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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yu Dec 05. 2024

고소한 날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면, 큰길 하나를 두고 시장과 상가들이 길목마다 이어져 있다. 

그 거리는 늘 복작거렸고 활기찼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지금은 지형이 다소 달라졌다. 

하나, 둘 사라진 점포들과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낸 노포들. 새로운 상호를 건 매장들이 채워졌다. 이전의 활기찬 모습을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나운 짐승이 밟고 할퀴고 지나간 상흔은 남았다.

 

골목 도로변과 인접한 내 공방은 넓은 통유리를 통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십 년간 살아온 익숙한 동네인데, 이전에는 만나보지 못한 사건, 사고를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학원을 할 때는 바깥 사정은 몰라도 됐지만, 공방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이웃한 가게에서부터 도로변 너머까지 내 시각이 확장되고 줌인되었다.   

어쩌다, 아주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접하기라도 하면, 내게 없던 신체 기능이 촉수처럼 돋아났다. 


맞은편에 신용금고가 있었는데. 강도가 든 적이 있었다. 다행히 불발에 그쳤다. 

한동안, 내 공방 앞에서 하릴없이 얼쩡대는 남자들을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곤 했다.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하며 그 행동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폈다. 그러다 그 상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우선 잠재적 목격자가 될 가능성에 비중을 둔다. 보복이 무서워서라도 그날로 신경을 껐다. 


몇 해 전에는 옆 건물 2층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방송국 취재차가 왔다. 단신 뉴스로 나갔다. 살인 사건 현장 건물 한 컷에 내 공방이 모자이크로 0.1초간 스치듯 잡혔는데, 그것도 광고 효과라고 알아보는 눈 밝은 사람도 있었다.      


천재지변처럼 가끔 일어나는 굵직한 사건, 사고란 건 순수한 구경꾼일 때는 흥미라도 있지.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직접 손을 대거나, 나서야 할 성가신 일이 발생하는 건 고역이었다.     


가게 앞 주차를 막아야 했고, 취객의 차가 셔터를 들이박거나 손님을 가장한 사기꾼, 좀도둑이 한두 번 다녀갔다.

내가 가장 진저리 쳤던 일은 출입문 앞에 거하게 내질러 놓은 토사물을 치우는 것이다. 

빈대떡처럼 눌어붙은 토사물을 보는 순간 욕지기와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토사물은 일반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하의 시린 기운에 꽁꽁 얼어붙어서 더운물을 붓고 녹인 다음에나 긁어낼 수가...!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신문지로 덮었다. 보지 않으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도 바람이 신문지를 날려 버렸다. 치우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토사물을 그대로 두면, 사람들에게 혐오, 역겨움을 줄 테고, 금방 쓰레기장이 된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입점한 곳은 관리를 따로 해 주지 않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단 한 가지 좋았던 점이 있었는데, 10년 동안 임대료를 인상하지 않았던 것. 

건물주가 선하거나 양심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건물을 팔려고 내놓았던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내 작업실은 높은 층으로 옮겼다.) 


어느 날은 바닥뿐만 아니라 공중에도 치워야 할 일거리가 생겼다.

벌집, 새집 같은 건 성가심의 문젠데, 현수막은 또 다른 골칫거리였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 하면, 1층 가게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현수막에 적힌 내용이 더 가관이었다.


<... 너는 나의 운명이고 어쩌고 저쩌고 ㅇㅇ 아 나랑 결혼해 줘.>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두 남녀의 사진도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다.

어떤 인간들이 프러포즈 이벤트를 한다고 가게 두 개에 대형 스크린을 치고 동네방네 광고하나, 눈 뜨고는 봐 줄 수가 없었다.       

저런 비슷한 것조차 받아 본 적 없는, 중년 솔로의 심술은 절대로 아니다.

내 공방을 가리는 게 문제다. 당연히! 조망권을 가렸고 상권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다! 


나보다 더 피해를 보고 있던 옆 가게 사장님이 즉시 구청에 신고를 넣었다. 

한 시간이 안 되어 공무차량이 나타나 불법 점유물을 떼어가 버렸다. 

초대형 프러포즈 카드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나는 속이 후련하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제의 현수막 속 사진과 닮은 ㅇㅇ 이란 이름의 20대 여자가 나타났다. 

ㅇㅇ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여기 XX 은행 앞에 있던 거 안 보여. 으뜩해..." 

ㅇㅇ은 옆 가게부터 먼저 가는 듯했다. 곧바로 내 공방 유리문을 두드렸다. 

"저기, 아줌마." 하고 ㅇㅇ이 나를 불렀다.

뭐, 아줌마? 

나 아직 미혼이라고, 속으로 아우성쳤다. 아직 아줌마란 호칭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40대가 훌쩍 넘어서면 아줌마가 맞지만, 그와 별개로 아줌마라 부르는 어감에서 존중의 의미가 조금도 없고, 시비조였기 때문에 거부감이 일었다.           

“여기 있던, 현수막 못 봤어요?”

내게 맡겨 놨냐?

나는 아줌마란 뒤끝과 토사물까지 싸잡아서 거리의 민폐 끼치는 것들에 대해 이미 심사가 꼬여 있었다.       

“아, 그거. 구청에서 나와서 떼 갔는데요.”

부아가 났지만, 친절하게 대꾸해 주었다. 수십 년간 살아온 동네라서 한두 사람만 거치면 안 걸리는 사람이 없었다. 주일학교 교사란 직책이 추가되어 절로 가식덩어리가 되었다. 

“오빠 누가 신고했나 봐.”

ㅇㅇ이 나를 노려보더니 돌아갔다. 옆 가게에서 욕 얻어먹고, 나한테 침 뱉고 간 건가, 지금?     


어쨌든, 안 되긴 했다. 큰 비용 들여 프러포즈 이벤트를 준비했을 건데. 

훗날 기념일이 될 날이었을 텐데. 고소의 날이 되어버려서 어쩐다니.

나는 가식 없이 고소한 웃음이 났다.


무난하게 내 작업실 소개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일이 먼저 끼어들고 말았다. 


2,30대 전부를 쏟아부었던 공예학원을 정리하고, 집 근처에 개인 작업실 겸 공방을 마련한 건, 쉬엄쉬엄 일하고 싶어서였다. 사실은 모든 걸 다 내려놓았던 자리였다. 일도 관계성도. 


그러나.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의도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일을 많이 겪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동력과 에너지가 모조리 소진되었을 때, 멈추어 서서 돌아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었다.

혹한기의 나무가 성장을 멈춘 건 생존하기 위해서였듯이.

나도 그 작은 공간에 나를 가두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날을 돌아보며 고소(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의미)  날로 승화시키고 형통하게 쓰기로 했다.




포크아트 作  by mi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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