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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라일락 May 09. 2024

병원이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될까?

1년 만의 응급실 해프닝 - 그리고 의료공백에 대하여

살면서 병원 신세 지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복 받은 일이다. 나도 작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열이 39도까지 올라도 미련하게 꾹 참고 카피를 쓰다가, 참고 참고 또 참다 겨우 병원에 갔던 나. 내가 살던 세상에서 병원에 가는 것은 눈치였고, 불성실의 증거였으며, 자기 관리 못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참고 버텨도 결국 나에게 남는 건 별로 없다는 걸. 사람은 아플 때 쉬어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제때 병원에 가야 한다. 그리고 병원에 갔을 땐 당연히 양질의 진료를 돈걱정 없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정말로 당연한 상식인데 - 여기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작년에 큰 수술도 마치고, 지난달 피검사 결과도 아주 좋았고, 잘 회복하며 종횡무진 서울을 놀러 다니고 있던 나. 지난 주말 고향인 제천에 내려갔던 나는 배가 갑자기 너무 아파서, 일요일 밤에서 월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나아질까? 그냥 참을까? 고민하는 사이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시간을 지체해 크게 데인 경험이 있던 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하고 30분 차를 달려 제천에 있는 한 병원의 응급실에 찾아갔다.


응급실 가는 동안 식구들이 두 번의 통화를 했고, 다행히 병원에서는 바로 받아주었다. 내 고향 제천의 응급실의 대처는 충분했다. 진통제와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의사와 논의를 거친 후 기존 개복수술자라 혹시나 하는 걱정이 있다고 요청하여 엑스레이를 찍었다.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장이 꼬여있는 것처럼 보여, 그냥 치료하며 보겠냐 아니면 정밀시티를 찍겠냐는 말에 그것도 요청해서 찍었다. 배 안에 가스가 가득 차 있고 장이 폐색 혹은 마비가 있는 듯하게 나왔다. 여기에서 입원을 하겠냐는 말에 주 거지가 서울이라, 서울에 있는 - 원래 다니던 -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곧바로 사설구급차를 타고(비용지불) 1시간 30분 거리 서울로 달려갔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도착했고, 친절한 제천의 사설구급차 대원분들이 CT를 찍은 영상자료 CD들을 포함해서 원활하게 인계했고, 서울의 응급실에 도착했고, 적절한 진료를 받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진통제가 잘 받아서 통증은 많이 멎어 있었다. 사실 비몽사몽해서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 제천의 응급실에서 서울의 응급실까지 올라오는 동안, 그리고 나의 원래 담당 교수님과 두 명의 교수님, 의사분들을 보고 입원까지 인계되는 동안 아무런 시간의 딜레이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원활하게 입원실로 인계되어 - 잘 치료받고 이틀반 후 바로 어제 퇴원해 지금은 집에 있다. 7월에 찍기로 했던 엑스레이와 CT도 미리 찍어 교수님이 체크했고, 다 좋다고 하고, 문제없다고 했다.


 결론적으로는 별일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 소화 잘되는 거 먹고, 먹는 거 조심하고, 조심해서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과정 과정 다 적절한 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해프닝으로 마감된 일이다. 내가 응급실에 가는 걸 망설였다면, CT를 찍어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콧줄을 하고 감압(?)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늦은 때 더 나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과정 과정 적절한 의료진들의 조치가 있었기에 나는 지금 퇴원해서 집에 앉아 브런치를 쓰고 있다. 1년 만의 입원에서 - 나를 기억하는 간호사 선생님도 다시 만났고, 그때와는 다른 새로운 의사 선생님도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주는 나의 기둥 같은 교수님도 함께.


 병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모르던 시절에서, 병원의 큰 도움을 받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시기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다. 플렉스나 관리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 삶의 기본권 -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있던 병원에 의료의 공백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많은 환자들이 수술을 하러 입원을 하고, 수술을 마치고, 내가 있던 작년처럼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평범하게 혈압을 재고, 채혈을 하고, 수술을 하고, 진통제를 맞고,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CT를 찍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내고, 퇴원약을 챙기고.... 그 과정에서 환자와 함께 하고, 때론 잘할 수 있다며 위로하고, 때론 같이 웃는 의료진들. 강아지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라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 어떡하냐며 내일처럼 공감해 주는 의사 선생님들. 가스를 배출하고 장운동을 성공해서 다행이라고 같이 웃는 간호사 선생님들. 퇴원축하한다며 빨리 나아서 다행이라는 사람들. 이 모든 보통의 일들이 너무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필요한 의료비도 걱정 없이 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평생 건강하게 죽을 때까지 살기는 조금 어렵기에, 의료비 걱정 없이, 의료의 공백 없이, 필요한 때 모두가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모두가 건강하기를. 삶의 기본으로서의 의료가 대한민국 모든 이들에게 더 당연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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