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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Apr 18. 2024

요리도 게임도 못하는 여자

할 줄 아는 건

일단 쉬기로 했다. 내가 스쿠버다이빙을 포기한다는 말을 듣고 준 강사와 아영(가명) 언니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언니도 처음에 이퀄라이징이 잘 안 돼서 귀가 아팠다고 했다. 이퀄라이징을 연습해서 지금은 다이빙 교육을 다 받았다고 말했다. 언니는 다른 강사분에게 배웠다. 준 강사 역시 처음 배울 때 이퀄라이징을 바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합 블루홀에 꼭 가보겠다는 의지가 다시 생겼다.    


'그래,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계속 이퀄라이징을 연습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물멍 좋아하는 여자


다합 블루홀에 가려면 스쿠버다이빙 어드밴스 과정까지 5일 정도 걸린다. 또한 장기 여행자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면 금방 헤어지지 않는다. 여행자에서 동거동락하는 식구가 된다. 자고 일어나면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총무를 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돈을 걷었다. 그 돈으로 아침에 먹을 음식을 사고 저녁에 먹을 장도 봤다. 아침 메뉴는 빵을 먹거나 시리얼을 먹었다. 스쿠버다이빙은 아침 일찍 시작한다. 아침을 다 먹으면 숙소에서 다이빙 샵으로 향한다.  


숙소에 남은 사람은 나와 아영 언니, 둘 뿐이다.

 

라이트하우스 어느 한 레스토랑. 우리는 성향이 비슷했다. 이곳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이랄까. 수다로 이 시간을 채우지 않았다. 아영 언니는 책을 읽었고 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튀르키예에서는 하루에 사진을 몇 백장씩 찍었다. 그러나 다합에서는 사진 두 세장이면 충분했다. 사진으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다합의 풍경은 물멍 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고 아영 언니는 먼저 숙소로 들어갔다. 나는 의자에 있는 쿠션에 기댔다. 파도 소리에 집중하며 여유를 더 즐겼다.


나는 물멍을 좋아하는 여자다. 

다합, 라이트하우스

요리도 게임도 못하는 여자


게스트하우스 공용 거실에는 저녁 준비로 바쁘다. 저녁 메뉴는 닭백숙.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요리를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요리를 못 하는 사람은 야채 썰기를 하거나 설거지를 한다. 내 앞에 있는 양파 껍질을 벗기기 위해 칼을 잡았다. 양파를 사과 깎듯이 돌렸다. 옆에 있는 수진(가명) 오빠가 나를 보고 말한다.


"양파를 왜 그렇게 까?"


처음이었다. 스물여덟이 되서까지 해 본 적이 없었다. 오빠는 양파 껍질을 벗기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눈물이 흐른다. 이집트 양파는 엄청 매웠다. 오빠는 모르면 배우면 된다며 울지 말라고 농담을 던졌다. 전 날에는 이퀄라이징도 알려주고 여러모로 고마운 오빠다. 7명이 다 같이 저녁 준비를 해서 닭백숙이 금방 만들어졌다. 현지식도 맛있지만 오래 여행하면 한식이 가장 맛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다 먹었다. 요리 못하는 사람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보드 게임으로 진 사람에게 설거지 몰아주기를 한다. 


《루미큐브》 보드 게임

1부터 13까지의 숫자와 조커가 적혀있는 타일을 무작위로 14개를 고른다. 자신의 게임판에 올려놓고 게임 규칙에 따라서 14개의 타일을 모두 바닥에 내려놓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난감했다. 나는 루미큐브도 처음이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지훈(가명) 오빠, 윤호(가명) 오빠, 수진 오빠, 아영 언니, 4명이 게임을 시작했다. 언니와 오빠들은 게임판에 있는 타일이 줄어드는데 나는 타일이 줄어들지 않았다. 지훈 오빠는 나를 보며 말한다.


"게임 왜 이렇게 못해?"


사실 어떻게 하는 건지 이해를 제대로 못 했다. 가장 먼저 게임을 끝낸 윤호 오빠가 내 옆에서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꼴등을 했다. 주방을 보았다. 요리한 흔적들이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야채들, 기름기가 많은 냄비, 수많은 식기구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주방 주변을 치우고 고무장갑을 꼈다. 나는 꽤 오래 서있었다. 그날 이후, 게임으로 추억을 쌓은 만큼 설거지의 양도 쌓여만 갔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루미큐브 게임

나는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여자다.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할 줄 아는 건 물멍과 설거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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