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아도,

『아침 그리고 저녁』욘포세

by 만민언니

몇 주 전, 모처럼 지인들과 일정을 맞춰 1박 2일 여행을 갔습니다. 숙소에서 저녁을 해 먹기 위해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대로 향하는데 수산물 코너에 주황색 빛을 발하는 생선이 있었습니다. 연어였습니다. 횟감용, 구이용, 훈제연어까지, 조명을 받아 더욱 싱싱하게 빛나는 연어는 모두 노르웨이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노르웨이는 유럽의 북쪽 귀퉁이 스칸디나비아 산맥에 위치한 나라로, 평야는 거의 없고 해안선이 매우 복잡한 것이 특징입니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의 이름은 피오르인데요, 피오르 해안선을 쭉 펼치면 지구 둘레의 반이나 된다고 하니 얼마나 꼬불꼬불한지 상상이 되시죠? 바다로 둘러싼 노르웨이는 자연히 어업이 발달하며 수산물 수출 강대국이 되었고, 덕분에 대한민국 마트에서도 노르웨이산 연어와 고등어를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눈에 노르웨이 연어가 쏘옥 들어온 것은 이 책 덕분이기도 합니다. 20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장편 소설인 『아침 그리고 저녁』인데요. 노르웨이 출신의 욘 포세는 우리나라에서는 덜 알려져 있지만 북유럽에서는 극작가, 시인으로도 유명하고, 노르웨이 문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 은 노르웨이의 해안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어부로 산 ‘요한네스’의 삶 그리고 죽음을 따라가는 소설입니다. 고된 삶의 끝자락, 요한네스는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기 전 경계에서 50년 지기 친구 '페테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제야 자신이 죽은 것을 알게 되고, 친구는 요한네스에게 고깃배를 타고 떠나자고 합니다. 평생을 어부로 살았던 요한네스가 죽음으로 가는 길에도 고깃배를 타는 장면은 삶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듯합니다.

소설 속 문체도 독특합니다. 간결한 문장과 반복적인 표현들이 호기심을 자아내는데요.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소설에서 마침표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침표가 없어서 여운이 길게 남고, 쉼표로 길게 이어진 문장은 마치 시를 읽는 듯한 운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어디로 가는데?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라는 게 없다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 해안의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자라며 12살 무렵부터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낚시를 하며 듣던 피오르 해안의 파도 소리는 그에게 음악적 감각을 익히게 해 주어 리듬감 있는 문체를 완성하게 해 주었고, 깊은 협곡과 물길이 빚어내는 풍경은 그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키우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죠. 어린 시절 빙판에 미끄러지며 깨진 주스병에 동맥이 끊겨 죽을 뻔한 기억과, 죽음이 잦았던 바닷가의 거친 환경 때문인지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고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네스의 삶으로 되돌아가 봅니다. 고된 삶을 살고 떠나는 그의 죽음은 오히려 쉼에 가깝습니다. 아침이 가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친구와 함께이기에 평온하기까지 하죠. ‘이름도, 말도, 몸도 없는’ 그곳.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요한네스는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듯, 평범한 저녁처럼 생의 끝을 맞이하는 요한네스의 표정을 상상해보며 아침 그리고 저녁처럼 순환하는 생 앞에, 어떤 자세를 지니고 살아야 할지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거제 독서 모임 ‘북흐북흐’ 멤버 김민경

15년 전 직장을 따라 거제로 이주하였다가 삶의 터전을 잡았고,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면서 도서관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책 모임 ‘북흐북흐’ 멤버로 활동하며 책 내용과 감동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독서노트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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