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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y 24. 2024

결혼 10주년, 우리 다시 연애할까요?

그래서 여전히 좋냐고?

※이 글을 읽기 전에 도움 되는 글

브런치북. 또다시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11화. 결혼 9년 차 13번째 이사
https://brunch.co.kr/@hebaya/23

결코 쉽지 않았던 결혼 생활


지난 결혼 생활 9년 동안 13번을 이사했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집이 있었다. 그 당시 집에는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 종료까지, 전세금으로 다른 집을 구해서 살아야 했다. 달콤한 결혼 생활을 꿈꿨지만 이사를 가는 곳마다 집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일은 더 꼬여만 갔다.


그러다 우연히 박소현의 러브게임, 라디오 사연에 당첨이 되었다. 그 이후 매일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빠, 다합에서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 우리 해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같았던 거?"

"응. 기억나. 그땐 그랬었지"

"지금은? 여전히 지금도 마음이 같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까, 가끔 해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 현실이 그렇지 못해서 그렇지"

"아직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 해외에서 다시 시작해 볼까?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그렇게 우리는 두 돌도 안 되는 은찬이를 데리고 해외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6년 동안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해외에서 정착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맨땅에 헤딩으로 해외살이를 시작하는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우울증을 진단받기도 했다. 한국에서 코로나가 잠잠할 때쯤 은찬이만 데리고 기러기 생활을 선택할 정도로,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운 좋게 남편이 말레이시아 취업을 하게 되면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10년 동안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분명한 건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것, 그곳에서 은찬이의 성장 과정을 보는 것,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해서 좋았다. 어느덧 은찬이는 아홉 살이 되었다.  


2023년 11월 3일, 말레이시아에서 결혼 1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 셋, 쿠칭 바다에서 가족사진을 찍다.

우리는 여전히 여름을 좋아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여름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하고,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한다. 또 밤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시샤(물담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 변화된 것이 있다면, 남편과 함께 바다에서 다이빙 장비 없이 마스크와 핀만으로도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 수영도 가능하다.


이집트 다합을 떠난 순간부터 먹고사는 것에 집중하느라, 그때의 감성이 점점 사라졌다. 말레이시아에 정착하면서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던 여름과 시원한 수영장, 밤바다는 아니지만 사라왁 강을 바라보며 우리가 좋아하는 시샤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수영장에서 남편과 함께 아이처럼 놀다.
말레이시아 사라왁 강을 보며 맥주를 마시다.
다합의 밤처럼 시샤로 쿠칭의 밤을 즐기다.

사랑에 빠진 지 3763일


결혼기념일 하루 전날에 조화 꽃과 풍선 숫자 1과 0을 준비했다. 리마인드 웨딩촬영보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셀프촬영을 하기로 했다. 하얀 드레스와 정장이 아닌, 평소에 즐겨 입는 옷으로 입었다. 서로가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법이니까.  


2023년 11월 2일, 오전 11시. 첫 번째 장소는 바다이다. 차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다합처럼 바로 물에 뛰어들 수 있는 바다는 아니지만 썰물이어도 좋았다. 태양은 뜨거웠다. 구도를 잡아서 삼각대를 세웠다. 손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았다.


"오빠! 뒤로 한 발자국 더 가야 해!"

"이 정도?"

"응! 우리 이제 찍으면 돼"


그때그때 생각나는 포즈로 찍었다. 결혼 초반에는 둘이 같이 사진도 많이 찍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첩에는 우리가 아닌 은찬이 사진으로만 가득했다. 늘 은찬이가 옆에 있었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전보다 우리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다시 연애하는 기분이다.


나는 사진첩을 확인했다.


"오빠! 오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엄청 잘 나왔어"

"오... 진짜 잘 나왔다. 더운데 나름 재미있네"


여러 배경으로 삼각대를 옮겨가며 찍었다. 서로 뽀뽀도 하고, 안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도 우리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뜨거운 햇살은 우리를 비추다.
우리의 사랑은 더 깊어졌다.

2023년 11월 3일, 오후 4시.


10주년 결혼기념일 당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이틀 동안 네 군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장소는 카페에서, 세 번째 장소는 집 앞에서, 마지막 네 번째 장소는 공원이다. 풍선은 상체를 가릴 만큼 컸다. 풍선 숫자는 파티할 때 벽에 붙이는 용도로 사용한다. 우리는 장소마다 결혼 10주년이라는 것을 추억하기 위해, 풍선을 직접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키 차이 때문에, 오빠가 1을 들고 내가 0을 들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알겠어. 그렇게 한 번 찍어보자!"


나는 다시 사진첩을 확인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하나하나 추억 쌓이는 거, 생각보다 괜찮다"

"그러게. 그 어떤 것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거 같아"


삼각대 설치하랴, 구도 맞추랴,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랴, 그날도 더워서 땀이 많이 났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결혼 10주년을 온몸으로 느낀 날이었다. 우리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 예뻤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너와 다시 결혼할 거야.
우리는 사랑이 전부야.

결혼기념일 일주일 전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9년 동안 이사만 13번, 지난날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0년 전 그때처럼, 여전히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말로 글을 마쳤다.


그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고마워. 우리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자"

"나도 고마워. 다 오빠 덕분이야. 사랑해♡"


저녁은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었다. 다 먹고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직원은 나에게 디저트를 주었다.


"happy anniversary"


글씨 옆에 조금 녹아 있는 아이스크림과 달달한 초콜릿 케이크가 있었다.


"이거 뭐야?"

"짠! 서프라이즈!"

"와... 오빠, 고마워"

"내가 많이 사랑해♥"


변함없는 사랑, 이집트 다합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우리는 매일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지금 이 순간이 좋다.

남편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는 것.
우리의 10주년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며.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는 10년 전 보다 살도 쪘고, 흰머리도 생겼고, 체력도 약해졌다. 긴 시간을 같이 어두운 터널을 걷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빠르게 부를 축적하면서 사는 게 목표였다면 어린 은찬이를 데리고 해외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우리는 다합에서 단 둘이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결혼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도 서로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고 싶어요"

"저도 그런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은 어렵기만 하네요"


사랑은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 이런 삶을 살면 매 순간순간마다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사랑의 종착지, 결혼은 인생에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다시 연애할까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너를 사랑해.
늙어 죽을 때까지 매일 뽀뽀하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할게.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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