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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y 22. 2024

박소현의 러브게임, 라디오 사연에 당첨되다

SBS 라디오, 2014년 7월 22일 사연

신생아를 키우는 일은


남편이 출근하면 나 혼자서 육아를 했다. 시계를 자꾸 쳐다보았다.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그는 퇴근하고 은찬(가명)이에게 분유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잠이 모자란 나를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은찬이를 돌봐주었다. 그도 피곤할 텐데도 나를 더 많이 신경 써주었다.


그럼에도 둘에서 셋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혼전임신이라,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했지만 육아 현실은 가혹했다. 새근새근 잠든 은찬이를 볼 때마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에게 왔는지 신기하다가도, 울음을 달래도 그치지 않을 때면 나도 같이 울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50일이 지났다. 매일 은찬이의 울음소리로 일어났다. 애꿎은 젖병만 박박 닦고 있었다. 젖병이 점점 흐리게 보였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를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걸까'


출산 후에 내 몸은 망가졌다. 머리 가장 앞쪽에는 원형탈모가 생겼고, 가슴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쳐졌다. 은찬이를 안을 때마다 뼈 마디마디가 시리고 아팠다. 또한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를 점점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육아가 버거웠다. 우울했다. 무기력했다.   


그럴수록 더 강하게 이집트 다합이 생각났다.


'그땐 정말 좋았었는데...'


다합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던 나를, 남편과 함께 다이빙을 했었던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합의 밤하늘을 보고 싶어.

출처: 픽사베이


우리의 러브스토리를 기억하고 싶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내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라디오가 문득 생각났다. SBS 파워 FM 107.7에서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박소현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이다. 박소현의 러브게임 코너는 다양한 러브 스토리를 들려주고 러브, 게임의 법칙으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박소현의 목소리로 사연을 들을 때면 연애 세포가 깨어나기도 했었다.  


다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어떨까?'


노트북을 켰다. 일 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한 치의 고민 없이 제목은 '한 편의 영화 같은 해피엔딩 러브스토리'로 정했다. 2013년 6월 16일 이집트 다합이라는 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 문장을 첫 시작으로,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적어 내려나갔다. 키보드를 신나게 두들기며 한 자 한 자 적었더니 나도 모르게 옛 추억이 다시 되살아났다. 옆에 자고 있는 은찬이를 보았다. 엄마가 글을 쓰라고 도와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브런치 북, 다합 목차에 대한 내용만 간추려서 글을 완성했다.   


2014년 7월 18일에 라디오 사연을 올렸다.

다합의 바닷속도 보고 싶어.

사연에 당첨이 된 줄 몰랐다


육아에 치여서 사연을 올렸다는 사실도 잊은 채 은찬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2014년 8월 22일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라디오 사연에 당첨이 돼서 상품을 보내드릴 테니 주소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뭐지? 이미 사연이 나갔다는 소리인가?"


화들짝 놀랐다. 급히 노트북을 켜고 박소현의 러브게임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한 달이 훌쩍 지난 사연을 하나하나 클릭해 가며 며칠 날짜로 사연이 당첨이 되었는지, 다시 듣기로 찾고 있었다.


"와... 찾았다. 7월 22일에 방송에 나갔구나..."


아쉬웠다. 사연을 올리고 4일 뒤에 당첨되었다.

그 당시 우리의 러브스토리를 들은 분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출처: 박소현의 러브게임


다시 사랑이 피어났다


현실에 지쳐있을 때쯤 라디오 사연 당첨은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의 러브스토리가 라디오 방송에 나갔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나는 다른 방에서 맥주와 안주를 준비하고 남편은 은찬이를 재우고 있었다. 은찬이가 깰까 봐 우리는 문자로 대화했다.


나: 은찬이 졸려해?

남편: 응. 곧 잠들 것 같아.

나: 응. 올 때 조심조심하게 와.


우리는 손 잡고 같이 사연을 들었다. 라디오 작가는 내 글을 예쁘게 다듬었다.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았다. 박소현의 달달한 목소리까지 더하니, 우리의 러브스토리는 더 빛이 났다. 이야기의 끝을 듣고 있었다.


불같은 여름을 지나 꿈같은 가을로 이어진 나날들. 불과 몇 달 사이 제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지금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릴 때가 있지만, 태어난 지 74일 된 아들이 저를 보며 방실방실 웃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꿈은 아닌 것 같습니다.

- 2014년 7월 22일, 박소현의 러브게임 중에서 -


남편은 사연을 다 듣고 나에게 말한다.


"오... 우리 이야기가 나오니까, 신기하다"

"그렇지? 실시간으로 들었으면 더 좋았을걸"

"그래도 자기랑 이렇게 같이 들어서 더 좋은걸?"

"나도. 근데 자기는 다시 다이빙 강사 안 하고 싶어?"

"하고 싶지. 근데 현실적으로는 알잖아"

"응. 잘 알지. 요즘 다합이 자꾸만 생각나. 다합이 그린운건지, 다이빙이 그리운 건지는 잘 모르겠어"

"다음 휴가 때 기회 되면 다른 곳에서도 다이빙하면 되지"


직장을 다니는 남편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그도 다이빙 강사 생활과는 다르게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치 현실과 타협한 느낌이랄까. 하루하루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활기를 되찾아 준 것 같았다.


우리 삶의 전부, 바다와 스쿠버다이빙. 이 단어만 들어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맥주 한 잔으로 다합에 있었던 순간을 기억하며 사랑이 다시 피어났다.


라디오 사연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2014년 7월 22일, SBS 박소현의 러브게임 라디오 사연 듣기

2014년 7월 15일, 다합에서 남편을 처음 사귄 지 1년이 되었다.
그리고 1년 뒤, 우리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바다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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