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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라일락 Apr 04. 2024

벚꽃이 몇 살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마흔도 안 됐는데 뭐 어때서



'너는 나이가 많아서 안돼.'라고 말한 사람에게서

한 살 더 먹은 다음 해,

'아직 어린데 다 할 수 있지'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일 년 내내 그 말에 갇혀 살았었는데.

애초에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반증 아닐까.

나이 따윈 핑계였다는 반증 아닐까.

중요한 건 다른 이슈 아니었을까.




주제가 주제인만큼 나이를 먼저 밝혀야겠다. 나는 1984년생이다. 다행히 얼마 전 나라에서 두 살 깎아 주는 바람에, 40이었다가 38이 되었다가 생일이 지나 다시 39가 되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님들은 몇 살일까? 내 지인들이라면 아마도 내 나이에서 두세 살 정도 위아래로 차이가 나겠지만, 불특정 하게 들어오는 독자님들의 나이는 가늠이 잘 가지 않는다.


 어렸을 땐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든다는 건, 크고 작은 숫자에 대한 잔혹사가 생긴다는 것일 거다. 열아홉에서 스무 살이 되던 때는 그냥 '청춘'이 된다는 것에 마냥 설렜다. 스물네다섯 언저리 취업을 하던 때의 나는 사회 선배에게서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어쩌고 발언을 듣고 무지하게 실망을 했다. (아니 자기는 나보다 다섯 살은 더 많으면서? 지금 만났으면 사이다 발언 하나쯤 날렸을 텐데 그땐 아무 대꾸도 못하고 헤헷 뭘요,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멍청이) 스물아홉에서 서른 살이 되던 때는 조금 불안했지만, 광석이 형님이 그토록 노래하던 '서른 즈음'이 된다는 일이 뭔가 상징적으로 기뻤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정말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면 서른 살은 너무 애기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씩 나이의 압박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몇 살까지는 무엇을 해야 하고, 몇 살까지는 무엇이 되어 있어야 하고, 몇 살 까지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뭐 그런 사회가 정해주는 조건들 말이다. 나는 그런 조건들이 되게 우습다고 생각했었다. 내 나이가 뭐 어때서. 너는 더 많잖아. 온갖 편견 없는 세련된 메시지들은 다 만들어내면서,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종류의 사람들이 나는 늘 못마땅했다.


나이에 대해 걸고넘어지는 사람들은 주로 나보다 윗사람들이었다. 나는 니 나이에...! 너도 이제 몇 살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니. 남들은 이 나이에 어떤 걸 하는데. 너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뭘 해야지. 한결같이 몇 살이 되기 전에 어떤 커트라인을 넘어서기를 요구하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여러모로 힘에 부쳤고, 무엇보다 나이가 뭐 별거야 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나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치관 중에 하나가 바로 위 아 더 월드다. 나이가 뭐. 인종이 뭐. 성별이 뭐. 돈이 뭐. 직업이 뭐. 우리는 다들 그렇게 편견을 넘어서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모습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배우지 않았나? 나는 분명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배웠던 것 같은데. 어느새 사람들은 나이나 다른 것들로 줄을 세우고, 마치 오픈런을 달려야 하는 명품 매장인 양, 언제까지 어느 선 안에 안 들어오면 아웃,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따져보면 그리 사회적으로 늦은 나이는 아니었다. 대학시험도 어영부영 적당히 봐서 재수 없이 대학에 들어갔고, 스펙을 쌓기 위해 인턴 같은 것을 하느라 6개월 휴학은 했지만, 그리고 바로 졸업을 했다. 취준생 시절도 있었지만, 하늘 같은 선배님 찬스로 기회를 얻어 취업도 적당한 나이에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계속 회사 생활을 했고, 이직하면서 딱 두 달 쉬고 다음 회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8년. 나는 졸업을 했다.


39살이라는 나이는 사회에서는 아직 적당하다 싶으면서도, 회사에서 새로 뽑기엔 좀 어정쩡한 나이라고 한다. 임원을 하기엔 어리고, 팀원을 하기엔 늙었으며, 팀장을 시키기엔 새로운 회사에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39살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무작정 바깥세상으로 나온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좀 망설이는 중이다. 아직 정확히 뭘 원하는 지도 사실은 찾지 못했지만. 그런 편견이 없는 곳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돈은 벌고 일은 해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나는 끝까지 찾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나 혼자서 스스로 서는 법을 익혀야겠지.


사실 나는 나이가 뭐가 중요한 지 잘 모르겠다. 아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내 나이가 어때서 라며. 나이보다 실력이, 경험이, 다른 것이 중요하다며. 취업까지 유예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나에겐 언제나 나보다 나이 많은 부사수님들이 있었다. 두 살에서 세 살까지 오빠이고 언니였던 그분들은, 회사에서 정해준 롤로는 사수 부사수였을지 몰라도 나에겐 그저 좋아하는 동료 한 명이었다. (그분들은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려나. 그건 들은 바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두 명일 뿐이지 누가 위고 누가 아래고 그런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세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는 나보다 나이 어린 상사를 충분히 존경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데. (방탄소년단의 알엠이 나보다 딱 열 살이 어리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나의 상사라면 나는 모든 것을 바쳐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알엠이 리드하는 나의 커리어라니, 너무나도 멋지지 않은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연하가 많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절친모임에서도 내가 나이로는 젤 언니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연하지만 나는 그들을 친구라고 내 맘대로 부른다. (사실 나이도 정확하게 모른다) 이상하게 연하들도 나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쭉 그랬다. 애교 있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런가 언니오빠들은 나를 예뻐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남자고 여자고 동생들은 나를 좋아했다. (친구한정) 나는 연하킬러인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요즘 내 삶을 채우는 가장 친한 친구들은 모두 나이로는 나보다 조금 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들이 나보다 경험치가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언니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일도 너무 잘하고, 아는 것도 너무 많고, 삶의 지혜도 많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다 가졌으면서도 나보다 어리다니 조금 부럽기도 하다.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부러움을 사는 사람일까? 에이 아닐 거다)


생물학적 나이는 어쩔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 예전보다 텐션이 떨어지거나 기력이 쇠한 부분이 분명히 있긴 있다. 매일 밤새고, 집에 안 가고 일해도 멀쩡했던 시절은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운동을 하거나 체력관리를 한다면 개선되겠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새벽 네시에 집에 가면서, 왜 벌써 가냐고 혼나야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불합리하게 밤을 새야 하고, 끝없이 누군가의 컨펌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삶을 이제는 별로 살아내고 싶지가 않다. 밤새서 딱 붙어서 뭔가를 해야 하는, 그런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남은 삶도 그래야 한다면, 나는 이제는 덜컥 겁이 난다. 이제 그런 건 별로 뿌듯하지가 않다. 아파보니 더 그렇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게 작품성이었나, 나름 높아진 연봉이었나, 아니면 상장이었나, 요즘 같은 세상엔 평생직장도 없는데, 그런 걸 계속 얻으려면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일도 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세상에 정말 없는 걸까? 밤샘까지는 아니고 한 7시간만 매일 잘 자면서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앗 이런 생각을 들킨다는 건 구직자에게 치명타인데... 다들 밤새서 몸 바쳐 일해줄 사람을 원할테니까. 그렇다면 이제 내 남은 인생은 망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제 생각은 비밀로 해주세요.)


사실, 사회는 나에게 나이가 많다고 하지만, 나는 나이가 먹는 게 그리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내 주변엔 멋지고 훌륭한 시니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보다 세 살 네 살 아니 열 살 이상 많은 그들은, 나이에 걸맞게 성숙하고 완성되었으며, 나이 따윈 상관없이 너무 멋지고 생생하다. 나도 그런 사람들만 보며 닮아가고 싶다. 그래 세상엔 숫자로 정의할 수 없는 클래식이란 게 있는 거야. 오리지널리티라는 게 있는 거야. 고작 몇 살 어린 게 뭐 대수야? 나이와 함께 멋져지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서울숲을 걸었다. 벚꽃을 보며 친구가 물었다. 저 나무는 몇 살일까?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우린 물론 답을 찾지 못했지만, 조금 궁금은 해졌다. 벚꽃은 저 자리에서 매년 나이 들겠지만, 매년 새롭게 지고 또 피는 꽃을 우리는 나이 들었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올해도 벚꽃이 피었네. 새롭네. 반갑네. 그렇게 생각할 뿐. 저 벚꽃은 열 살이라 쌩쌩해, 저 벚꽃은 스무 살이라 별로야. 이런 생각을 아마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넌 좋겠다 매년 새로워서. 너는 오히려 더 울창해질 거 아냐. 너는 매년 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더 높이 커질 거 아냐. 너에겐 언제나 우와- 하며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매년 아름답게 피어 오늘처럼 초 인기를 누릴 거 아냐.


병원생활을 겪으며, 인생의 유한함과, 나이의 부질없음을 느꼈다. 이제 나는 그냥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예전의 감투 같은 것들은 이제 별로 탐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나도 어디 가서 꽃가지의 하나인 양, 매년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피고, 또 한 계절 즐기고, 그러다 아름답게 지고 싶다. 그냥 바람이나 맞고 햇살이나 즐기며, 벚꽃 아래 아이들의 까르르 소리와, 신나서 사진 찍어대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나 보면서. 그렇게 남은 인생을 화사하게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이에 대한 편견을 말하면서도, 나에게도 편견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살면서 나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 우리 정말 나이 따윈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그냥 천년만년 친구처럼 다들 모여 즐겁게 잘 삽시다. 나이 같은 걸로 뭐라 그러지 말자고요. 인공지능 시대에 그런 건 너무 촌스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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