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을 바라보며

세조에게 묻는다

by 고운로 그 아이


당신은 편히 잠들었

너그러운 이 숲은 풀 한 포기 쉬이 꺾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심지어 어린 왕을 꺾고서도

버젓이 견디어 냈는지


당신이 사랑한 광릉숲에 핏빛 물들고

그리하여 그 봄 영산홍은 그토록 어 있었다

역사의 페이지에 핀 한 떨기

처절한 현장을 언하고 있었


단 한 번이라도 뉘우쳤

이 세상 잠시 왔다가 야망에 눈이 멀었다고

한 맺힌 원혼 앞에 포복하여

용서를 빌어 본 적이 있나

쓰러진 꽃을 아파하는 민초들 같이

당신도 괴로워 가슴 쳤는지


묘비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그대 눈물이기를

까마귀 울음소리가 그대 통곡 소리기를

봉분을 맴도는 산제비나비

눈 못 감은 그대 혼령이기를


목에 걸린 회한의 핏덩이

이제라도 토해내고 용서받길

당신이 뒤척이는 가운 광릉 앞에서

나 또한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관객수가 650만을 넘어섰고 이 속도는 천만 영화 '광해, 왕이 사는 남자'와 동일하다 한다.

이대로라면 천만 영화 등극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나도 관객 대열에 합류했다. 눈물쏟아것을 대비해서 큼지막한 손수건을 챙겨갔다.


이 영화는 수양대군의 반란으로 폐위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과 그 지역 호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단종의 유배 생활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월 호장 엄흥도는 단종을 감시하는 책무를 맡았지만 현실은 보호자였다. 그를 먹이고 지키고 그의 복위를 도왔다. 군사를 동원한 복위 작전이 실패하고 단종이 생을 마감했을 때 엄흥도는 강물에 던져진 그를 건져 장례를 치르고 안장했다. 그 묘가 지금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장릉이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엄흥도는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단종을 향한 사랑과 충렬, 도의적 행동이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준다. 단종 역의 박지훈 배우와 엄흥도 역의 유해진 배우의 열연으로 이 영화는 더욱 빛을 발한다.


관객들은 단종의 시각을 따라간다. 그의 눈에 비친 참혹한 현실, 반역자들의 무자비한 행동.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며 반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세조를 경멸한다.

세종, 문종이어 성군이 되었을 적장자 단종을 수양대군은 반역했다. 이 영화로 세조는 여태껏 겪어 보지 못한 비난의 수위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영화에서 세조는 등장하지 않음에도 단종을 비극으로 몰고 간 그 존재감이 지대하다. 분에 못 이긴 사람들은 악플 공격을 한다. 포털 광릉 방문자 리뷰에는 원색적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분노와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 본의 아니게도 세조가 마음속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내가 다니는 광릉숲은 세조가 아끼던 놀이터이자 쉼터였다. 광릉숲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된 배경에는 세조의 숲 사랑이 깃들어 있다. 세조를 그토록 증오했다면 그의 영혼이 숨 쉬는 이곳의 공기가 이리 청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조는 변한 것이 없는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엄혹해졌다.


그는 폭군에다가 인간성을 상실한 사이코패스였을까?

문종에 이어 단종이 왕위를 계승했던 당시 조정은 김종서, 황보인 등 중신들의 보좌로 안정적인 정국을 이루고 있었다. 세조는 어떤 명분도 없이 오직 왕위 찬탈이라는 개인적인 욕망으로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비롯한 동복, 이복형제들, 대신들을 무참히 죽이고, 식솔들을 노비로 강등시키기도 했다. 그의 왕권 유지에 티끌만 한 위협 요소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죽일 이유가 되었다. 조선의 어느 왕도 세조가 숙청한 사람 수를 넘기지 못했다 한다.

이런 악행을 보면 그는 포악한 자가 맞다. 그 후로 성군이 되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신을 왕으로 추대한 공신들에게는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했으나 왕을 공의롭게 보좌할 충신이 없었던 것은 치정에 불리한 점이었다. 선왕들이 정립한 통치 체제가 무너지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로 백성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정치, 경제, 군사, 어느 하나 비판에서 자유로운 분야가 없다. 백성들은 단종을 연민하고 세조를 멸했다.


그러나 그는 폭군이라 하기에는 업적이 있으며, 인간적인 면도 있었다.

세조는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경국대전처음으로 집필하였다.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 등의 여섯 개의 법전으로 구성되어 관리, 재정, 예법, 군사, 형벌, 시설 등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세조가 쓰기 시작하여 성종이 완성한 것이 경국대전이다.


그에게는 따뜻한 면이 있었다.

그는 효자였다.

세조는 어머니를 사랑하였다. 어머니 소헌왕후가 노환이 깊어졌을 때 그는 그의 침전에서 어머니가 요양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결국 소헌왕후는 세조의 침전에서 눈을 감는다.


그는 애처가였다.

세조의 첫사랑과 끝사랑은 왕비인 정희왕후였다. 조선의 왕들이 많은 후궁을 거느린 것에 비해 세조는 오로지 정희왕후만을 사랑하였다. 조정 신료들의 강권으로 최소한의 후궁을 두었을 뿐이다. 정희왕후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인품을 지녔고 세조는 나들이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그녀를 곁에 두었다.


그는 일평생 검소하였.

세조는 개인적으로 매우 검소하였다. 사치품에도 관심이 없었다. 술을 좋아해 술자리를 자주 가졌지만 정해진 주량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한다. 적어도 사생활에서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왕릉 안에 돌로 만든 방인 석실을 설치하지 못하게 했으며 봉분을 둘러싸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병풍석 또한 설치하지 말도록 하여 노역을 줄이고자 했다.

세조의 왕릉은 석실과 병풍석을 생략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는 많은 불행을 겪었다.

그가 저지른 행악에 대한 죗값이었을까.

그의 적장자인 의경세자는 18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그의 둘째 적자 예종은 19세에 왕이 되어 20세에 요절하였다. 재위 기간은 1년 2개월이었다.

그는 50세의 나이로 서거하기까지 말년에 피부병, 마비, 중풍 등으로 고생하였다. 조선 왕의 유전병과도 같은 종기를 물려받아 고생하였고 결국 나병으로까지 이어졌다.


권력을 거머쥔 그는 당당했을까.

명분 없는 반란을 일으키고 어린 왕을 폐위시킨 그는 평생 심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역모가 자신을 노릴 수 있기에 늘 불안에 시달렸고 그런 심리 상태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년에는 자주 악몽을 호소하였다. 특히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크게 꾸짖으며 침을 뱉었다고 하는 꿈은, 그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그는 불교에 의지했다.

유교 사상이 사후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 반면 불교는 내세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현생에서 쌓은 업보를 내세에서는 모두 벗어나기를 바라는 심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세조, 그도 불행하고 미약한 한 인간이었다.

전나무 숲에서 피톤치드를 마시며 세조를 생각한다.

그가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어떤 비난과 욕설도 부족한 듯하다. 하지만 그는 마치 그 죗값을 치르듯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아야 했고 천벌과도 같은 불행을 겪어야 했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1453년으로부터 570여 년이 흐른 지금, 세조는 억울한 원혼들에게 아직도 용서를 구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여태 편히 잠들지 못했을 그의 고뇌가 안개 짙은 광릉의 숲길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대문사진-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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