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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Sep 17. 2024

우리 집이 귀신같아

풀꽃 하나 손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녀석의 키가 꽤 크다는 말이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며 만나는 꽃이 몇몇이던가. 그들의 색깔은 영롱하기도 하다. 화단에 얌전히 있지 못하고 화단과 시멘트 계단의 경계를 한참 넘어와 내 눈을 붙잡는다. 그건 눈에 띈 것이 아니고 진로를 방해하며 삐죽 뻗어 나와 있어서 그렇다. 노란 잎은 소담하고 튼실한 수술을 가진 꽃은 키가 크다. ‘예쁘다’ 하며 한 발씩 층을 밟아 내려간다. 꽃이 흔들며 반갑단다. 꽃잎이 떨어지고 수북한 중앙의 노란빛이 연둣빛으로 변했다. 한 발 더 내려가니 수술인 줄 알았던 중앙 부분의 꽃이 터지며 벌어져있다. 가만 보니 이 녀석 도깨비바늘이다. 매년 계단 근처에 피어 집에까지 들러붙어 따라 들어오는 그 녀석이다. 나를 반긴 이유가 있었다. 노랑머리는 어느새 작은 가시와 같은 도깨비 뿔을 여러 개  달고 거무튀튀하게 변할 테다. 여물어 잔뿔이 여럿 생기기 전에 뽑아 버려야 한다.


그래도 꽃은 참 예쁘다.

계단을 내려가며 관목 아래쪽까지 자잘하게 핀 파란 꽃은 달개비다. 예초기로 밀기만 하고 손으로 뽑아주지 못한 풀들이 숨어있다 잔뜩 올라왔다. 파란 꽃은 참 드물다. 그런데 달개비는 파란 빛의 흔한 들꽃이다. 그 빛은 잊지 못할 정도로 시원하고 속이 뻥 뚫리는 파란빛이다. 그래서 이름을 알게 된 이후로 절대 잊지 않은 식물이다. 국민학생이었던 어린 시절 달개비 잎을 가져다 표피세포를 관찰했다. 현미경과도 처음 만난 때였다. 꽃은 잎이 다 떨어진 것 같다. 엉성하게 붙은 두 잎이 전부다. 꽃잎 색깔도 그렇지만 두 장 꽃잎도 참 별스럽다.


키 낮은 식물인 줄 알았는데 키자란 쑥 사이에 피어있다. 관목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보는 것을 봐선 담쟁이는 아니지만 줄기에 기대어 오를 수 있는 힘을 가진 식물이다. 녀석.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것 봐라. 청아한 코발트블루 둥그런 날개를 가진 작지만 당찬 나비 요정 하나가 하늘을 향해 곧 날아오를 것 같다.


흔하고도 예쁘고 작은 풀꽃

달개비.

닭의장풀보다도 달개비가 좋다.



추석날 아침.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포장도로도 바싹 말랐다. 농부 아빠는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싶다. 추석 연휴 날씨 예보를 쭉 살펴보고선 화요일에  나가겠다 여러 번 말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풀잔치의 현장이다. 현관문을 나가면서 한숨 섞인 말을 내뱉는다.


우리 집이 귀신같아.


그렇다. 비가 여러 날 왔다. 날도 썩 따뜻하였다. 풀이 좋아하는 생육환경이다. 우리 집이 풀로 뒤덮이고 있다. 농사와 집 주변 풀관리를 해야 하는 주말농부네. 어디서 덩굴식물 씨앗도 날아와 담을 기어오르고 있다. 이 환장의 풀잔치 속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 며칠 비가 내리고 피어난 들꽃은 더 많다. 그중 농부 아빠가 아는 꽃이라고는 부추꽃뿐이다.


나가고 싶으나 풀이 붙잡아서 오늘도 눌러앉을까? 풀근무복으로 무장을 한다. 장화와 장갑을 끼고 투명 얼굴 가리개를 한다. 포장과 같은 긴 앞치마를 두르고 예초기를 돌린다. 그가 아는 오직 하나뿐인 부추꽃.  아! 또 하나 아는 꽃 라벤더는 해가 갈수록 크기를 키우고 있는데 씨가 우수수 떨어지도록 건들지 못하고 있다. 농부 아낙이 라벤더를 한 아름 꺾어다 꽃의 존재를 알려줬다. 지난번 화단 아래쪽에 하나 더 있던 커다란 라벤더를 한 뿌리를 베어버려 잔소리를 잔뜩 들은 후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현관 앞 라벤더는 예초기의 날을 항상 피한다. 줄기가 굵어지고 크기가 커져서 화단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겨울을 나는 관목의 반열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이름 모를 초록 관목 몇 가지와 남천 그리고 라벤더가 겨울에도 근근이 버티고 있다. 다른 풀들은 모두 농부 아빠가 휘두른 예초기의 빠른 날을 피하지 못했다. 귀신같은 집이 한순간에 훤해졌다.


뿔이 잔뜩 난 도깨비도 신비한 색깔의 달개비 요정도 사라졌다.



집 주변만 풀이 무성할까 밭은 더욱 아름다운 풀잔치 마당이다.


그 마당에 농부 아빠는 풀이 많은 날은 포클레인을 끌고 나간다. 느린 것 같으나 예초기보다 빠르단다. 중앙 밭 경계를 한 번 밀고 하천 변 거대한 덩굴들을 포클레인으로 얼추 정리했다. 나머지는 예초기로 돌려야 하지만 오늘은 날이 더워 여기까지. 가을바람에 괜찮겠지 하였으나 3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얼굴이 익을 정도로 더워서 머리가 아프단다.


추석 즈음이면 풀을 자르는 기계 소리가 산을 울린다. 초록 나무 사이로 도롯가에 세워둔 차들이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 벌초는 일 년에 한 번만 하니 좋겠다. 농부 아빠는 매주 풀과 씨름하느라 바쁘다. 풀을 대충 정리해 놓고 자전거를 한 바퀴 휘이 돌고왔다.


집도 밭도 가꾼 만큼 윤이 난다. 시골의 집은 더욱 그렇다. 풀 자른 마당과 밭 언저리가 오랜만에 매끈하다.

 

보기만 하면 좋다. 농부 아낙은 그래서 거실에 앉아 창밖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한다. 무장해제 상태로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걸 즐긴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서 시끌벅적한 아름다운 삶은 살아 보아야 안다. 그런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건 참 힘든 일이란 걸 이제는 안다.



지금은 창 밖의 풍경이 그저 한 폭의 산수화면 좋겠다. 일하기 싫은 날은 농부 아낙이라는 인물은 쏙 빼고 산수화를 그리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노을 지는 그림 속 이삭을 줍는 여인들처럼 허리를 굽히고 서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림 속 인물이 되어야 아름답다. 나는 깎아지른 절벽과 푸른 소나무와 굽이치는 물을 좋아한다. 밭은 그곳에 넣지 않았으나 항상 인생이라는 큰 그림은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정해서 그려주지 않는 법이다. 겪어보고 부딪쳐보고 수정하고 붓질에 덧칠을 하며 수정해 나가는 게 인생사가 아닐까. 우리의 시골풍경은 늘 그렇게 변한다.



계절이 변하고, 매년 날씨도 변하고, 심는 작물도 풍경도 변한다. 그리고 농부 아빠도, 농부 아낙도 변한다. 생각도 변하고 또 매년 나이가 든다. 40대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었던 시골살이가 50대 60대 그리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하늘의 구름이 매일 변하듯 우리는 늘 그렇게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살아갈 테다. 시골은 느린 듯하였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겨울날 눈밭의 시골은 더 볼만하다. 지난해에는 눈이 얼마나 왔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농부아낙은 체력을 키우며 눈삽을 들고 하늘과 맞짱을 떴다. 시골살이 쉽지 않으나 적응하는 자는 즐기고 적응하지 못하는 자는 괴로운 법이다. 나는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


매일 보는 하늘과 산, 들판. 아침 산을 팔랑거리며 나는 나비, 나무를 오르는 청설모,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 아침 이슬, 빗물의 노래, 바람과 나무의 춤사위. 유난히 커다란 달, 빛나는 별빛. 아이들은 달빛이 밝은 것을 시골에 와서야 알았고 늘 별빛을 보며 산다. 때로는 우리 집이 귀신같기는 하지만 시골살이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단 하나 벌레는 넘사벽이기는 하다.





삶이 늘 그러하듯 시골살이도 아름답고 때로는 더욱 아름답지만 때로는 힘에 겹고 눈물 겹기도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늘 빛나기를 바랍니다.


체험 농촌 삶의 현장을 마칩니다. 그동안 시골살이 주말농부의 애환과 즐거움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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