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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Sep 10. 2024

시골살이 아침 풍경

시골살이 가을 아침 풍경을 보라. 농부 아낙이 농부 아빠에게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특별히 부탁한 잔디화단이 어떠한가. 잔디를 판으로 빽빽하게 깔아 한치의 빈 틈이 없었건만 이름 모를 풀들은 억세게도 틈바구니를 비집고 올라왔다.


시골살이 잔디마당은 누구나 꿈꾸는 풍경인데 풀 감당이 걱정되어 너른 마당에 온통 시멘트를 부어버렸다. 회색 시멘트 마당은 주차장으로 사용하며 회차를 할 정도로 너르다. 흙 한 톨 밟지 않고 현관문까지 들어올 수 있는 건 시골이나 도시나 똑같다. 그러나 초록 잔디 미련 한 자락을 버리지 못하고  거실창 아래 작은 잔디화단을 만들었다. 손바닥만 하니 이쯤이야 관리할 수 있겠지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잡초가 늘었다. 잡초를 골라 뽑을 일도 없이 이제는 잔디와 잡초가 반반이다. 치킨도 반반이 좋은데, ‘반반잔디’ 이름도 좋다. 그래도 괜찮다. 겨울이면 잡초 녀석들은 월동이 안 된다. 겨울에 오롯이 잔디만 보인다. 밀짚모자를 엮어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밀빛의 겨울 잔디는 자라지도 않는다. 다른 계절에도 그렇게 관리가 되면 참 좋을 텐데.


이제는 적응이 되어버린 ‘반반잔디’ 화단 옆을 지나간다. 가을 아침 이슬을 머금어 촉촉한 풀끄트머리가 태양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침은 반짝임이다. 초록 이슬에 비친 선선한 태양빛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가 회색빛 시멘트 마당을 지나 까만 아스팔트 길을 건너 밭으로 간다. 파랑 긴 장화를 신었을 뿐 그 어떤 무장도 하지 않고 당당히 걷는다. 그렇게 당당히 반팔 차림으로 나갔다 모기에게 엄청 뜯겼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풀밭 아님 잔디밭


쭉쭉 뻗은 빌딩숲과 같이 솟아 오른 대파밭이 목적지다. 대파를 뽑아 손질해 가려고 바쁜 아침 손수 밭으로 행차하신 농부 아낙네 대파를 쑥쑥 뽑아낸다. 하나를 뽑으니 톡 부러지고 서넛을 잡고 한꺼번에 뽑아내야 부드러운 흙을 이겨내며 함께 올라온다. 뿌리가 서로 엉켜 한 몸과 같은 신세. 양손에 하나씩 잡고 반대쪽으로 당겨야 뿌리가 떨어진다. 그제야 뭉터기 흙도 우수수 떨어진다. 흙을 집에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고 겉 잎 두 개 정도를 쭉 잡아당겨 뜯어내고 하얀 대가 나오도록 한 다음 뿌리를 칼로 자른다. 매끈하고 흙 없는 깨끗한 파만을 가져가려는데 자꾸 튀어 묻어버리는 흙이 영 마뜩잖다.  

주소 : 파 빌딩 로 3번길

마트 파는 뿌리도 깨끗한데 흠. 깨끗이 손질해서 한 봉지 담았으나 바닥에도 손잡이도 맨 흙투성이다. 봉지를 손에 달랑달랑 매달고 고추밭을 돌아 돌아 빨간색이 안 보이게 둘러 간다. 빨간 고추를 보면 또 따야지 싶어 눈을 감는다. 잎사귀 어느 그늘에 숨어 커졌는지 모를 맷돌호박 구경하고 장화 신은 발로 풀숲을 헤치고 다닌다.


생강은 키가 쑥쑥 커서 울 아들들 보는 듯하다. 들깨는 두 번이나 순을 쳐줬는데도 생강보다 한참 더 크다. 잘 큰다고 ‘궁둥이팡팡’ 해주고 싶다. 대견한 생강이들. 멋지다 들깨야. 장하다 얘들아!

좌 생강, 우 맷돌호박
거대 숲이 되어버린 들깨밭
들깨꽃

기다란 풀지뢰 밟고서 깻잎 구경 갈까 말까 망설이다 한 발 두 발 가까이 가니 깻잎 향이 풍겨온다. 아직 깨는 없고 하얀 꽃이 줄줄이 달렸다. 아기자기 작은 꽃이 후드득 떨어지면 묵직하게 들어앉은 들깨가 토옥 건들며 또 후드득 떨어질 테다. 향긋한 들판의 깻잎 향과 더불어 들려오는 날갯짓. 벌 소리가 분명한데 깊은 산중 들깨 숲에 간혹 한 마리씩 꿀을 따는 벌이 보인다. 붕붕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거센지 앞으로 더 가볼 엄두를 못 내고 멀찍이 서서 잠시 깨밭 구경을 한다. 푸른 들깨밭. 깨가 쏟아지기를 기다리는 여름 끝, 가을 길목에서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맞았다.


올려놓은 된장국이 퍼뜩 생각나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금방 밭에서 뽑아온 파 두 뿌리를 송송 썰어 넣고 된장을 풀어 아침밥을 차렸다.


파 봉지는 흙투성이라 집에 들고 들어오지 못하고 현관에 놔뒀다. 출근할 때 들고 가야지 마음먹었는데 깜빡 잊고 나왔다. 더운 날씨에 현관에 파 냄새가 진동을 하겠다. 봉지 안에서 파찜이 되어있으려나. 아휴 깜빡이 농부 아낙 그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호박이 누렇게 익어간다. 가을이 오기는 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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