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학번 그리고 24학번, 두 번째 대학생이 되다
지난주까지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 바빠서 브런치 원고를 쓰지 못했어요. 이 나이에 무슨 대학?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올해 초 모 사이버대학 광고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해서 수업을 듣고 있답니다. 신입생이에요. 39살이 신입생이라니.
저는 사실 03학번으로 08년도에 종로 소재 모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15년이나 근무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대학원도 아니고 사이버대를?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름 긴- 도약을 위한 작은 시작이랄까요. 근데 이거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더라고요. 15년간 내가 업무에서 매일 만났던 것이 광고캠페인이며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이며 SNS콘텐츠디자인이며 창의적 글쓰기인데. 그렇다면 이 정도 수업은 거뜬하게 해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론과 실무는 또 달랐고, 나름 대기업 광고회사에서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갖고 있던 지식은 너무나도 빈약하고 허술함 투성이었더라고요. 대학원 갈걸 그랬나?라는 마음은 그야말로 허세였어요. 저는 신입사원처럼 반성하는 마음으로 매주 수업을 듣고 몰랐던 광고의 세계를 배워가고 있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2003년도에 배운 지식은 벌써 20년이나 된 지식인데 그것만 가지고 아웃풋만 줄곧 내고 있었으니, 최신의 광고지식으로 단련된 사람들과 비교하면 너무 뒤처진 지식이 아니었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또 좋은 것은, 제가 실무로 몸으로 피드백으로 현장에서 부딪혀온 파편화된 기억들이 수업을 들으며 마치 역사책을 정리하듯 촤르르르 정리된다는 사실이었어요.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도 다시 배운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해지고 겸허해지더라고요.
아 광고주가 그때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역시 이것만은 내가 우겼던 게 맞았어. 아, 내가 좋아하는 기획자 누구누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구나! 내가 살아온 광고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이해하고 새로운 무엇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공부. 그래서 전 공부가 감히 제일 쉬웠다고 이야기하렵니다. 그냥 하면 되잖아요. 그냥 이해하고 얻으면 되잖아요. 거기에 마이너스는 없는 거잖아요. 마음대로 되지 않던 파란만장한 인생에 비하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괴롭히는 사람도 후려치지 않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운동만큼 정직하고 하는 만큼 나오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그래서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평생 공부는 놓지 않으려고 해요. 저라는 사람도 똑똑해지고 성장할 수 있는 기분은 오직 공부밖에 줄 수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