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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상작가 해원 Apr 19. 2024

2-2. 미워도 다시 한번

2장. 욕심, 가자! 더 큰 세상으로

진화식이 한국에서 돌아왔다.     


“너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야! 내가 전화를 몇 통이나 받은 줄 알아? 너 한국 가서 그 인사 청탁하려고 일부러 컨테이너 빵구 낸 거야?”     


법인장님무슨 말씀이신지?”     


“야 D사 이대표, J사, S사, 대표들이 다 나한테 전화했어. 너 한국 돌려보내지 말라고.”     


죄송한데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저는 그냥 인사차 대표님들 찾아뵙고 올해 들어와야 할 수도 있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그런데 왜 그분들이 법인장님께 전화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참 이거 사람 난감하게아무튼 죄송합니다법인장님마음 언짢으셨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진화식이 한국을 다녀온 후 무슨 연유에선지 인사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인사발령을 부탁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벌써 거래처 대표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그렇게 급하다던 인사과에서 묵묵부답으로 나올 땐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차피 내년 한 해다. 진화식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뭔가 미심쩍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금 당장 짐을 싸라고 해도 성이 풀리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저만한 사람 찾기도 힘들다. 진화식이 말한 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이 주재원으로 온다면 오히려 내가 상전으로 모셔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설마 한 해 동안 무슨 일인들 있겠는가. <미워도 다시 한번> 갑자기 어릴 적 대성통곡을 하면서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나는 진화식과 함께 미국에서의 두 번째 해를 맞았다. 그 사이 한국 본사에서는 갖가지 인사가 단행됐다. 대기업인 우리 회사는 다른 기업과는 달리 조직구조가 특이하다. 가장 높은 곳에 회장이 있었고 그 아래 부문별 대표이사가 있다. 그리고 각 대표이사가 자기 밑에 몇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구조다. 모든 자회사에는 역시 사장이 임명된다. 당연히 대표이사는 각 자회사의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게 된다. 전체 회사의 경영에 대한 큰 그림은 회장이 그리지만, 실질적 인사권의 행사와 사업추진의 권한은 대표이사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미국 법인은 그 자회사 중 하나에 소속된 회사다. 말하자면 자회사의 자회사, 즉 손자 회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회장이나 대표이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을 수도 있지만, 거의 모든 업무 지시는 자회사의 사장으로부터 받는다. 나의 승진이라던가 인사에 관한 대부분의 결정은 사장에게 달려있다고 보면 된다.     


좋지 않은 일이 겹쳐서 올 때 우리는 그것을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한다. 반대로 좋은 일에 좋은 일이 더해지면 우리는 그걸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말한다. 미국 법인을 맡아 경영을 시작한 이후로 몇 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모든 일은 마치 비단길을 걷는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리고 한국에서 새로운 인사 발표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에게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한 희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아는 한, 직장에서는 실력이나 능력보다 인맥이 훨씬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해도 인사권자의 눈 밖에 나면 그 사람은 인사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업무적으로 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상당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사권자가 인정하면 그걸로 모든 게 용서될 수도 있는 일이다.     


회사 내에 나를 이끌어 줄 학교 선배 하나 없는 소위 지잡대 출신인 나로서는 나와 친분이 두터운 상사가 힘 있는 자리로 영전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 실지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14년 내가 미국 법인에 공모해 고배를 마셨을 때 나에게 추천서를 써 주었던 그 김주환 부장이 우리 회사의 사장이 된 것이다. 물론 이전 사장과도 관계나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같이 근무해 본 경험이 없어 쉽게 다가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김주환 사장은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그와 같이 근무한 세월이 자그마치 6년이 넘었고 그 6년 간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부장으로 근무할 때 내가 만들어 낸 성과들이 실로 눈부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성과로는 정부로부터 거액의 예산을 받아 낸 일이다. 당시 우리 회사는 전국적으로 수십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돈 한 푼 받지 않고, 그것도 무려 1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정부의 일을 대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업무의 총괄 기획을 새롭게 맡은 나는 그 불합리성을 따지고 들었다.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이 될 수 있는 인건비를 요구하고 나서자 정부 담당자는 나를 미친놈 취급했다. 나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자료를 만들어 이성적으로 정부 담당자를 설득하는 한편, 그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 새벽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는 우리 회사에서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운영하던 주말농장을 분양해 주말에는 그의 가족과 농사도 짓고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나는 태어나 생전 처음 맡아보는 업무, 더구나 정부와 연관된 일이라 그 누구도 원하지 않던 그 일을 맡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정부로부터 거액의 예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성과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정부 담당자들이 많은 부분에서 정부 사업에 나의 의견을 반영해 주었고 그 결과 그 사업들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업무를 시작하고 그해 겨울이 오기도 전에 그들은 나에게 정부 포상과 해외 연수 기회까지 부여하며 나를 우리 회사의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그 이외에도 내가 이룬 성과는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그리고 그 많은 성과의 배후에는 언제나 김주환 부장이 함께했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인정해 주는 사내의 후원자이자 그 누구보다도 막역한 김주환 부장이 우리 회사 사장이 되었다는 건 나로서는 날개를 다는 일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미국으로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저녁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야, 해원아! 너를 승진시켜서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내가 아직은 힘이 부족하다. 가서 열심히 하고 있어. 내가 잘 풀리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가 책임질게. 우리가 같이 고생한 세월이 얼마냐?”     


그는 내가 미국을 나오던 그해에 특별승진에 신청해 아쉽게 탈락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미국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이번 인사에서 두 번째 도전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특별승진을 아예 신청하지도 않았다. 입사 동기 중 그 누구보다 먼저 사무소장으로 나온 나에 대한 약간의 시기심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과한 욕심은 항상 화를 부른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승진에 도전하지 않은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내가 지난여름 한국 거래처 사장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미국 법인에서는 매년 가장 날씨가 좋은 시기를 골라 거래처 사장들에게 미국 연수 기회를 제공한다. 말이 좋아 연수지 사실은 그냥 여행에 가깝다. 나는 부임 첫해이기도 하고 사업도 흑자로 전환되는 모습에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해 같으면 고작 LA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거쳐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을 도는 가장 쉽고 한국적인 코스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해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러한 시도는 나의 병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 나는 항상 최초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편이다. 나의 이력서를 본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최초의 일에 도전했는지 말이다. 아무튼 나의 선택은 미국 최초의 제1호 국립공원이자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세계에서 최초로 사용해 세계 모든 국립공원의 모태가 된 그 유명한 옐로스톤(Yellow Stone) 국립공원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나의 이력서에 찍힌 이 최초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심각한 도전에 부딪힌다. 단 한 번도 쉽게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거래처 사장들과 함께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만 13시간이 걸리는 옐로스톤은 선택 자체부터 무리였을 지도 모르겠다. 채 3시간도 지나지 않아 버스 안에서는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니 미국 여행하러 와서 버스만 타는 겨? 이건 감옥도 이런 감옥이 없구먼. 아니 법인장이 노인네들 고생시키려고 작정을 했구먼.”     


버스는 가도 가도 그 종착지가 나오지 않았다. 새벽에 출발한 버스가 어느새 한 시간의 시차가 변경되는 지점을 지나 첫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사장들의 반응은 이번 여행의 대실패를 예고했다. 아니 실패로만 끝나면 다행이다. 이건 중도에 돌아가는 사태까지 생기지 말란 법이 없었다. 준비해간 술과 안주로 겨우 분위기를 맞춰 모두 각자의 방으로 안내하고 돌아온 나는 침대 위로 널브러졌다.      


하지만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걱정이 밀려왔다. 생전 처음으로 가는 옐로스톤, 누구나 가 보고 싶어 하는 꿈의 여행지, 그 아름다운 곳을 가면서 나는 왜 괴로워해야 하는가? 심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수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의 목을 조여오는 듯했다.     


‘행복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삶을 여행하는가? 나는 누구를 위해 옐로스톤을 여행하는가? 나는 이 삶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옐로스톤 여행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나는 왜 괴로워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엎드린 눈시울이 뜨거워 짐을 느꼈다. 그 뜨거움도 잠시 나는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고 시간도 가늠할 수 없는 새벽 눈을 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정신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행복감, 마치 어젯밤 눈물이 나의 모든 걱정을 앗아간 듯한 신비로운 가벼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는 야릇한 그 순간 속에서 나는 그 무엇도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니 애초부터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이 영혼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이 순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 메모장에 그 느낌을 적기 시작했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무소유는 실천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 그 자체가 무소유다.”     


어제의 모든 걱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다가오라 아침이여, 네가 무엇이든 내 너를 반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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