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거지 인생이 끝난 게 아니라니까?
사실 지난 한 주는 여러 가지 즐거운 스케줄들이 있었지만 심적으로는 약간 고단한 한 주였다. 지난주 월요일 세브란스 병원 담당교수님 면담이 있었는데, 그냥 얼굴만 보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피검사 소변검사 지령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채혈실가서 검사하고 일주일 뒤에 오라고. 원래 병원 오전 진료를 마치고 신나게 놀 예정이었던 나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져서 집에 가서 골골대고야 말았다.
나 다시 아프면 어떡하지? 피검사 안 좋다고 갑자기 입원하라면 어떡하지? 갑자기 수치 나쁘게 나와서 씨티 찍고 긴급검사 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어떡하지 어떡하지가 머릿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병원 경험이 많은 아빠한테 전화해서 긴장된다고 하니, 원래 병원 오랜만에 가면 다 그런 거라고, 그냥 의례적인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몸 상태 안 좋은 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며. 행여나 안 좋게 나오면 또 치료하면 된다며.
한때는 내가 행운아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큰 부를 누리진 않았지만 나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공부나 하는 일들도 크게 골치 썩진 않았으며, 주변 친구들이나 인복도 많았고, 감정도 늘 행복하고 긍정적 상태인 데다, 노력한 것에 비해서 꽤 많은 성과들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진 그랬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나는 행운아 타이틀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병을 앓았던 경험이란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유병장수 시대라곤 하지만 타고난 건강체질의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남들에겐 설마 하는 일이 나에겐 설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을 불운이 나에겐 찾아왔으니, 그게 꼭 한 번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나는 조금 운이 좋지 않은 편이고, 나는 남들보다 나쁠 수도 있다는 그런 감각들. 남들보다 좋지 않은 상황의 나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하자투성이의 나를 인정하는 것.
그렇게 일주일이 흐른 후 이번주 월요일 아침 다시 병원에 갔다. 결과발표의 순간은 늘 긴장이 된다. 속으로 덜덜덜 교수님의 말을 기다리는데, 모니터를 한참 보시더니 꺼내는 그 말.
“깨끗합니다! 좋습니다~. “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의 말.
3개월 뒤 다음 예약 잡아 드릴게요~
딱 10초였다. 그동안 내가 힘겹게 인생을 갈아 넣어 만들던 15초 30초짜리 광고보다도 짧은 시간. 하지만 순식간에 잿빛이었던 내 마음을, 프리미엄 럭셔리 초호화 초긍정 모드로 바꿔준 시간. 병원에선 의사 간호사들이 나에게 최대한 관심 없는 게 좋은 거라던데, 괜찮다고 툭 말씀하시고 빨리 다른 환자를 부르는 그 순간이 난 너무 좋았다. 내 문제가 그만큼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이제 괜찮은 애라 병원에선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 같아서.
생각해 보니 난 좀 행운아인 것도 같아. 남들은 늦게 발견해서 손도 못쓴다는데 나는 엄청 아프기 전에 발견해서 잘 수술했잖아? 수술부위도 엄청 깨끗하고 상처도 잘 아물어서 전공의 선생님이 보면서 신나 했잖아? 이렇게 피도 깨끗해지고 나를 괴롭히던 염증도 악성빈혈도 내 몸에서 다 사라졌잖아? 생각해 보니 나 진짜 행운아 아냐? 난 아직 어리고 건강하고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았는데?!
다음 검사 예약도 신나서 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신나서 흥얼거리기도 하고, 오는 길에 성수동에서 맛있는 커피도 사 먹고, 집에 와서도 한참을 신나 있었다. 사람이란 게 참 그렇게 단순하다. 근데 너무 좋잖아. 걱정했던 게 사라진다는 거. 나의 건강과 나의 생존을 숫자로 의학으로 검증받았다는 것. 또다시 살아가도 된다는 것.
병원에 다니면서 만난 동료 환자들은,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는 외양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병원에 다녀본 적 없는 사람들은 병원 환자들이 다들 마르고 나이 들고 힘없고 그런 이미지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주사실에서 복도에서 검사실에서 만난 나의 병원 동료들은, 근육 빵빵한 헬스맨부터 걸그룹보다 예쁜 어떤 아가씨, 병실 커튼을 치고서도 업무를 쳐내던 고급인력, 심지어 복도에서 노트북으로 화상미팅을 하던 직장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기의 자리에서 삶을 살았고, 아팠고, 치료했으며, 그중 많은 이들이 치료를 끝냈다.
치료가 끝나 건강해진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편견과 걱정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까? 나는 요즘 의문이 든다. 아니 내가 아팠던 건 맞는데, 그거까지 뭐라 그러는 건 아닌데, 그럼 이제 평생 그런 주홍글씨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건가? 병원 생활을 끝내고 사회로 복귀하면서, 나는 괜찮냐는 말이 그렇게 섭섭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괜찮냐는 말는 딱 두 가지 부류의 인간으로 나뉘었다.
네가 괜찮아서 너무 기쁘다.
혹시 힘들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말해.
혹은
아 이 녀석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얘 또 어떻게 되는 거 아냐?
후자는 주로 나의 쓸모를 계산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나에겐 대학병원 교수가 공식적으로 문서로 써준 괜찮다는 소견서가 있지만,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곁에 있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의 괜찮냐는 눈빛에는 정말로 독이 묻어 있어서, 같은 공간에서 숨쉬기조차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약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결여된 느낌이었다.
박보영이 출연했던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에는, 아픈 후 사회 복귀를 고민하는 이를 위로하는 이정은의 명대사가 나온다. 나는 이 대사를, 아픈 후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저 아프잖아요
제가 어떻게 계속 간호사를 해요
그래서 이제
환자 혈압 못 잴 것 같아?
링거 못 놓을 것 같니?
차팅 못할 거 같아?
바이탈 체크 못해? 아님 인계를 못해
그런 거 아니면 됐어
충분해
아픈 후에도 우리는 충분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그러니까 다들 포기하지 말자고.
병실에서 만났던 수많은, 지금은 건강해졌을 나의 동료들이 - 사실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 살다가 나를 스쳤으면 좋겠다. 어 그때 병실에서 뵈었던 분 아니에요? 아 그때 주스 주신 분? 요즘은 어떠세요? 뭐 괜찮죠 하하하하. 우리에게 그런 시절도 있었네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죠!
그때까지 나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힘내요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