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속에서

by 고운로 그 아이


베란다 화분에 핀 수선화

봄을 알기도 전에

양지바른 자리에서

일찍 피고 일찍



비바람 거세던 날

길가의 꽃들 러졌다가도

역풍을 딛고 끈질기게 는데

평온하던 란다 철쭉 한 송이

맥없이 툭 떨어져 버렸



꽃이었으나 나비를 모르고

바람과 빗줄기가 할퀴고 가는

맵고 쓴 우여곡절 한번 없이

헛헛하게 서 있다 진 꽃송이들



뒤집어진 우산으로 돌풍을 막고

휘청이다 달비에 흠씬 젖어도

그것이 사는 일일 거야

살아있음을 맛보는 일



고요하면 나아가지 않아

노를 저어 파도를 일으켜야

나아갈 수 있는 것

질풍노도가 눈앞에 펼쳐진다면 그건

아마도 더 힘차게 노를 젓고 있 때문일 거야









국제 정세가 뒤숭숭한 와중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드디어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출구 없이 답답한 뉴스들 속에서 전해진 빛 같은 소식이었다. 그것이 내게 큰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해도.


온도 유지에 각별히 신경 썼던 베란다 화분들은 2월 초부터 꽃을 피웠다.

순백의 모나리자 철쭉이 피기 시작해서 히아신스가 피고 갑자기 수선화꽃이 만개했다. 내가 좋아하는 꽃 3 대장이 수선화, 금낭화, 할미꽃이다. 수목원에서 보면 반가워 한걸음에 달려간다.

그리고 제라늄, 핑크스타 철쭉도 피었다.


들에 핀 수선화는 2~3주간 개화하는 반면 빨리 피었다고 좋아하던 란다 수선화는 아쉽게도 1주일 에 금방 시들어버렸다.


그러다가 한창이던 핑크스타 철쭉이 송이째 툭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동백꽃인 줄 착각한 걸까. 너무 아까워 그대로 꽃대 위에 올려놓았다.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꽃들은 우리가 놓치는 사소한 변수에 타격을 입을 만큼 저항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닐까. 비바람을 이긴 꽃들은 씨를 맺고 열매를 남기는데.

식물들마다 타고난 역치가 다르겠지만 거친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온실처럼 온도가 유지되도록 겨우내 남편은 베란다 식물을 세심히 돌보았다.

식물마다 최적의 온도를 벗어나지 않게 비닐하우스 식물, 상온 식물, 저온 식물로 나뉘어 관리하고 얼어 죽지 않도록 해가 지면 은박지, 단열장판 등으로 보온해 주었다.

베란다 한쪽에는 낮은 온도에서 잘 견디는 식용식물이 자란다. 상추, 청경채, 겨자잎, 케일, 쪽파, 부추 은 겨우내 우리 가족의 소소한 먹거리가 되었다.


남편은 식물 재배에 소질이 있다. 세심함이 남다르다. 이 재능을 몇 평 베란다에 가두어 놓긴 아깝다. 좀 더 넓은 들판을 향해 나가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널찍한 마당에 텃밭을 가꾸며 진돗개 몇 마리, 닭 몇 마리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15평, 18평, 좁은 아파트에도 오래 살아봤지만 역시 나는 아파트 좋기에.

어떻게 꿈을 이루어 줄까. 그것이 하나의 목표가 된다.




베란다 식물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모나리자 철쭉



히아신스



수선화



제라늄



핑크스타 철쭉



꽃기린



상추, 케일, 치마



청경채, 적겨자



쪽파, 부추









즐거운 주말 보내기 바랍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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