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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y 17. 2024

연애 한 달 만에 임신이라고?

아니야 이건 꿈일 거야

하루만 안 봐도 보고 싶어


이집트 다합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 우리는 각자 부모님 집에서 지냈다. 매일 다합에서 같이 붙어다니다가 갑자기 떨어져서 지내니, 마음이 허전했다.


"오빠!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그랬어? 가까우면 지금 잠깐 좀 볼 텐데"

"그니까. 아쉽다. 근데 지금 뭐 해?"

"이제 막 이력서 지원했어"  

"응~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야"

"고마워~ 우리 내일 잠깐 만날까?"

"응.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

"그래. 내가 그쪽으로 갈게"


서로 백수여도 우리의 사랑은 막을 수는 없었다.

매일 너를 보고 싶어.

출처: 픽사베이


내 몸이 좀 이상해


다음 날, 그를 볼 생각에 기뻤다. 그러나 뭔가가 불편한 이 느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달력을 보았다. 생리를 안 한지 한 달이 지났다. 평소에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서 다합에서는 별 의심하지 않았다.


먼저 임신 중인 단짝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유미(가명)야, 너 임신 초기에 가슴 통증도 있었어?"

"응. 살짝 있었어. 갑자기 그건 왜?"

"일단 놀라지 마. 나 지금 생리는 안 한지 한 달이 지났어. 다합에서 두통도 있었고 오한도 있었어. 그땐 그냥 몸살 기운인 줄 알았는데, 오늘 하루종일 가슴 통증이 느껴졌어. 설마 나 임신은 아니겠지?"

"아.. 내가 겪었던 증상이랑 비슷한데... 임신 테스트기는 해봤어?"

"아니. 아직 안 해 봤어... 일단 내일 남자친구 만나기로 했어"

"그럼, 먼저 임신 테스트기 하고 남자친구를 만나. 해보고 나한테 연락 줘. 걱정된다"

"응. 알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마음이 심란했다. 그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임신이 아니여만 해.

출처: 픽사베이


한 줄 그리고 또 한 줄


오전 11시. 어느 지하상가에 있는 분수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를 만나기 한 시간 전,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분수대 근처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난생처음 임신 테스트기를 잡았다.


'제발... 아니여라...'


시간이 지나자 한 줄은 진하게 또 다른 한 줄은 희미하게 나타났다.


'아... 임신인가? 안돼...'


바로 유미에게 연락을 했다.


"유미야! 카톡으로 사진 보냈어. 나 임신 맞는 거야?"

"아.. 두 줄이네... 임신 맞는 거 같아. 근데 두 줄이 진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좀 애매해. 아직 남자친구 만나기 전이지?"

"하... 나 어떡해... 오빠는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야"

"그럼, 만나서 이 사실을 말하고 같이 산부인과로 가서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해"

"진짜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나 많이 당황했을 거야"


한참을 멍하니 임신 테스트기를 쳐다보았다.


'만약 임신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다합에서 우리의 사랑은 불타오른 게 맞았구나.

출처: 픽사베이


임신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화장실에서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보세요. 나 분수대 앞이야. 어디야?"

"오빠 도착했어? 나 화장실이야. 금방 갈게"


수많은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서 그 밖에 안 보였다. 그는 내 표정을 보고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오빠... 놀라지 말고 들어. 나 다합에서 몸이 안 좋아서 다이빙도 쉬고 그랬잖아. 어제 하루종일 가슴 통증도 느껴지고 가슴 모양도 좀 변한 것 같아. 나 생리를 안 한지 한 달이 넘었어. 유미가 지금 임신 중이라서 물어봤더니 임신 테스트기를 먼저 해보라고 해서 방금 화장실에서 하고 온 거였어. 두 줄이 나오면 임신이래. 근데 한 줄은 진하고 한 줄은 희미해서 정확하지는 않아. 우리, 지금 당장 산부인과로 가서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손에 들고 있던 임신 테스트기를 그에게 건넸다. 숨길 수 없는 그의 미소를 보았다.


"머라고? 임... 신?"

"응... 나 너무 떨리고... 무서워"


그도 잠시 당황했지만 나를 꽉 안아주며 말했다.


"놀라긴 했는데 진짜 좋다. 가자. 산부인과"

지금 내 옆에 네가 있어서 안심돼.

출처: 픽사베이


아니야 이건 꿈일 거야


우리는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예약자가 아니라서 대기 시간이 조금 길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모의 배가 보였다. 초조했다. 그는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임신인지 확인하고 싶다고요?"

"네"

"여기에 누워주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올려주세요. 보호자분도 이쪽으로 앉으세요"

"네"


이 장면, 드라마에서나 봤다. 그게 설마 나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안절부절못했다. 배에 젤을 발랐다. 초음파로 배를 확인을 했다.


'제발 아니여라'


"여기 보이시는 게 아기집이고요. 점처럼 생긴 부분이 아기입니다. 축하합니다. 임신 5주 차입니다. 아기 심장 소리 들려드릴게요"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콩알만 했다. 심장 소리도 힘찼다. 내 배 속에 아기가 있다니,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꿈이길 바랐다.

아가야, 그래서 나에게 다이빙을 하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구나.

출처: 픽사베이


나는 키울 수 없어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을 걸까. 그와 함께 카페로 왔다. 그도 직접 임신을 확인하니 심란한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빠, 내 마음을 먼저 말할게. 내 인생에서 아이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키울 수 있는 자신도 없어. 지금 우리 둘 다 백수에 모아둔 돈도 없고... 이 아이 낳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하..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방금 아기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듣고 왔잖아. 나는 그럴 수 없어... 직장은 지금 구하고 있고 돈은 벌면서 조금씩 모으면 되지"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한숨을 푹 쉬고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내 이야기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가 아이를 낳기 싫었던 진짜 이유를 말할게. 다합에서 우리 같이 보드카 마셨을 때, 답답한 마음 때문에 일단 세계여행을 시작했다고 했잖아. 사실은 부모님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도망친 거야. 내가 자라온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아빠는 매일 술을 마셨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욕하며 살았어. 오빠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안 좋은 모습을 보고 살았어. 성인이 돼서까지도 부모님의 싸움을 봤을 땐 내가 설자리가 없다고 느꼈어. 오빠가 처음에 나 밝아서 좋다고 했지? 아니야. 사실은 나 밝지 않아. 나는 늘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더 많아. 그런 내가 이 아이를 온전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나... 자신 없어. 기뻐야 할 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


그는 한참을 생각했다.


"밝은 모습 뒤에 그런 힘든 일이 있는 줄 상상도 못 했어. 그래서 그때 딩크족으로 살고 싶다고 한 거였구나... 네가 무슨 걱정하는지 알겠어. 그래도 생명이잖아. 나는 낳아서 키우고 싶어. 내가 그만큼 너를 더 많이 신경 써줄게. 다시 한번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

출처: 픽사베이


그럼에도 사랑을 택했다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자라온 가정환경을 대물림하면 어쩌지?'


두렵고 무서웠다. 혼자 튀르키예 여행하다가 신랑신부를 보면서 나도 결혼이 하고 싶었다. 그와 언젠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아이가 먼저 생겨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아이가 아닌 그를 먼저 생각했다. 나는 그를 많이 사랑했다. 그가 다합에서 다이빙 강사를 포기하고 용기를 내어 사랑을 선택한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그를 믿고 사랑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 나는 오빠를 많이 사랑하니까 이 아이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우리 아이 낳자"


입이 귀에 걸고 활짝 웃는 그를 보니 내 두려움은 사라졌다.

우리는 잘 살 수 있을 거야.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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