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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yu Nov 21. 2024

프롤로그  

새 꼬리만큼...


바닥에 놓인 핸드폰은 까만 거울이 되어 창밖을 비춘다. 밤도 낮도 아닌 하늘과 뒤집혀 보이는 빌딩들.

어떤 날은 마천루 사이로 작은 점이 이동했다. 아닌 걸 알면서 핸드폰 액정을 문질렀다.

그러다 눈을 들어 진짜 창밖을 본다. 높게 비상하는 새였다.

새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새 꼬리만큼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 채.     


핸드폰에서 나오는 빛조차, 눈이 피로해지는 요즘, 꺼진 화면을 보면 맺히는 잔상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 그날로 데려간다.


초등 2학년 때였나, 결석을 길게 한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그날이 소풍날이었다.

가뜩이나 장기 결석자로 찍혔는데, 노는 것만 밝힌다고, 내 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비웃음과 놀림을 받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해서, 감기에 걸려도 호되게 앓아누웠다.  

어릴 때는 아파서 놓쳤던 것, 할 수 없었던 것들 투성이라 그런 유의 걱정과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그만큼 삶의 의지도 약해졌다.     


소풍날, 담임 선생님을 따라서 반 아이들과 숲 속 길을 걷거나, 풀밭에 둥글게 앉아서 목청 높여서 불렀던 노래가 기억난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어린이날 노래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에서 (70년대 후반) 저학년 1학기 소풍 전에 그 노래를 배웠다.

나는 하필 소풍 전날까지 결석을 해서 어린이날 노래를 배우지 못했다.    


반 아이들과 친해 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즐거운 소풍날에 혼자가 되었고, 어린이날 노래는 서러운 가락이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배낭 안에 든 김밥, 과자, 음료수는 하나도 꺼내 먹지 못했다.

병따개가 없어서 먹고 싶었던 콜라는 유리병만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 곧잘 공상에 빠지는 습관이 생겨났던 것 같다. 병약하고 사교성 없는 아이는 혼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5학년 때는 교통사고로 결석과 조퇴가 일상이 되었다. 

그야말로 '이번 생은 새싹부터 망했구나'였다.


낙오자 같았던 인생에도 극반전 같은 작은 획을 그을 기회가 왔다.

그 해에 학교에서 5분 스케치 시간이 신설되었는데, 주로 반 아이들이 돌아가며 모델이 되어 인물 스케치를 했다. 학급에서 우수한 그림을 뽑아 상을 주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 그림을 채택해 줘서,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은 아마 내가 학교에 정을 붙이게 해 주려고 기회를 주신 듯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이후의 정규 과정, 제도권 속에 무난히 스며들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은 지나치게 과했고, 어떤 일은 무지했다. 내게 중요하지 않으면, 잘하려고 기운을 빼지도 않았다.

안 되는 걸 하려면, 그만큼 몸이 고되고 아팠다. 그다음은 기약할 수 없었다.     

비혼으로 살았던 것도 나를 아프게 하는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 

쉰을 넘기자, 비혼이 좋다 기혼이 좋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 반대편에 서기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던 것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나의 버팀목인, 아버지 덕분이다.


"우리 오 남매 중에서 젤 공주처럼 자란 언니였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까, 엄마는 시어머니 겸 아이가 되었고, 언니들은 시누이들이 되었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려고 결혼도 안 하더니, 시집살이는 못 피했네. 어쩐대? (신나 보인다) "

뒤늦게 철들 기회가 온 거라고. 그 변화가 놀랍다고.

나의 2촌 중 아군에 속하는 동생이 지금의 내 처지를 요약 정리해 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햇수로 3년, 내 삶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릴 땐, 5학년 담임 선생님 덕분에 낙오자 인생에서 기사회생되었듯, 지금은 또 다른 5학년, 50대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돌봄만 받던 딸은 엄마의 노년을 책임져야 했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가족 간에 갈등을 겪으며 매 순간 마음이 베였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나로 살 것이지만, 나의 노모 곁에서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내 삶이 새 꼬리만큼 주목할 여운이 없어도 좋으니,

길고 가늘게 내가 감당할 만큼만 안온하기를 바란다.





                                                                          


 




이번 브런치 글에서는 나의 작업실 에피소드가 들어가겠지만, 못다 한 가족 이야기도 풀어낼 것입니다.
나의 대나무 숲 같은 브런치에서 에너지를 얻고, 쉬어 갑니다.
장기 결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연재 텀이 생기더라도, 가늘고 길게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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