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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y 15. 2024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했다

같이 한국으로 돌아오다

내가 먼저 이별을 말했다


매일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나에게 남은 돈은 몇 만 원. 다합에서 살 수 있는 생활비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4시. 여느 때처럼 다이빙 일과가 끝났다.


"오빠! 장비 정리 다 끝나고 나 할 말 있어"

"무슨 일 있어?"

"조금 있다가 말해줄게"


다이빙 슈트를 물에 담갔다가 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심란한 마음에 슈트를 잡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냥 내가 할게. 잠깐 쉬고 있어"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내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평소라면 푸른 바다가 눈에 보였겠지만 그날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툭 건드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 어렵게 입을 뗐다.


"오빠! 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돈 벌어야 할 것 같아"

"응? 갑자기? 너도 다이빙 강사 하고 싶다며! 그래서 마스터 과정 밟고 있는 거 아니었어?"

"응. 맞아. 나 혼자 숙소에 있을 때 고민을 좀 해봤는데... 사실 나 이제 생활비가 거의 없어. 그렇다고 누구한테 돈을 빌릴 수도 없고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해. 요새 계속 몸도 안 좋고 다이빙하기도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지금 하고 있는 마스터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그땐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내가 먼저 오빠 마음 흔들어 놓고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정말 미안해... 오빠한테 상처만 줘서 정말 정말 미안해..."


그에게 또다시 외로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고였다. 목이 메었지만 끝까지 말을 끝맺었다.


"오빠는 여기서 살아야 하잖아... 그래서... 우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헤어지는 게 맞는 거 같아"


나는 그를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한국과 이집트 다합의 거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에게 헤어짐은 없을 줄 알았다.

출처: 픽사베이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2013년 8월 중순. 그 당시 이집트 다합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다. 다이빙 교육생들은 6월에서 7월까지가 가장 많았다. 8월부터 교육생들은 몇 날며칠 오지 않았다. 어쩌다 가끔 펀 다이빙만 하는 사람만 왔다. 꾸준히 이집트 정세가 불안정했는데 더 안 좋아졌다. 그는 월급이 아닌 교육생들이 올 때마다 정산을 받았다. 그도 어느 순간부터 생활비를 벌지 못했다.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미안하다... 나라도 지금 돈을 벌고 있었으면 너에게 도움이 되었을 텐데..."

"오빠가 왜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하지... 오빠가 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신세 지는 건 싫어"

"우리 헤어지는 거,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우리의 사랑은 이대로 끝나게 되는 걸까.

우리가 인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출처: 픽사베이


그가 내린 결정은


그다음 날. 우리는 또다시 마주 앉았다.


"오빠... 우리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

"응.. 생각해 봤는데... 나도 한국으로 갈게. 너도 알다시피 경제사정이나 여러 가지, 지금은 대책이 없다. 그렇지만 이대로 너만 보내면 우리 영영 헤어지게 될 것 같아서... 그냥 같이 가자"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되어서 놀랐다.


"아니.. 그러면 강사 생활은 어쩌고... 나 때문에 그만두는 건 원하지 않아"

"나도 사실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에 불안해하면서 살았거든. 혼자면 어떻게든 버티고 살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너를 놓치는 게 싫었어. 그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 같아. 부담 느끼지 않았으면 해. 이건 내 선택이야"   


그는 한 여름의 불 같았던 사랑을 그저 추억으로 흘려보내지 않기로 용기를 내어 결정했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감동하다.

출처: 픽사베이


우리의 마지막 다이빙


다합을 떠나기 이틀 전이다. 여전히 내 몸은 좋지 않았다. 그와 함께 마지막 다이빙을 했다. 처음 다합에 온 그날처럼, 라이트하우스 앞바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바닷속에서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멋진 세상을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나의 첫 학생으로 와줘서 고마워'

 

다합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했다. 매일 같이 그가 바닷속 가이딩을 했던 길도 그날따라 더 새롭게 느껴졌다. 우리 둘만의 추억은 저 깊은 블루홀에 두고 다이빙을 마쳤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다이빙 로그북을 펼쳤다. 처음 다이빙을 포기한 순간부터 강사를 하겠다고 선언 후 다이빙에 적응하기까지, 지난 글들을 보았다.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다합에서 103번째 다이빙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스쿠버다이빙, 라이트하우스 앞바다, 다합의 밤하늘과 수많은 별들, 천천히 눈에 담았다.


"오빠, 우리가 다합에서 함께한 86일의 시간은 절대 못 잊을 것 같아"

11년전, 다합의 아름다운 바닷속 모습을 기억하다.
103번째 마지막 다이빙 로그북을 적다.
우리의 사랑은 다합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 떠날 때는 나 혼자
한국 돌아올 때는 둘이 함께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우리는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는 티켓을 예매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게스트하우스 식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는 어렵게 따낸 강사 자리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2013년 9월 9일 우리는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여름이 아닌 초가을 날씨였다. 바뀐 계절을 맞이하게 된 순간,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오빠, 우리 잘한 거겠지?"

"다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딱히 계획은 없었다. 서로 각자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천국 같았던 다합을 뒤로하고 '돈'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처음 튀르키예와 이집트 여행 기간은 80일간의 여행이었다. 그가 좋아서, 다합이 좋아서, 바다가 좋아서, 46일을 더 지내게 되었다. 126일간의 혼자 떠난 여행이 다합에 있는 순간부터 우리 둘만의 여행으로 바뀌었다.


그의 품에 안긴 순간, 한국에서도 그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가 내 옆에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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