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마음만으로 너무 좋은 여행을 했다
자주 꿈을 꾸는 편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 = 진짜 수면 중 꿈을 말한다). 잘 기억나지 않는 존재감 없는 꿈을 꾸거나, 꿈을 꾸더라도 막 판타지 같은 것은 아니어서, 잠에서 깨더라도 그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일은 많이 없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꿈은 어릴 적 에이치오티와 놀이공원을 갔던 꿈인데, 친한 여자친구와 함께 내가 살던 지역의 놀이공원에 갔는데, 분명 시작할 땐 내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친구가 에이치오티 멤버로 변해있던 것이다(?) 토니 안인지 강타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클럽 에이치오티였던 나는 너무나도 행복해서 놀이공원이 끝날 때까지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내 친구는 도대체 어떻게 에이치오티로 변한 것일까?)
한 번은, 알고 지내다 헤어진 후배가 내 꿈을 꾸었다며 오랜만에 연락해 온 기억이 있다. 평소에 사적인 연락을 많이 하던 사이는 아니었기에 더 기억이 났다. 내 꿈을 어떻게 꾼 것인지, 좀 나쁜 쪽으로 꾼 것인지, 잘 지내시냐며 별일 없냐며 계속 물어봐서 안심시켜 주었다. 다행히 그 시점에 나는 아무 일도 없었고, 그 후로도 한참 아무 일 없이 평안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나에 대해 안 좋은 예지몽 같은 것을 꾼 것일까?) 결론적으로 반가운 친구와 안부도 나누었고, 그 시점 언저리에 나쁜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다. 어쩌면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해준 덕에 나에게 올 뻔했던 액운이 나를 비껴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달랐다. 보고 싶은 사람이 꿈에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꾼 꿈이었고, 정말 오랜만에 인물이 등장한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프랑스인지 다른 유럽인지 모를 어떤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여행지에서 불현듯 우연처럼 그 친구를 만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이야기했고, 각자 일행이 있기에 일단 헤어졌는데, 무슨 비포 선라이즈라도 되는 것처럼 - 혹은 패스트 라이브즈라도 되는 것처럼 - 어느 순간부터 각자 혼자가 되어서 함께 그 나라 여기저기를 즐겁게 여행한 것이다.
우리는 타려고 했던 기차도 일부러 놓치고, 여러 가지 보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계속해서 여행의 시간이 길어진 기억이 난다. 내가 어디를 가자고 하면 그 친구가 따라오고, 헤어질 무렵 그 친구가 어딜 가겠다 하면 내가 또 흔쾌히 따라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친구의 얼굴이 요즘 방영되는 가브리엘에 나오는 박보검으로 변했는데(?) - 꿈은 이렇게 맥락이 없다 - 나는 박보검으로 변해버린 친구랑 유럽 곳곳을 즐겁게 여행했고 그러다 스르르륵 꿈이 끝나 잠에서 깨어버렸다. 잠에서 깨고 난 후에도, 도대체 그 친구가 왜 내 꿈에 나왔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내가 정말 아끼던 친구였으니까. 아마도 많이 보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하지만 보지 못하는 마음이 더해져 어느 순간 내 꿈으로 불쑥 찾아왔나 보다.
얼마 전 다시 본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는, 몽상통화라는 것이 있어서, 델루나 사장 장만월(아이유)의 허락을 받으면 살아있는 사람 꿈에 나와 메시지를 전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꿈을 꾸고 나면 원귀는 원념을 풀고 천국으로 떠나고, 살아있는 사람은 또 나름대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우리 둘은 멀쩡히 살아있지만, 나는 이 꿈이 장만월이 허락해 준 몽상통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웠던 마음이 이것 만으로도 일부 해결되었으니까. 꿈을 깨고 나서 좋은 영화를 한편 본 것처럼 여운이 남았다.
예전에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꿈이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 요즘 경험한 것, 강렬했던 기억, 내가 해소하지 못한 것들이 섞여서 꿈으로 나타난다는 말. 내가 가고 싶은 여행과, 내가 채우지 못한 그 친구와의 관계가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이런 꿈으로 나타난 것일까? 앞으로도 나는 그 친구와 그런 여행을 하지는 못할 테지만, 보고 싶은 마음만으로 너무 좋은 여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