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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ug 23. 2024

건강검진  

채뇨는 안 무서워

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학교에서 개학 전에 건강검진을 하고 오라고 했거든요. 평소보다 빨리 밥을 먹고 준비를 마쳤는데 엄마는 천하태평입니다. 엄마 양말까지 찾아 주고선 기다렸습니다.


엄마가 새로운 길로 가면 내비게이션을 켭니다. 내비게이션이 우회전을 하라고 해도 엄마는 직진을 합니다. 엄마가 우회전을 하면 경로를 다시 탐색을 해준답니다. 엄마와 내비게이션은 대화를 하며 길을 찾아갑니다. 가는 길이 좀 걱정되기는 합니다. 엄마는 걱정 말라며 길을 다 안다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높은 언덕을 넘고 생전 처음 가 보는 길을 얼마만큼 달렸는지 모릅니다. 주차장을 돌아 돌아 이번에는 병원 주차장 밖으로 나갑니다. 한 바퀴를 더 돌고 다시 입구로 들어와 주차를 합니다. 엄마는 돌고 도는 걸 좋아하나 봅니다.


병원으로 들어가려니 왠지 걱정이 됩니다. 병원 문 앞에서 마스크를 씌워주는 엄마를 보며 코로나 때가 떠올랐습니다. 면봉으로 또 코를 쑤시지는 않을까요? 엄마는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코를 많이도 쑤셨습니다. 정말 다시는 면봉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다행히 간호사 선생님은 착해 보입니다. 마스크를 썼지만 비옷은 안 입었습니다. 고무장갑도 안 꼈습니다. 근처에 면봉도 안 보입니다. 휴우 ~ 다행입니다.


안내를 받아 키를 재고 시력을 재고 이것저것 많이 쟀습니다. 치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양치질을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상담실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던 중에 선생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낙상주의’ 스티커를 보고 궁금한 게 생겼거든요. 저건 왜 있는 거죠?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까요?


 “나이 드신 분들이 침대에서 넘어져 다칠 수 있거든. ”


그런데 왜 벌써 다리가 부러져 있는 걸까요? 호기심이 많아 큰 일꾼이 되겠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습니다. 저는 일꾼은 싫습니다. 왜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붕대를 감고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채혈실에 들렀습니다.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몸이 저절로 굳어졌습니다.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며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아파요? 아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피를 빼는데 안 아플리가 있나요.  엄마는 채혈과 채뇨를 설명해 줍니다. 이곳은 피를 빼고 소변을 검사하는 곳이라고 말해 줍니다. 저는 채뇨를 하면 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소변을 뺀다고요? 소변을 그냥 누면 안 될까요 어머니? 저 소변을 잘 눌 수 있습니다! 띵동이가 울리고 들어가니 다행히 피를 빼는 것처럼 바늘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제가 믿음직해 보였는지 종이컵을 하나 줍니다. 소변을 빼지 않고 잘 받아와 선반에 올려두고 얼른 나왔습니다. 저 잘했지요 어머니?


건강검진이라고 해서 오랜만에 병원에 가 많이 긴장했는데 면봉으로 코도 안 쑤시고, 피도 안 빼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가끔 코가 막히기는 하지만요. 그리고 열심히 양치질을 하겠습니다.




아이의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 센서가 달려 있는 것 같다.


채혈과 채뇨를 비교하며 겁에 질린 아이를 왠지 골려주고 싶었다. 나도 참 짓궂은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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