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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농업자 Apr 02. 2024

월요일 좋아

근로계약의 종료, 되찾은 월요일

출처 스폰지밥 3D 극장판 예고편(유튜브)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공분을 산 스폰지밥의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다.

월요일 좋아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월요일을 좋아할 수 있느냐고, 패드립만큼이나 더 나쁜 망언이 아니냐며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대사 

스폰지밥은 요식업 종사자이기에 손님이 많은 주말보다는 월요일이 좋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타당한 추측과 그래도 대한민국의 개미 직장인들에게 너무나 폭력적인 대사가 아니냐며 넷상에서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물만 없으면 오늘내일할 새X가..."


 언제부터 월요일을 싫어했는가, 유치원을 다닐 때도, 학교를 다닐 때도 살면서 월요일을 좋아해 본 적은 뇌를 뒤집어 엎어 샅샅이 찾아봐도 없는 것 같다.

 일요일 저녁은 늘 다가오는 월요일에 불안함으로 몸서리쳐야 했고 불안하게 시작한 월요일은 쌓이고 쌓여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가는 세월 누가 붙잡을 수 있나, 세월의 풍파에 떠내려간 청춘들을 수습조차 못한 채, 어느 날 돌아본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버렸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무상함에 그토록 안타까워 하면서 왜 '월요일'은 그저 빠르게 지나가기만을 바라왔을까.

 우리는 한 주의 시작과 함께 이른 아침 침대 위에 눈을 뜨면 곧장 금요일 6시를 기다린다. 나이를 먹는 속도는 월요일을 마주할 두려움과 주말을 갈급하는 마음의 크기와 비례했다.


 회사생활에서는 도저히 월요일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사회의 굴레 속에 내던져진 나의 월요일은 도통 나의 삶이라 보기엔 무늬가 달랐다.

 빼앗긴 월요일을 다시 되찾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했다. 월요일을 내어주고 그동안 누려왔던 월급의 행복과 소속감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 

 퇴사를 고민하던 시간은 내게 그동안 월요일의 가치가 나에게 얼마만큼 행복으로 돌아올지 저울질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결국 고민 끝에 안락함을 반납하고 나의 월요일을 되찾아왔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월요일을 좋아했던 때는 한글도 못 떼던 영유아 때였던 것 같다.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기, 일요일이든, 월요일이든 그저 매일이 새롭고 야트막한 나의 세상 안에선 내가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마지막 근무를 끝으로 남은 연차를 소진한 뒤

오늘로 회사와의 근로계약이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드디어 다가오는 월요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월요일도 내가 사랑해야 할 소중한 청춘

 

 퇴사라는 도피처를 앞세워 나의 삶으로 되찾지 못해 월요일인 내일을 하염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용기가 없다 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직장인 한 명의 소중한 월요일이 모이고 모여 회사가 숨을 쉬고 사회가 움직이고 있으니 나의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톱니바퀴 하나를 덜어내며 그 고귀한 희생들에 늘 감사함을 잊지 않고자 한다.


허나, 분명한 건 끔찍한 월요일도 분명 내 남은 생에 소중한 시간이고 인생이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월요일을 되찾을 방법을 찾길 바란다. 그것이 퇴사가 아닐지라도


결국 나도 미친 네모난 노란색 수세미가 하는 대사를 세상밖에 던져본다.

"월요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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