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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y 27. 2024

9살 아들과 함께 프리다이빙하기

발리 길리섬 여행기

인도네시아 발리
우리가 길리섬을 선택한 이유


2023년 12월. 우리에게 이주 휴가가 생겼다. 10년 전 나에게 은찬이가 와준 곳이자 엄마아빠가 처음 만난 곳이라고 알고 있는 이집트 다합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 말레이시아에 정착하는 시기라,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어느 나라로 가야 할까, 고민을 했다. 우리는 바다가 있는 휴양지로 가고 싶었다. 말레이시아 주변 국가인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에서 찾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길리섬은 이미 윤식당 촬영지로 유명하지만, 두 가지의 이유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1. 비치 스노클링이 가능한 길리섬


어느 휴양지든 스노클링을 하려면 투어를 신청해서 배를 타고 섬으로 이동한다. 길리 앞바다는 다합 앞바다처럼, 스노클링 투어 신청을 안 해도 스노클링이 가능한 곳이다. 바다에서 놀다가 힘들면 썬베드에 누워서 휴식도 할 수 있다.


2. 자전거를 타야만 하는 길리섬


길리섬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다. 교통수단은 자전거, 말마차, 전동바이크가 전부다. 도보를 제외하면 자전거가 가장 저렴하다. 우리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9살 아들을 데리고 편한 여행보다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숙소 갈 때는 말마차로, 메인 거리로 나갈 때는 자전거로 이동하다.
발리 길리섬, 트라왕안 바다에 빠지다.

두 발 자전거 도전


배가 고프면 숙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가야 한다. 은찬이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며칠 동안 남편은 아들을 뒤에 태우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꼬마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아빠, 저도 두 발 자전거 배우고 싶어요"

"그래? 잘 생각했어. 자전거 빌려서 연습해 보자"


나는 은찬이에게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저보다 어린아이도 타는데, 아빠 뒤에서 타고 다니려니 창피해요"


우리는 아들의 말을 듣고, 이제는 마냥 어린아이가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배움에 늦은 나이라는 것은 없다.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이다. 때를 기다리가 아이가 배우고 싶다고 할 때 시켜도 늦지 않다.


나는 알고 있었다. 충분히 여행을 통해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직원은 아들 키에 맞게 자전거 안장 높이를 맞춰주었다. 남편은 어린 시절에 아빠한테 배웠던 것처럼, 자전거 뒤를 붙잡고 달렸다가 손을 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은찬이 혼자서 페달을 밟는 연습을 했다. 처음이라 까치발로 중심을 잡으려니 불안했나 보다. 직원은 또다시 아들의 두 발이 바닥에 완전히 닿을 수 있도록 안장 높이를 더 낮춰주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숙소 직원들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은찬이를 응원했다.


"어어어!! 그렇지. 멈추지 말고 계속 앞으로 가!!!"


어쩌다 밟게 된 첫 페달. 지켜보고 있던 숙소 직원들은 아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방향을 조절하는 법까지, 오전에 이틀 동안 두 발 자전거에 적응했다.


처음으로 숙소 앞이 아닌, 메인 거리로 다 같이 나가기로 했다.


"은찬아! 자전거 타고 엄마 잘 따라와! 네 뒤에는 아빠가 따라갈 거야. 앞이든 뒤든, 계속 말마차 소리가 날 거야. 말마차가 다닐 때, 중심을 못 잡겠으면 무조건 한쪽 끝에서 멈춰야 돼. 위험해서 네가 다칠 수도 있어"


길리섬은 아주 좁은 길에 사람도 걸어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말마차도 다니고, 전동 바이크도 다닌다. 이제 막 자전거를 배운 초보자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다. 아들은 중심을 잡는 것이 미숙했다. 말마차와 부딪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연습했다.


"자전거 타고 옥수수도 사러 가고, 엄마아빠랑 같이 다니니까 엄청 재밌어요!"


우리는 은찬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아빠 뒤에 타고 다니다가 두 발 자전거 배우는 아들.
자전거 타고 옥수수도 사고 카페에도 가다.

자전거 타고 길리섬 돌기


트라왕안 메인 거리에는 맛집, 카페, 마사지가 있다. 항구 근처라서 말마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혼돈의 카오스를 지나면 길이 여유로워진다. 아들은 자전거에 적응했는지, 신나게 페달을 밟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바다가 보이는 어느 한 카페에 들렀다. 햇빛에 비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음이 평화로웠다.


카페 직원은 우리 가족을 보더니 사진을 찍어주었다. 바로 사진첩을 확인했다. 다 같이 웃고 있는 사진 한 장.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사이 주문한 커피와 음료가 나왔다.


"오빠! 길리, 진짜 여유롭다. 그렇지?"

"응. 자전거도 다 같이 타니까 좋다"


옆에 있는 은찬이도 말했다.


"말마차가 많이 없으니까, 타기 편해요"


우리들은 다시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길리섬을 즐겼다. 뿌듯함, 이 감정을 오래오래 기억하길 바라본다.

다 함께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추억을 쌓다.

맞다! 남편은 다이빙 강사였지!


스쿠버다이빙은 만 10세부터 만 12세까지, 주니어 오픈워터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주니어 오픈워터는 수심 12m까지 들어갈 수 있다. 그 당시 은찬이는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프리다이빙으로 알려주기로 했다.


숙소 수영장에서 남편은 아들에게 마스크 쓰는 법부터 알려 주었다.


"아빠 마스크 쓰는 거, 잘 봐! 마스크 쓸 때는 앞쪽에 있는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게 써줘야 돼. 마스크에 머리카락이 끼면 그 사이로 물이 들어가거든. 그리고 머리 옆쪽에는 마스크 스트랩 때문에 귀가 접히지 않았는지, 머리 뒤쪽에는 마스크 스트랩이 꼬이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해 줘야 돼. 자! 이제 직접 네가 마스크 써봐!"


은찬이는 눈이 반짝였다. 


"아주 잘했어. 마스크 옆에 길게 막대처럼 생긴 건, 숨 대롱이라고 불러. 숨 대롱은 '아~'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이~'해서 숨 대롱을 물고 '우~'해서 입을 오므리면 돼. 이제 스노클링으로 숨 쉬는 법, 알려줄게. 숨은 짧게 쉬는 게 아니고 크게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내쉬면 돼. 바다는 수영장과 다르게 파도가 있어서 숨 대롱에 물이 들어갈 수 있어. 그럴 땐 입으로 힘차게 '투~'하고 물을 내뱉으면 돼. 숨 대롱 끝에 보면 뚫려 있지? 여기로 물이 빠져나가. 자! 이제 아빠가 직접 보여줄 테니까 잘 봐봐"


아들은 숨 대롱을 물고 수영장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그렇지! 잘한다!"


감회가 새로웠다. 꼬마였던 아이가 어느새 커서 바닷속을 같이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다니, 믿기지 않았다. 은찬이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다합에서 남편이 나에게 스쿠버다이빙을 가르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자기, 방금 준 강사처럼 보였어. 멋있었어!"


10년 전, 첫눈에 반했던 그의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준 강사의 모습은 언제나 봐도 멋지다.

구명조끼 입고 스노클링 연습하기


우리는 각자 마스크와 핀을 가지고 숙소에서 15초 거리에 있는 트라왕안 바다로 향했다. 숙소를 이용하면 썬베드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늘이 진 썬베드 자리로 맡았다. 해변 근처에 은찬이가 입을 구명조끼도 대여했다.


엄마아빠가 바다와 수영장을 좋아하니 아들도 자연스럽게 물을 좋아했다. 지금까지 바다에서 튜브로만 놀았다면, 은찬이 스스로 숨 대롱을 물고 숨을 쉬어야 했다. 아들은 허리 깊이에서 연습했다. 어딘가 불편하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남편은 은찬이에게 괜찮냐는 수신호를 보냈다.


'아빠 괜찮아요!'


아들도 엄마아빠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였을까. 우리를 따라서 수심 2m, 3m, 4m, 5m 깊이까지 무서워하지 않고 잘 따라왔다. 


스노클링 연습이 끝나고 은찬이는 남편에게 말했다.


"아빠! 구명조끼 때문에 조금 아팠어요"

"목이 빨개졌네. 구명조끼가 커서 그래. 내일은 구명조끼 벗고 한 번 해볼래?"


은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핀을 신고 스노클링 하는 아들.

구명조끼 벗고 바다를 즐기다


전날과 같은 썬베드 자리로 맡았다. 남편은 스노클링 할 때 주의할 점도 알려주었다.


"은찬아! 바다에서 산호와 해양 생물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돼! 무조건 눈으로만 보는 거야"


수심 2m. 아들은 편안하게 잘 따라왔다. 나는 수면 위에서 은찬이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구명조끼 벗고 하니까 어때?"

"어제보다 움직이기 편해요"


이어서 남편도 말했다.


"갑자기 몸이 불편해지거나 무서움이 느껴지면, 아빠한테 바로 수신호 보내"

"네. 아빠!!"


우리는 은찬이가 바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수심 5m까지 돌아다녔다. 그날은 시야도 좋고 파도도 잔잔했다. 나는 황급히 손으로 남편과 은찬이에게 수신호를 보내고, 해양 생물이 있는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거북아, 안녕?'


거북이는 바닥에서 해초를 뜯어먹고 있었다. 거북이가 헤엄치면 우리는 다 같이 거북이를 따라갔다.


한 시간 반쯤 놀았을까. 휴식을 하기로 했다.


"엄마아빠! 거북이 엄청 귀여웠어요!"

"귀엽지? 엄마도 오랜만에 보니까 좋더라!"

"그니까. 아빠도 정신없이 구경했네"


트라왕안 바다 포인트 이름은 '터틀 포인트'이다. 그만큼 거북이가 정말 많았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두 마리까지도 볼 수 있었다. 길리가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거북이를 쫓아다니는 아들.

다합에 있을 때처럼, 썬베드에 누워서 바람과 공기까지 온몸으로 느꼈다. 나와 남편은 잠깐 잠이 들었다. 그늘은 점점 사라지고 뜨거운 태양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옆을 쳐다보았다. 은찬이는 책을 읽고 있었다. 


남편도 더웠는지, 달콤한 잠에서 깼다.


"오빠! 나는 좀 더 쉬고 싶어. 은찬이랑 둘이 갔다 와"

"응. 알겠어. 은찬아! 아빠랑 바다에 들어가자!"


남편은 내가 아닌 아들과 함께 스노클링을 즐기고, 나는 따가운 햇살을 더 즐겼다. 

어느새 피부가 새카맣게 타다.

아들과 함께 프리다이빙하기


오전 일찍부터 남편은 아들에게 설명했다.


"은찬아! 오늘은 프리다이빙을 해볼 거야. 물 안으로 들어가면 귀에 압력을 받아서 아프게 되거든. 그래서 귀가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퀄라이징을 해줘야 돼. 이퀄라이징을 하는 방법은 코를 잡고 '흥'풀면 귀가 '뻥'하고 뚫리는 느낌이 들 거야. 지금 한 번 해봐!"

"네! 귀가 뚫려요"


마스크와 핀을 착용하고 트라왕안 바다로 들어갔다. 은찬이가 발이 닿는 곳에서 멈췄다. 아들은 수영장에서 놀듯이, 잠영을 하면서 놀았다.


수심 3m에서 2m로 가는 방향으로 왔다. 나는 은찬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먼저 갈 테니까 잘 봐봐! 다 보고 엄마가 있는 방향으로 오면 돼. 이퀄라이징 꼭 하면서 와야 돼!"


은찬이는 코를 잡고 이퀄라이징을 하면서 내가 있는 방향으로 왔다.


"오!! 은찬이 잘하네~ 엄마보다 낫다"

"그러게. 엄마아빠는 이퀄라이징 배우는데 며칠 걸렸는데"

"그래요? 저는 이퀄라이징 잘 되던데요?"


10년 전, 나는 이집트 다합에서 이퀄라이징이 잘 안 돼서 스쿠버다이빙을 포기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아홉 살이었던 은찬이는 내가 못했던 것을 한 번에 해냈다. 그때 희열을 느꼈다. 흐뭇했다.


'자식이 나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좋은 거였구나'


어느 날 아들은 여유롭게 프리다이빙을 하다가, 바닥에서 무언가를 잡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엄마! 바다에서 쓰레기 주었어요"

"오!! 멋있다. 은찬이, 그린 다이버네"


은찬이 스스로 바다 환경을 생각해서 쓰레기를 주었다. 


바다는 수영장과 다르게 파도도 있고, 조류도 있어서 아홉 살 아이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엄마아빠가 프리다이빙 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냈다고 했다. 우리를 믿어준 아들이 멋있었다.


아들이 신생아일 때부터 기다렸던 이 순간, 그렇게 우리는 함께 수심 5m까지 프리다이빙을 했다.  

엄마아빠와 함께 프리다이빙을 하는 아들.
여유롭게 프리다이빙을 하는 아들.

길리는 다합과 비슷했다


발리 13일 중에 꾸따 2일, 길리 11일을 지냈다. 우리는 여유롭게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바다에서 놀다가 힘들면 썬베드에 누웠다가, 배고프면 자전거를 타고 밥을 먹었다가, 또다시 놀기를 반복했다.  


바닷속에는 곰치, 멸치, 니모, 거북이, 이글레이, 예쁜 산호, 다양한 물고기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예쁜 선셋과 쏟아지는 별을 보며, 그 순간을 눈으로 담았다.


언제든지 바닷속에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는 환경과 길리만의 분위기는 이집트 다합 감성과 비슷했다. 여름, 바다, 다이빙, 세 박자가 맞은 여행이었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 아들과 함께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매일 볼 수 있는 거북이.
귀여운 니모와 물고기.
예쁜 산호와 물고기.
길리의 석양과 밤하늘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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