 그 정성이 고마워 한 걸음 디뎌보았다. 발이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