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바 May 20. 2024

연애 3개월, 초고속 결혼하기

혼전임신으로 결혼부터 출산까지

우리의 임신을 알렸다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일은 두려웠다.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아닌 튀르키예와 이집트 여행을 했다고 말하고 우리 둘 다 백수라는 것도 알려야 했으니 말이다. 결혼을 반대할 것만 같았다.


"오빠, 나 부모님이 무서워서... 임신했다고 말 못 하겠어"

"아니야. 그건 내가 말해야지. 일단 동생한테 먼저 알리자"


동생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미리 연락하고,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영준(가명)아! 여기야!"

"어! 누나. 이 분이 누나 남자친구분이셔?"

"응. 인사해. 내 남자친구, 준이야"


어색하지만 서로 인사를 했다.


"한국분이시네. 누나가 이집트에서 남자친구 데려왔다고 해서 현지 사람인 줄 알았어"

"아... 너도 오해했구나. 누나 친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라"

"그럴 만 해. 근데 왜 나 보자고 한 거야?"


그는 긴장했는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저... 누나가 지금 임신했어요"

"네? 임... 신이요?"


"누나! 임신했어?"

"어... 어쩌다 그렇게 됐어"

"엄마아빠한테는 말했어?"

"아니, 아직 말하기 전이야"


그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누나와 결혼하고 아이 낳을 생각이에요"

"네... 갑작스럽지만 일단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동생과는 아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데면데면한 흔한 남매사이랄까. 나 혼자 튀르키예와 이집트 여행하면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을까 봐, 동생한테는 솔직하게 말하고 떠났었다.


동생은 놀라긴 했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느 일요일 오후. 부모님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한 날이다.


"오빠... 나 긴장돼"

"괜찮아. 내가 잘 얘기해 볼게"


비밀번호를 눌러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미리 준비한 과일 바구니를 부모님에게 전해드렸다.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부모님 앞에 앉았다. 나는 그동안 호주가 아닌 튀르키예와 이집트에서 지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빠는 거짓말을 했다며 나에게 호통을 쳤다.


이번에도 그는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오늘 제가 이렇게 찾아뵌 이유는... OO이가 임신을 해서 저희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부모님도 놀랐다.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부모님 또한 나를 혼전임신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직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부모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아빠는 그에게 말한다.


"부모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시나?"

"네. 말씀드렸습니다"

"뭐라고 하시던가?"

"네. 아이가 생겼으니 결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직장은 구하는 중이라고 했고, 살 집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네. 저희 부모님이 자그맣게 마련해 주신 집이 있습니다"

"그래. 우리도 이 결혼 허락하겠네"


한 고비는 넘겼다. 그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일단 빨리 취직이 돼야 할 텐데... 양가 부모님 다 볼 명목이 없네"

"에이. 지금 가만히 있는 거 아니잖아. 틈틈이 아르바이트하면서 일자리 찾는 거니까,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야. 뱃속에 있는 아가도 아빠를 응원하고 있을걸?"

"고마워. 우리 하나씩 해나가자. 아가야! 아빠가 힘낼게"


그는 나를 꽉 안아주었다.

우리 결혼해요.

출처: 픽사베이


결혼식 준비는 간단하게


결혼 승낙을 받고 상견례 자리에서 예물과 예단 없이 남자친구는 집을, 나는 혼수를 준비하로 결정했다. 양가 부모님 집 가운데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날짜에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우리는 결혼식장에서 진행하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로 진행했다.


우리는 이집트 다합에서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오빠는 결혼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냥 다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결혼식보다 둘이 같이 의미 있는 장소에서 언약식으로 하고 싶어. 예를 들어 다이빙하면서 서로 반지 껴주고 사진을 남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결혼은 둘이서 사는 거잖아"

"오. 우리는 가치관이 정말 비슷하구나"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의 의견도 중요했다. 우리가 원하는 언약식은 아니었지만 결혼식 준비는 간단하게 했다.


결혼반지는 그가 사용했던 다이빙 장비를 팔아서 커플링으로 했다. 우리는 결혼식보다 앞으로 같이 살 수 있다는 기쁨에 더 집중했다.  

커플링이어도 충분해.

출처: 픽사베이


새카맣게 탄 예비 신부


결혼사진을 찍는 날이다. 배가 불러오기 전에 최대한 빠른 날짜로 예약했다. 스튜디오에서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했다. 다합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검게 탄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내가 새카맣게 탄 예비 신부, 그게 바로 내 모습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꽉 쪼인 드레스를 입고 실내와 실외 촬영 장소를 돌아다녔다. 장시간 촬영 때문일까. 금방 피곤해졌다.


"하~~~ 암~~!!!"

"자기 힘들지? 조금만 더 힘내자!"

"자기가 내 옆에서 있어서 괜찮아!"


보통의 예비 신부와 다르게 피부가 까맣든,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든, 내 모습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이 행복했다. 그가 예비 신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얀 드레스에 새카맣게 탄 피부라도 좋아.
잠깐 쉬는 시간에 그에게 붙은 먼지 떼주기.
부끄럽지만 결혼사진을 위해서 뽀뽀하기.

생각지도 못한 프러포즈


우리는 결혼식까지 각자 부모님 집에서 지냈다. 서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아주 가끔 만났다. 그는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여보세요. 자기, 일 끝났어?"

"응. 근데 나 지금 자기 집 근처, OO호텔에 있어. 혹시 지금 여기로 와줄 수 있어?"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일 있어? 일단 호텔로 갈게"


저녁 8시. 엄마한테 허락받고 호텔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그냥 자기 보고 싶어서 오라고 했지"

"뭐야~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놀랐잖아"


그가 예약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바닥에는 침대 방향까지 꽃길로 꾸며져 있었다. 벽과 천장에는 풍선으로 가득했다. 꽃 하트 안에서 그는 나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내가 노래방에서 직접 부른 노래야. 노래 말고 가사를 들어줘"


임창정 - 결혼해 줘

(유튜브로 음악 듣기)


임창정 - 결혼해 줘

가사

이것만 기억해 줘
너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걸
많은 시간 지나 모두 변한대도
지금 이 설렘들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거야

사랑해
지금처럼 영원히
환한 네 미소 이제 내가 지켜줄게


그는 노래를 핸드폰에 녹음했다. 우리는 같이 이어폰으로 들었다. 프러포즈였다. 표현이 서투른 그는 나를 생각해서 가사로 마음을 표현해 준 것이다. 나는 입을 삐쭉거렸다. 눈물이 고였다. 곧 가장이 되는 무거운 어깨를 뒤로하고 프러포즈를 준비한 과정을 생각하니, 그가 짠했다.


"고마워. 나 정말 감동했어. 언제 이걸 다 준비했어"

"자기 임신해서 고생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조금씩 준비했지"


사실 임신한 몸으로 같이 다이빙을 할 수는 없으니 굳이 프러포즈는 안 해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그가 나를 생각해 준 마음이 고마웠다.


이제 더 이상 다합에서 나 혼자 짝사랑했던 순간이 아니었다. 서로의 사랑을 믿고 결혼하는 일만 남았다.


"오빠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날은 그의 품에서 잠들었다.   

나 사실은 너를 처음 본 순간, 너와 결혼하고 싶었어.

출처: 픽사베이


정신없었던 결혼식 당일


결혼식을 하기 전에 신혼집에 미리 혼수 준비도 다 했고 그도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장에 다녔다. 결혼식 당일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신부 대기실에서 친구들은 나에게 한 마디씩 말한다.


"축하해~ 네가 엄마라니 안 믿겨"

"오늘 너무 예쁘다~ 잘 살아야 돼"

"행복하게 잘 살아~ 우리 중에 네가 먼저 갈 줄은 몰랐어"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일찍 결혼한 편에 속했다.


"다들 와줘서 고마워. 나 잘 살게"


친척들, 친구들, 다이빙 식구들, 나를 축하해 주러 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당하게 아빠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했다. 보통 결혼식 당일에 펑펑 울까 봐 걱정하는데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잠시 눈물이 글썽거렸던 순간이 있다면, 고등학교 친구가 내 눈을 바라보며 축가를 불러줄 때였다.


그렇게 우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2013년 11월 3일, 연애 3개월 만에 부부가 되었다.   

진짜 나 결혼하는구나.

깨소금 나는 신혼생활


임신 3개월까지 입덧을 심하게 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중간에 내려서 충분히 쉬었다. 호르몬 변화로 생선 알레르기가 생겼다. 음식도 아무거나 먹을 수 없었다. 임신 4개월 차가 되었다. 입덧이 끝나니 그는 어느새 내 남편이 되어 있었다.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서 저녁 준비를 했다. 이집트 다합에서 그와 같이 요리를 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즐겁게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여전히 서투르지만 레시피를 찾아 열심히 따라 했다. 처음이라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이미 그는 내 요리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쩌다 망해도 그가 맛있게 먹어 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숟가락을 떠서 닭볶음탕 국물을 먹었다.


"음~ 뭐야~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남편이 맛있게 먹을 줄 생각에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띠띠띠띠... 띠이~~~ 철컥!"


그가 있는 곳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자기다~ 하루종일 자기 보고 싶었어"

"나도 보고 싶었어~ 오늘은 안 힘들었어?"

"응. 이제 안정기로 들어갔나 봐~ 괜찮아"


그는 자세를 낮춰서 배에 손을 대며 말한다.


"아빠 왔어! 오늘, 엄마랑 같이 잘 있었지?"

"네! 아빠!"


내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짜잔~ 오늘은 닭볶음탕이지요"

"와!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인다"

"배고프겠다. 자기 어서 먹어"


그는 게눈 감추듯 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진짜 맛있었어~ 자기, 요리 실력이 점점 늘고 있어"


반찬은 시어머니가 주신 걸로 먹었다. 메인은 카레, 미역국, 콩나물국, 김치찌개, 된장찌개, 오징어 볶음 등 여러 가지 요리를 했다. 더 이상 다합에서 양파를 까지 못했던 내가 아니었다.


임신기간은 유일하게 단 둘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 도전해 본 닭볶음탕.
깨소금이 뿌려져 있는 것 처럼, 우리의 신혼도 깨소금이 넘쳐났다.

아기 태명은 "다모"
남편과 함께 태교 하기


아기 태명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이집트 "다합"과 바닷속에서 가장 귀여웠던 "니모"를 줄여서 "다모"로 부르기로 했다. 


어느덧 다모를 품은 지, 임신 7개월 차가 되었다. 배도 제법 나왔다. 누가 봐도 나는 임산부였다. 얼마 남지 않은 출산 준비로 바쁘게 지냈다.


주말 오후. 남편과 함께 태교 하기 위해 어느 한 도자기 카페에 찾아갔다.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입체 도자기 위에 우리 가족을 그리면 된다. 나는 남편을, 남편을 나를, 서로 각자 그려주기로 했다. 다합 바닷속에서 손을 잡고 다이빙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완성했다.

 

"푸하하하하. 나 오빠 진짜 똑같이 그렸어"  

"못 그린다더니 잘 그렸네~ 나도 다 그렸다"

"음. 나 닮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예쁘게 그리려고 했네?"

"응. 최선을 다했어. 다모는 내가 그려볼게"


그는 곧 태어날 다모를 상상하며 금방 완성했다.


출산시기가 다가올수록 둘이 아닌 셋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화장대 위에 우리 셋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다모야, 우리 곧 건강하게 만나자"

입체 초음파로 다모의 얼굴을 처음 본 날.
우리는 운명처럼 만나 이제는 다모를 만날 일만 남았구나.

둘만의 태교여행


긴 겨울을 지나 파릇파릇한 봄을 맞이했다. 여전히 여름이 가장 좋지만 남편과 함께라면 봄도 좋았다. 


다모를 출산하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박 2일로 가평 여행을 했다. 드라이브 길에 피어있는 벚꽃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가평 관광지, 쁘띠프랑스를 들러 천천히 돌아다녔다. 막달이라 걷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날이 좋아서 컨디션도 좋았다.  


점심은 호명호수에서 먹기로 했다. 새벽부터 집에서 남편이 싸준 김밥과 유부초밥을 꺼냈다. 김밥을 하나 먹으려는 찰나,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어? 오빠 눈이야!! 눈 온다!!"

"잉? 4월인데도 눈이 오네?"

"그러게~ 좀 춥지만 나름 낭만 있다"

"그니까~ 사진 좀 찍어줄까?"

"응. 우리 다모도 좋아할 거야"


나는 아이처럼 신났다.  

내가 즐거우면 다모도 즐거울 테니까.

다모를 만나기 위해서


임신으로 10kg가 쪘다. 의사 선생님은 살이 더 찌지 않게 체중 조절을 하라고 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무서웠다. 출산의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니까 힘을 냈다. 다모를 만나기 위해서 공원에서 남편과 함께 걸었다.  


"헉헉헉... 자기야~ 조금만 쉬었다 걷자"

"응. 힘들지? 천천히 걷자"

"우리 다모 만나기 5일 전이야. 나 잘할 수 있겠지?"

"그럼, 잘할 수 있어. 내가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 마"


그는 다모에게도 말한다.


"이제 엄마 뱃속에서 나올 시간이야. 엄마아빠는 준비 다 됐으니, 우리 건강하게 만나자"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는 나날들.
달달한 디저트로 기분 전환까지.

출산의 고통은


그날 저녁 10시. 30분에 한 번씩 소변이 마려웠다. 이내 시간은 15분에 한 번씩 줄었다. 소변이 아닌 것 같았다. 자고 있던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자기야~ 일어나 봐~ 다모가 나오려나 봐"


그는 바로 산부인과로 전화했다.


"지금 양수가 새고 있는 거래. 병원으로 가자"

"응. 그래서 오늘 그렇게 디저트가 먹고 싶었나 봐"


양수는 콸콸 나오는 줄 알았다. 찔끔 나와서 소변으로 착각했다.


나는 자연분만으로 낳기로 했다. 


새벽 2시 30분, 태동검사와 아이를 낳기 위해 배꼽 아래쪽을 제모를 마치고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아침 7시까지 간호사가 내진을 했을 때는 자궁 10센티 중에서 겨우 2.5센티가 열렸다. 유도분만 촉진제를 투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을 넘어 공포스러웠다.  


남편은 내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자기가 내 옆에 있으니까 안심돼"


간호사는 자궁이 열리도록 걷기 운동을 하라고 했다. 병원 복도를 한 시간 동안 남편과 함께 걸었다. 이때는 가벼운 생리통처럼 느껴졌다. 중간에 관장을 하고 또다시 복도를 한 시간 동안 걸었다. 가진통이 느껴졌다. 생리통에서 강도가 조금 세졌다. 간호사가 내진을 할 때마다 아팠다. 자궁 3센티가 열렸다. 


오후 12시. 간호사가 무통주사를 놔준다고 나에게 다가올 때,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 무통주사는 배의 고통을 없애주는 주사다. 무통천국이다. 긴장이 풀렸다. 잠이 쏟아졌다. 두 시간 동안 꿀잠을 잤다.


오후 2시. 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무통주사 때문에 자궁 열리는 속도가 느리다고 탱탱볼을 가지고 왔다. 탱탱볼 위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진통 때문에 아픈데 3시간 동안 운동까지 해야 되는 아주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간호사는 내진을 했다.


자궁 6센티가 열렸다. 이때부터는 남편이 옆에 있다는 사실도 점점 잊혔다. 누가 내 배를 칼로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자궁이 1센티가 열릴 때마다 찢기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누구인가'


간호사는 내 배를 세게 누르기 시작했다. 아기 머리가 조금씩 보인다며 조금만 더 힘을 주고 호흡을 내뱉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아아아아악아아아악"


울고 불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간호사는 소리를 지르면 아기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파도 너무 아프니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변을 보듯이 길게 힘을 줘야 하는데 호흡이 계속 짧아졌다. 간호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 배를 눌렀다. 


"이제 진짜 아이가 나와요.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


이 이야기만 몇 시간째 듣고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간호사의 말이 점점 들리지 않았다. 천장에서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느낀 고통은 마치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것과 같다. 


아기가 나오는 게 느껴질 때쯤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회음부 절개를 했다. 배가 찢길 듯이 아프니까 절개하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진통 10시간 30분 만에 아기 머리가 나오고 다리도 나오면서 무언가 쑥 하고 빠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남편은 다모 탯줄을 잘랐다.


"응애. 응애. 응애"


나는 다모를 안았다. 그 순간 다모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난다. 울음소리가 힘찼다는 것만 기억난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이 회음부를 꿰매는데도 하나도 안 아팠다. 출산의 충격이 커서 한 동안 멍했다.


'이 고통,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자연분만이라 바로 일어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챙겨준 밥과 미역국 그리고 반찬을 허겁지겁 먹었다. 


2014년 5월 6일, 오후 5시 30분에 3.2kg 다모가 태어났다.  


"자기야~ 진짜 고생했어... 내가 대신 아파할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어"

"옆에서 자기도 고생했어... 아빠 된 거 축하해"


남편은 나를 꽉 안아주었다.


2013년

그와 함께여서 찬란하고 예뻤던 나의 스물여덟.


2014년

그와 함께 부모가 돼서 더 예뻤던 나의 스물아홉.


출산의 고통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벅찼다. 

안녕. 다모야. 엄마아빠한테 와줘서 고마워.
이전 25화 연애 한 달 만에 임신이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