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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라일락 Mar 28. 2024

우리에겐 라포가 필요해요

프로파일러는 아니지만, 아무튼


먼저, 라뽀를 형성해야 해요.


라포. 심리학 쪽에서는 기본이라는 이 말을 - 나는 어느 프로파일러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지나가다 들은 적은 있었겠지만, 그냥 흘려 넘겼던 말이, 그날은 어쩐지 귀에 박혔다. 라포? 라포가 도대체 뭐지?



라포(rapport)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 서로 마음이 통하거나, 털어놓고 말할 수 있으며, 서로 이해되는 상호 관계.



 라포 형성은 경찰 수사와 프로파일링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한다. 경찰이나 프로파일러는 피의자, 목격자, 피해자와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여 정보를 얻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라포를 형성하는데 - 일종의 수사기법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형사물과 법정물의 마니아로서, 수사받던 용의자가 도통 입을 열지 않다가, 주인공(형사나 프로파일러)이 끈질기게 잘해주니 결국 마음을 열고 술술 자백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범죄자와도 라포를 형성해야 한다니, 참 고단하시겠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게 전략이고 목적이 있는 셈이니, 배울 점이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라포를, 수사를 넘어 심리적인 유대관계로 넓게 해석한다면 우리에게 라포는 꼭 필요하다. 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 사사건건 부딪히는 사람. 나를 위해 남을 쉽게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 언제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공격하고 뒤통수 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같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성장은커녕 중간도 갈 수가 없다. 입도 뻥긋하기 싫은 용의자처럼, 그런 관계는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고, 위축되게 할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발을 묶어 놓을 것이다. 그게 일이든 사회생활이든 아니면 친구라 불리는 관계든 말이다.


저 사람도 한 잔 해보면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친해져 보면 세상에 그리 근본부터 나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 오래 보고 자주 보고 많이 뭔가를 같이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라포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리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겠다는 수십 수백 배의 믿음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걸, 내 안의 무언가를 끌어내게 하는 무해함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능력을 동반한 무해함.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게. 너의 능력을 믿고 네가 제공하는 것들을 신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게. 그러니 너도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들을 펼쳐봐. 틀리면 고치면 돼. 아니면 다시 해보면 돼. 그래도 안되면 내가 기꺼이 감당할게. 우리가 멸망하는 일은 없게 할게. 서로에 대한 신뢰. 우리,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자. 우리가 그렇게 외치는 팀웍이라는 것도 - 같이 전쟁터에 나온 것처럼 칼춤 추며 죽어라고 고생해 보자는 뜻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안에서 나는 너를 공격하지 않을게 -라는 믿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중 한 명으로, 인간중심 치료(Humanistic Therapy)의 창시자이기도 한 ‘칼 로저스’는 치료 과정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조건 없는 긍정적 존중을 강조했다고 한다. 타인을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들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라포는 결국 마음이 편하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가장 자연스러울 때 가장 높은 창의력을, 가장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라포를 잘 만들 줄 아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좋은 동료이고, 탁월한 리더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 아닐까?


살면서 만난 어떤 탁월한 리더들은, 정말 사람을 “잘 부렸다”. 적재적소에, 그들의 가진 능력들을 잘 배치하면서, 어르고 달래고 발전시켜 가면서 사람을 성장시켰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1만큼 하던 사람을 10만큼 하게 하고 100만큼 도달하게 하는 기적을 만드는 것. 그건 단순히 사람을 기계적으로 장기말처럼 부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충분한 라포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라포 안에서 그들의 팀원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행복, 무한경쟁의 이 시대엔 촌스러운 가치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모두가 갖고 싶은 것. 얼마 없는 행복을 만난 이들은 고마웠을 것이고, 그래서 술술 불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을 필요로 하신가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 불어 드릴게요. 일단 그런 마음을 누군가가 먹게 했다면, 그들의 능력은 곧 자신의 능력으로도 연결된다.


어제 본 예능의 한 장면에서 박나래가 이런 말을 하더라. 생산적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강박이 있는데, 내가 유일하게 누워 있어도 잉여롭지 않다고 느끼는 곳이 엄마집 밖에 없다고. 그것도 일종의 라포가 아닐까. 쉬게 하는 것. 그렇게 힘을 충전한 그녀는 또 다른 어떤 곳에선 열심히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겠지. 모든 것이 다 이어져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리더들이 프로파일러의 라포 형성 과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그렇게 잘하고 있는 분들도 너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십에 대한 논의도 점차 활발해지고 다양해지고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과거 시절처럼 실적만 생각하는 폭력적인 리더가 아닌, 라포형성능력이 탁월한 그런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결국 모두를 살릴 것이다.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바꿀 것이다. 그 리더라는 게 꼭 사회이고 직장이 아니더라도 - 누군가를 이끄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자기를 따르는 이들과의 라포 정도는 만들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보석처럼 빛나는 수많은 이들의 가능성들을. 잘 끌어내려고. 적어도 노력은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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