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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라일락 Aug 02. 2024

1점이면 뭐 어때, 올림픽은 계속되잖아

실점도 우리의 인생이니까


“10점이면 역시 대단하고, 9점이면 조금 아슬아슬하지만 선방했고, 8점만 쏴도 아쉽다는 소리를 듣고, 7점이면 큰일이라는 소리를 듣는 양궁에서 1점을 쏜 선수가 있었다. 나는 순간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못된 사람들은 이걸로도 놀려먹을 텐데…”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나 벼슬에 도전했어도 ‘무관’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온몸에 스포츠라곤 1도 없는 나는, 어설픈 평화주의자에 말도 못 하는 ‘순간 과몰입러’라 스포츠경기를 볼 때마다 툭하면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그냥 편하게 이기는 경기, 이기는 사람만 응원하고 말면 괜찮을 텐데, 어쩐지 약한 편에 지는 편의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고야 마는 못난 사람이라서. 와 저 사람 엄청 속상하겠네, 아이고 중요한 순간에 넘어졌구나. 메달 따고 싶었을 텐데 얼마나 아쉬울까 지금. 그런 마음이 머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귀에 들리는 생중계 캐스터들의 멘트가 섭섭해진다. 쫄깃하게 극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당연히 그들의 본업일 텐데, 아니 우리 선수가 뭐 어때서요. 2등은 아무나 하는 건가요. 응원해 줘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사람을 쪼세요. 아니 아쉬운 건 알겠는데요, 지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라고 매몰찬 해설에 속상해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SNS나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올라오는 특정 선수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들에 또 한 번 속상해지는 것이다. ‘내가 뛰어도 그보단 낫겠다’라는 류의 멘트가 특히나 최악이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는 그런 식의 멘트를 입으로 내뱉는 친구들이 꽤나 많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했다. 아니 실제로 붙으면 실력이 근처에도 못 갈 거잖아요…. (물론 소심인이라 이 모든 섭섭함은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 안으로만 삼킨다. 그러니 이 쿠크 멘탈에 스포츠경기 보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였겠나. 그래서 나는 많은 시간 경기를 보는 대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몸에 스포츠가 1도 없는 사람은 인생에 스포츠가 1도 없는 사람이 될 위험에 처하는데…)



 더군다나 국가의 프라이드가 걸렸다는 국제 스포츠경기란,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몰린만큼 그 반응도 과격한 것이어서, 나는 종종 사회부적응자처럼 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과격한 반응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아니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데, 은메달이 뭐 어때서, 4위가 뭐 어때서, 아니 좀 떨어질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뭐 그렇게 욕을 하고 그러나.


 그중에서도 과열의 정점이 아마 지금 하고 있는 올림픽과 월드컵일 것이다. LA올림픽 때 태어난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서울올림픽을 지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애틀랜타 올림픽, 시드니 올림픽, 아테네 올림픽, 그리고 베이징, 런던, 리우데자네이루, 도쿄 올림픽을 지나 2024년 파리올림픽까지 어찌어찌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나름대로 오랜 올림픽을 거친 만큼 그만큼 경기를 보는 내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여전히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건 왠지 조금도 삐끗하지 않을 것 같은 양궁이지만 (그만큼 선수들의 압박감은 또 어쩔 거야)


“1점을 쏜 그 선수에게 돌아온 건,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응원이었다. “


처음엔 잠깐 1점이라는 점수에 시선이 쏠리는 듯했다. 활의 민족이라고 굳게 믿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엔 분명 놀라운 점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기술도 없고 활도 과녁도 제대로 없는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에서 독학으로 이 자리에 올랐고, 아무런 스폰서가 적히지 않은 민무늬 티셔츠를 입고 자비로 구입한 장비로 세계 최고 (우리나라) 선수를 상대로 당당하게 경기에 임하는 모습. 그리고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0점을 쏴도 만족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멋진 모습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수의 SNS에는 한국인들이 몰려가 당신이 자랑스럽다며 댓글을 달았고, 마다예 선수는 한국 고맙다며 답글을 남겼다. 그는 유튜브로 한국선수들의 양궁을 보고 배웠다는 인터뷰를 했고, 또다시 많은 한국인-포함 세계인들이 응원을 했고, 마다예 선수의 노력을 지켜본 세계양궁협회가 그를 수련선수로 지정해 스위스 로잔 세계양궁발전센터에 소속된 직업선수로 훈련을 이어갈 수 있게끔 했다. 그리고 그는 1점 말고는 9점도 쏜 준수한 선수다! 이 정도면 상당한 해피엔딩 아닐까?



언제든 누구든 1점을 쏘는 선수가 될 수 있다. 이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우리는 누구나 10점을 쏘다가도 삐끗하면 1점을 쏠 수 있다.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평생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운 좋게도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인생은 거기가 끝이 아니다. 실점이 있어도 우리는 끝까지 살아가야 하고, 몸도 마음도 극복하여 다음 경기를, 다음 생을 살아야 한다. 이왕이면 행복하게. 그래서 박수가 고마운 것이다. 보내지 않을 것 같은 응원이 쏟아질 때, 쏟아지지 않을 것 같은 함성이 들릴 때, 이래도 괜찮네? 한 걸음 더 나가볼까? 더 분투해 볼까? 다음엔 더 잘해볼까? 사람은 용기를 내게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올림픽에서 내려와 은퇴선언을 할 때까지, 어쨌든 우리는 계속 가야 한다.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은 올림픽을 볼 때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뭔가 스포츠를 둘러싼 인식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일단 들리는 해설이 편해졌다. 사려 깊은 멘트들이 자주 들린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할 때에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는 해설진들의 멘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상대편이 잘할 때는 있는 그대로 칭찬해 주는 멘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도쿄올림픽에서도 그래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선수들의 활약도 있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메달을 따지 못해도 수고했다고 하는 말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리고 선수들의 세대도 바뀌면서, 등수에 압박받기보다는 어깨 힘 빼고 편안하게 자기만의 플레이를 즐기는 모습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아냐!) 또 의연하고 당당하고 즐겁게 경기에 임하는 쿨한 모습들에 보는 나도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그래 이게 맞는 거지. 진작부터 이랬어야 하는 거였어.


지는 선수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상대편 팀에게도 존중을 보내고,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에게도 의미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보내고, 그런 좋은 레퍼런스들이 쌓이고 쌓여서 드디어 나에게도 “스포츠 경기는 참 재미있는 거야, 우리는 그냥 재미있게 즐기면 되는 거야.”라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물론 이기는 선수, 잘하는 선수, 메달 따는 선수를 보면 참 기쁘고 그 수준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대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크게 보면 그냥 이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밟게 된 모든 선수가 1등부터 마지막등수까지 다 자랑스러운 것이다. 국가대표 되기도 어려운데. 하다못해 나는 도대표 시대표는커녕 동네대표도 못될 텐데 말이다. 물론 이게 평균적인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올려야 할 승점은 다 다르니까. 우리 모두가 목표로 하는 메달은 다 다르니까. 눈부신 성과에는 찬사를 보내되, 그 반대편의 모든 올림피언에게도 기꺼이 손뼉 쳐줄 수 있는. 그런 뜨거운 여름이 되길 바란다. 전 세계 모든 지구인들의 경기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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