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ryu Dec 19. 2024

귀여운 악당

공방 아이들

영화 <ET>에서 사람과 외계인이 서로의 손끝으로 교감하는 명장면이 나온다.

나와 공예의 첫 만남이 그랬다.

찰지고 말랑한 흙에 손끝이 닿던 순간.

내 손은 물체의 정보를 읽고 민감하게 반응하듯 전류가 흐른다. 하나로 이어진 것같이 온전히 마음이 빼앗기고 매혹된다.

도자기에 이어 지점토, 클레이로 넘어온 흙에 대한 감동에 붙잡혀 30여 년 공예 인생을 살았다면, 과한 표현일까.

이제는 첫 수강을 하는 이들의 표정에서 그때의 나를 보게 되면 벅찬 감동이 차오른다.


이전 글(아이는 아이 go다)에 소개했던 성경이 같은 어린이를 첫 수강생으로 들이고 수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겁도 없이 아동, 청소년들의 공예 선생이 되어 있었다.     

성경이 처럼 영리하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만나서 즐거움과 보람이 되었지만, 감당되지 않았던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들은 내게 작은 악당이었고 나도 마찬가지로 아동, 청소년 비전문가로서 한계와 부족함을 드러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C는 주의력 결핍에 과잉 행동장애(ADHD)가 있었다.

공예를 배운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C의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내게 C를 맡겼다.

C는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자퇴했고, 대안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이탈하기 직전이었다.

C의 엄마는 제 아이 사용 매뉴얼 같은 주의 사항도 알려 주셨는데, 나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C는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아역 시절 찍었던 영화 <패닉룸>에서 보여 준 병약하고 중성적인 모습을 닮았다.

내 눈에는 꽤 멋진 여자애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스틸



C도 여지없이 공예라는 외계 물체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 감동이 지속되었다. 그때만은 제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무척 좋았고 뿌듯했다. 어딜 봐서 ADHD 인가 싶었는데....


나와 친해진 뒤, C는 제 속엣말을 한 번씩 툭툭 던지곤 했다.


“살인 빼고 다 해봤어요.”

“그래...?”

“엄마 때문에 그건 참아보려고요.”

“효녀 났네.”

처음에는 농담이라 여겼다.


C의 말들이 전혀 근거 없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C의 엄마가 달리 보였다.

C가 남자 친구로 인해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자, C의 엄마는 아예 딸의 남자 친구를 집에 들여 같이 살도록 했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엄마 앞에서만 하라고.

C는 C의 엄마가 쉰에 낳은 늦둥이였다. C의 엄마는 딸을 위해서 다 내려놓은 상태였다. 열린 마음으로 품어 주는 부모 덕분에 C는 극단적인 상황을 겨우 면하고 있었다.

여기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C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을 뛰어넘었다.     


어느 날 C와 공방 아이들 간의 다툼이 일어났다.

숨소리가 유독 큰 초등 1학년이 있었는데, 무언가에 집중하면 숨결이 거칠어지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하도 쌕쌕 대니 초등 4학년이 면박을 주었다.

초1은 숨소리를 조금 줄였다가 다시 내자 초4가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에 집중이 안 되잖아. 쌤! 유치원생은 왜 받았어요. 수준 떨어지게.”

초4가 나까지 원망한다. 기가 찼지만, 나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초1 엄마는 자기 애를 안 받아줄 것 같아 나이를 살 속였다고(실제 나이는 5살로 추정) 나중에 털어놓았다.

나는 자격증반, 성인 수강생에게 주력하려고 아이들은 제한적으로 받았다.

그것도 장기 수강하는 아이들 수가 누적되자,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어쨌든 가짜 초1은 크게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누나와 형들 사이에 끼여 꿋꿋이 잘 버텼다. 덜 여문 손으로 공룡 캐릭터를 완성하는 동안 계속 쌕쌕 댔다. 초4의 잔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x발 너나 닥쳐!

멀찍이 앉아 있던 C가 욕설을 날렸다. 초4는 이내 울음을 터트릴 기세였다. 내가 나서면 C를 더 자극할 것 같아서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C의 폭언은 계속 이어졌다.

“... 못생긴 게 손톱은 길러가지고. 간도 파먹겠어?”

그 말에 초4는 C를 겁먹은 듯이 쓱 보고는 만들고 있던 인형 눈에 실보다 가늘게 빚은 속눈썹을 손톱으로 떠 올려 깔끔하게 붙이는 솜씨를 보여줬다.

언니가 더 바보라는 듯, C를 한 방 먹였다.

초4가 17세 C보다 공예 3년 선배였다. 나이가 6살 어려도, 공예 3년 차면 C뿐 아니라 초급자 성인도 맞짱 뜰 짬밥이 된다.

손톱이 섬세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경지에 오른 거니까.

이런 즐거움과 보람이 없었다면 아이들 수강을 길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C가 작업대를 발로 세게 걷어찬 건 순식간이었다. 그 위에 있는 것들이 엎어지고 튕겨 나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가짜 초1이 힘들게 만든 공룡 캐릭터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사지절단 되었다. 의젓하던 가짜 초1은 울음을 터트렸다. 공방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C를 제압하려다 그 기세에 떠밀려서 넘어졌다. 170cm가 넘는 여자애는 성난 멧돼지나 다름없었다.      


 난장을 만들고 뛰쳐나간 C는 공방 문을 닫을 시간에 다시 나타났다.

C는 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소지품을 찾으러 왔노라고 했다.

소지품을 다 챙기고도 미적댔다.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듯 보여, 나는 C에게 네가 이런 식이면, 공방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C는 욕설과 정신 나간 말본새로 내 속을 긁어 댔다.

나는 C에 대해 품었던 일말의 희망, 미련조차 남김없이 제거해 버리기로 했다.

"너는 네 엄마만 죽도록 괴롭히고 아프게 하다가 평생 쭉 거고, 나는 그런 네가 무섭고 끔찍하다고..."

이런 독한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심약한 나의 분노가 제대로 터지면, 눈물이라도 보일 것 같아, 참느라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했는지 모른다.

내 모진 말 보다, 못난 눈물에 C는 살짝 당황하는 듯했다. 몇 초도 가지 않을 반성의 기미가 비쳤지만,

나는 어른답지 못한 못난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누구도 C를 바꾸어 놓을 수 없고, 내가 C를 감당할 수 없어 놓아 버린다고 누가 뭐랄까. 그래봤자 C에게는 가볍게 긁힌 상처일 뿐이라고.. 나는 내 한계를 받아들였다.

 

그런 일이 있고, 죄 없는 C의 엄마만 내게 사죄했다. 어머니보다 제가 더 죄송했다는 말을 나는 빈말이라도  수 없었다. 그건 말로 털어 버리는 가책이 되어서도 안 되었다.      


C와 함께한 시간은 비록 1년이 되지 않았지만, 공예가 한 번도 싫증을 느끼지 않았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우리만이 아는 손끝이 찌릿한 첫 감동을 공유했던  사실만은 변하지 않겠지.

나는 C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어릴 때 모습을 닮은 꽤 멋진 여자애로만 기억하기로 했다.


초4는 중학생이 되자 해외로 나갔다. 외국 학교에서 제 손재주를 발휘해서 조별 프로젝트에 팀 성적을 올리는데 기여했다고 전해 왔다.        


가짜 초1은 콧바람 엄청나게 불어대며 완성한 공룡 캐릭터를 집에 들고 가서 엄마에게 '첫 작품 만들었어'라 말했고, 젊은 엄마는 '작품'이란 말에 감동해서 나만 보면  '선생님 울아들이요. 말이 늦된 애가 '작품'이라는 고급어를 썼어요.'하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을 알면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지 못한 내가 보석 같고 때론 귀여운 악당 같은 특별한 아이들을 어디서 경험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신의 은총이 아닐까 싶다.




포크아트 作  by miry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