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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y 10. 2024

카이로에서 한국처럼 데이트하기

다합에 살다가 카이로에 가면

남자친구가 살았던 곳으로


우리에게 처음으로 2박 3일 동안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카이로에서 그가 먹었던 음식, 그가 살았었던 게스트하우스, 그가 아랍어를 공부했었던 카페, 그가 자주 갔던 쇼핑몰, 그가 혼자 다녔었던 곳을 같이 발자취를 느끼고 싶었다.  


오전 일찍 다합에서 카이로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나란히 좌석에 앉았다. 우리는 이어폰을 나눠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서로 어깨에 기대어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와 팔짱을 끼었다가 손깍지를 꼈다가를 반복하며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다. 꽤 먼 거리인데, 10시간 이동이 짧게 느껴졌다.


"여기가 내가 살았던 게스트하우스야"

너와 나, 카이로 여행을 시작하다.

출처: 픽사베이


최고급 한식 데이트였다


다합에서 지낸 지 한 달 반이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먹는 것'이었다. 그 흔한 KFC, 맥도널드, 스타벅스도 없었다. 차 타고 한 시간을 이동해서 샤름 엘 셰이크 공항으로 가야만 먹을 수 있었다. 11년 전 다합은 한국 식재료도 매우 한정적이라서 다양한 한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다합에서 먹을 수 없는 한식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한국 사장님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사장님은 김치찌개와 다양한 반찬을 차려주셨다.


"음~ 냄새만 맡아도 맛있어 보여"

"많이 배고프지? 어서 먹자"

 

사랑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김치찌개에 집중했다.


"와... 감동적이야... 아무리 해외에 살아도 입맛은 바꾸기 어려운 것 같아. 그냥 한식이 최고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셰어하우스에서 살았을 때, 매일 KFC에서만 먹다가 여기서 다시 한식 먹고 너처럼 감동했지"


"이래서 오빠가 셰어하우스에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구나~ 이제야 이해되네"

"응!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야"


우리는 한식을 그리워하는 것까지도 닮아갔다.


다음 날 점심은 한식당에서 불고기와 탕수육을 시켰다.


"여기 한식당이 가장 맛있어. 고기 좋아한다며~ 많이 먹어"

"나만? 오빠도 고기 좋아한다며~ 오빠도 많이 먹어"


젓가락으로 불고기를 집어서 한 입 먹었다.


"음~ 맛있어~ 근데 오빠랑 같이 와서 먹으니까 더 맛있네"

"나도 그래~ 네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만 봐도 좋아"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먹었던 음식이었는데... 세상 감사한 것 같아"

"맞아~ 이집트에서 살면 못 먹는 한식조차도 맛있어져"

"오빠는 어떤 음식을 못 먹어?"

"가지? 가지는 식감 때문에 먹기가 좀 힘들어"

"그럼, 편식도 해결해 주는 고마운 나라인데?"

"듣고 보니 그러네"


내 농담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빠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서 최고급 한식 데이트였어"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까지도 닮았다.

그럼에도 김치가 가장 맛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행복한 기억으로 바꿔주고 싶어


한식 다음으로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아이스커피였다. 우리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내 눈앞에 커다란 간판 글씨가 보였다.


"오~ 스타벅스 옆에 아랍어가 쓰여있는 게 신기하다"


그 흔한 스타벅스도 다르게 보였다. 


"이 자리에서 매일 아랍어 공부했었어"

"오~ 그럼, 여기에 앉을까?"

"그래!"


"오빠는 뭐 마시고 싶어? 나는 보통 카페라테를 많이 마셔"

"나도 그럼, 라테로 마실래~ 케이크 좋아해? 먹을래?"

"응! 달달한 케이크 먹고 싶었는데, 먹고 싶은 거 다 먹자"


치즈 케이크 하나, 초콜릿 케이크 하나. 그와 함께 달달한 디저트를 먹었다.


"스벅은 나 혼자 왔던 곳이었는데... 기분이 좀 이상하네"

"음... 오빠! 그게 어떤 감정인 것 같아? 예를 들면, 설렘? 행복? 즐거운?"

"행복인 것 같아~ 이제는 혼자가 아닌 너와 같이 있는 거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스벅을 우리 둘만의 추억으로 바꿔주고 싶었어"

"고마워~ 너를 만나고 나서 조금씩 사랑을 알게 되는 거 같아"


감정 표현이 서투른 남자친구라도 좋았다. 내가 그에게 사랑을 더 표현하면 되니 말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카이로에서 식욕이 폭발했다


한국에서 살았을 때는 햄버거를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했다. 혼자 튀르키예 여행하면서 자주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맥도널드로 가기 위해 카이로 길거리를 걸었다. 나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이 거리를, 그가 내 손을 잡으며 걷고 있다. 


우리는 빅맥 세트를 시켰다.


"오빠도 햄버거 엄청 좋아하는구나"

"응! 카이로에서 햄버거만 먹었는데도 맛있었어"

"우리는 식성도 비슷하네~ 근데 나 좀 모자란 거 같아~ 뭐가 더 없을까?"

"그럼, 맥너겟 먹을래?"

"응. 맥너겟은 한 번도 안 먹어봤어"

"아 그래? 맥너겟 6조각, 9조각, 12조각 있는데... 몇 조각으로 먹을래?"

"12조각으로 시켜서 같이 나눠 먹을까?"

"그래! 같이 먹자"


"음~ 맥너겟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잘 먹네~ 다합보다 먹을 게 많아서 그런가 봐"

"그런가? 먹는 것 때문에 신났나 봐~ 오빠도 좀 먹어"

"아니야~ 너 다 먹어~ 처음 먹는다며"

"이 많은 걸 다???"


카이로에서 식욕이 폭발했다. 햄버거 세트를 다 먹고도 맥너겟 12조각을 나 혼자 다 먹었다. 맥너겟이 이렇게 맛있는 것 일 줄이야.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이후 햄버거와 맥너겟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 번째 마음을 받았다


그는 쇼핑몰을 좋아한다. 딱히 살 것이 없어도 더위를 피해서 가끔씩 쇼핑몰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와 팔짱을 끼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우리는 쪼리가 있는 매장으로 향했다.


"너 저번에 쪼리 끊어졌었잖아~ 선물로 하나 사줄게"

"아니야~ 괜찮아~ 근데 오빠 가방 끈도 끊어졌었잖아"

"내가 마음에 걸려서 그래~ 다합에서 예쁜 신발이 없어서 아무거나 샀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서 네가 마음에 드는 걸로 사주고 싶었어"

"오빠가 나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 몰랐어~ 고마워"


그렇게 나는 동전지갑 이후로 두 번째 선물을 받았다.

쪼리만 봐도 좋았던 순간이었다.

출처: 픽사베이


니가 참 좋아


우리는 어쩌다 노래방에 오게 되었다. 그와 다정하게 앉았다. 노래방 책자를 펼쳤다.


"오빠! 여기서 한국어 보니까 진짜 반갑다"

"그러게... 우리 한 시간 동안 신나게 부르자"


우리는 살아온 시대가 비슷했다. 힙합, 댄스곡, 발라드, 듀엣곡까지 모든 장르를 불렀다. 예쁘고 멋있게 잘 부르는 것보다 그냥 신나게 노는 것, 이것마저도 통했다. 둘이서 여러 명 부럽지 않게 노래에 미쳐가며 그 시간을 즐겼다.   


쥬얼리 - 니가 참 좋아

(유튜브로 음악 듣기)


쥬얼리 - 니가 참 좋아

가사

온종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틈만 나면 니가 생각 나
언제부터 내 안에 살았니
참 많이 웃게 돼 너 때문에

어느새 너의 모든 것들이 편해지나 봐
부드러운 미소도 나지막한 목소리도
YOU 아직은 얘기할 수 없지만
나 있잖아 니가 정말 좋아
사랑이라 말하긴 어설플지 몰라도
아주 솔직히 그냥 니가 참 좋아


나는 1절을, 그가 2절을, 마지막 곡은 우리의 마음을 노래했다.

우리는 같이 뛰며 노래를 불렀다.

출처: 픽사베이


보기만 해도 즐거웠던 곳


다합을 떠나기 전에 민(가명) 강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식품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과자와 라면만 봐도 흥분되었다.


"오빠~ 카이로에도 한국 마트가 있는 줄 몰랐어~ 근데 엄청 작다"

"이집트는 관세가 세서 식재료 수입이 어렵다고 들었어. 그래도 우리가 살 것들은 있어"

"그렇구나~ 라면, 여기 있다~ 신라면이랑 짜파게티로 사면될 것 같아"

"이 정도면 되겠지? 사람들이 하나씩만 먹어도 금방 먹겠다"

"그래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디야~ 먹을 생각하니까 좋다"

"다합 가면 맛있게 끓여줄게~ 우리 이제 삼겹살 사러 가야 돼"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으로 향했다.


"돼지고기는 여기서 밖에 안 팔아"

"우와~ 고기다~"


나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좋아? 입 찢어지겠다"

"해외에서 삼겹살은 처음 봐. 보기만 해도 행복해"

"방금 좀 귀여웠어~"


미리 다합에서 챙겨 온 아이스박스에 삼겹살을 넣었다. 우리는 삼겹살을 먹을 생각에 다합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는 활짝 웃는 내 모습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의 머릿속은 이미 먹고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다합으로 돌아갈 때는 짐이 많았다. 버스 터미널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지금은 우버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만, 2013년에는 미터기를 보면서 목적지까지 가야만 했다. 


"오빠! 지금 차가 멈춰 있는데... 저 미터기에 있는 빨간 말은 왜 이렇게 빨리 움직여?"

"아~ 저거? 월래 차가 멈출 때는 말이 다그닥 다그닥 이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게 맞는 건데.... 다다다다 이 속도로 미터기를 조작한 거야~ 돈 더 받으려고~ 카이로에 살면서 이런 일이 많았어... 이제는 싸우기도 싫어서 심한 정도만 아니면...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기도 해"

"아~ 진짜? 대박이다~ 근데 차 엄청 막히는 거 같아"

"퇴근 시간이라 그래~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할 텐데..."


창문을 바라보았다. 강이 보였다.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반 바퀴 돌았다.


"괜찮아? 아휴.. 큰일 날 뻔했다... 사고 날 뻔했어"

"응. 조금 놀라긴 했는데... 오빠도 괜찮아?"

"응. 나도 괜찮아. 내가 무슨 상황인지 보고 올게... 너는 여기 있어"


택시 기사를 따라서 그도 같이 내렸다.


"오빠! 차가 갑자기 왜 돈 거야?"

"바닥에 오일이 있었는데 그걸 밟고 차가 미끄러졌어~ 다시 타고 가면 될 것 같아. 어쩌면 버스 터미널에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만약 뒤에서 차량이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다쳤을지도 모른다. 놀란 마음을 뒤로한 채 버스를 놓칠까 봐 마음이 초조했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차가 옴짝달싹 못했다.


"안 되겠다~ 우리 지금, 여기서 내려서 뛰자"

"응~ 알겠어~ 나도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나는 가방을 메고 그는 아이스박스와 라면을 들었다. 그에게 짐을 다 맡겼다.


"오빠! 내가 먼저 빨리 뛰어 볼게! 앞으로 계속 가면 터미널 맞는 거지?"

"응! 나도 최선을 다해서 뛰어서 갈게"


학교를 다닐 때도, 직장을 다닐 때도, 운동화를 신든, 높은 킬힐을 신든, 버스를 놓칠 수도 있었던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그때마다 이 악물고 달렸다. 얼굴부터 몸까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이미 버스 출발 시간이 십 분이나 지났으니 말이다.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꽤 많이 뛰었다.


"허허허헉허허헉헉헉...."


우리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아 헤맸다. 뒤에는 그가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오... 빠... 허헉허허헉... 버스가... 허허헉... 없어..."

"아... 하... 여기 잠깐 앉아 있을래? 짐을 좀 봐줘.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내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지러웠다. 몸을 숙여서 얼굴을 부여잡았다. 순간적으로 몸에 있는 땀이 모두 나가면서 탈진이 일어났다. 


저 멀리서 다시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


"어디 아파? 이 땀 좀 봐"

"나 물... 물 마시고 싶어"

"어서 마셔.. 우리 다시 이동해야 하는데... 움직일 수 있겠어?"

"아니.. 나 머리가 핑 돌아... 쉬면 좀 괜찮아질 것 같아"

"그럼, 내 어깨에 기대 있어... 괜찮아지면 말해"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휴지로 내 얼굴을 닦아주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옆에서 지켜본 현지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점점 희미해지는 말소리.


"괜찮아? 정신이 들어? 병원에 가볼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니. 안 가도 돼.. 괜찮아..."

"이거 바르면 괜찮아질 수 있다는데 발라 볼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인은 내 코 밑에 무언가를 발라 주었다. 지금까지도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파스를 붙인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 시원함 때문일까. 정신이 조금씩 들었다. 


"오빠! 아랍어로 감사합니다가 뭐야?"

"슈크란"

"응.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현지인에게 슈크란이라고 말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똑같았다. 친절함과 불친절함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오빠! 우리 이제 어디로 가면 돼?"

"응.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다음 정거장에서 기다리면 탈 수 있대! 어서 가자!"


우리는 무사히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를 탔다. 그제야 한 시름을 놓았다.


"아까 너 달릴 때 있잖아. 쪼리 신고 그렇게 잘 달리는 사람은 처음 봤어~ 나는 쪼리, 아파서 못 신거든"

"나름 이유가 있지~ 손발에 다한증 때문에 슬리퍼를 신으면 오히려 미끄러워서 걷기가 더 힘들어. 나한테 이미 쪼리가 적응된 상태라서 그래~ 아깝게 버스는 놓쳤지만... 근데 내가 무슨 생각하면서 뛰었게?"

"글쎄... 무슨 생각을 했는데?"

"빨리 다합에서 라면과 삼겹살을 먹겠다는 생각?"


우리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 참지 못했다.


"오빠! 카이로에서 관광 안 하고 한국처럼 데이트한 거, 재미있었어~"

"응! 나도 재미있었어~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즐거운 추억은 못 만들었겠지?"


그는 혼자서 지냈던 순간을, 나는 복잡해서 도망쳤던 순간을, 각자의 카이로 기억은 우리 둘만의 로맨스 장소로 바뀌었다.  

카이로 데이트, 성공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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