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는 베란다로 나가 건조대에 이불 빨래를 다 널고 난 후 삼성천을 내려다보았다.
평일이라 한적해야 할 둔치인데 어찌된 일인지 두 사람이 내려오는게 보였다.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닌 204동 앞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가져다 들고 찬찬히 그들을 살펴 보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제된 세련미가 느껴지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한명과
특별히 튀지도 않고 무난한 모습으로 걷는 파란색 쟈켓을 입은 한명.
둘은 뭔가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 듯하다가 한참 말이 없이도 걷는다.
그러다 다시 얘기를 하고 또 말을 쉬는데 일단 호들갑스러운 사람들로 보이진 않았다.
둘은 나란히 함께 걸었지만 그들 사이의 거리는 다소 모호해 보였다.
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았다.
한쪽이 가까이 가면 다른 한쪽이 그 거리만큼 옆으로 밀려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ys는 그 점에 호기심이 생겼다.
"뭐지?"
삼성천 중앙으로는 자전거 길이 나있다.
이들은 둔치로 내려오더니 길에 접어들자마자 만나게되는 자전거 길로 들어서서는 KTX가 지나는 철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다가 자전거 길임을 인지했는지 트렌치코트가 파란 쟈켓을 자전거 길 옆 보행로 쪽으로 이끌었다.
파란 쟈켓은 쉽게 응했고 둘은 그렇게 약 60미터 쯤 가다가 유모차를 만나게 되었다.
유모차 안에는 아기가 앉아 있었고 옆 풀숲에 아기 보호자로 보이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는 뭔가를 찾고 있었다.
여자는 엄마라기 보단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유모가 아닐까 싶었다.
둘은 유모차 안에 앉아 있는 아기를 보았지만 별 반응이 없이 무심하게 지나친다.
역시 호들갑을 모르는 사람들이 맞다.
아니면 뭔가 그런 기분을 낼 상황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갑자기 지척을 날아가는 작은 새처럼 강수정 머리를 스쳤다.
왜냐하면 둘은 멀리서 보기에도, 심각함까지는 아니지만, 가볍고 발랄한 표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싸우거나 해서 기분이 틀어진 애매한 느낌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근심 혹은 걱정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며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보통 그런 기분일 때는 주변의 특이한 뭐가 있어도 별로 반응을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곳처럼 사람이 드문 곳에서 길 한가운데를 막고 있는 유모차와 그 안의 아기라면 사람들에게 충분히 관심 반응을 끌만도 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그런 느낌이 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낯선 사람들을 관찰하던 ys는 줄곧 별다른 반전이 없자 호기심을 거두고 도로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누워버렸다.
그러나 다시 궁금증이 동했다.
이런 평온한 날에 둔치를 걷는 사람이라면 옛날 같으면 필시 간첩? 아니면 백수... 아니면 뭔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진정시키러 나온 사람들?
심심하기도 했지만 호기심 많은 강은숙은 발딱 일어섰다.
그래서 다시 나가 살펴보니 유모차는 약간 위치만 이동한 채 유모로 보이는 사람은 또 다른 들꽃을 열심히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모습도 보였다.
둘은 ys가 누워있었던 시간만큼 나아가 있지는 않았다.
ys의 호기심을 유발한 두 사람은 ys가 종종 지나치던 그래서 잘 아는 초록빛 짙은 토끼풀 풀밭에 멈춰서 있었다. 세련된 트렌치코트가 토끼풀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고 있었고 파란 쟈켓은 허리를 굽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 네잎 클로버라도 찾는 모양새였다.
대화를 나누며 뭔가를 찾으며 그곳을 머물던 둘은 걷던 발걸음을 다시 이었다.
이번에도 트렌치코트가 하얀 손을 들어 산 밑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둔치의 평평한 시멘트 바닥에서 마치 발레라도 하듯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도는 스텝을 했다.
그러자 코트가 넓게 펼쳐지며 때마침 바람이 있었던 듯 풍성한 부피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파란 쟈켓은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적당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ys는 트렌치코트가 교회쪽을 가리키며 어깨 높이 보다는 조금 더 높이 치켜든 하얀 손목에 눈길이 갔다.
예이츠의 시가 생각나게 하는 흰 손등이었다.
경계가 끝나는 지점에 다다랐다.
트렌치코트가 징검다리 같은 돌다리를 가리키며 또 뭐라고 열심히 말을 했다.
파란 쟈켓은 그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또 뭔가를 묻고 돌아오는 대답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둘은 다시 말없이 걸었다.
왜가리 한 마리가 푸드덕하며 날아올랐다.
둘은 정적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건너편 왜가리의 비행을 보고 파란 쟈켓이 뭐라고 말을 했다.
왜가리는 생각보다 멀리 날아갔고 그들이 잠시 딴 데 눈을 돌리는 사이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는 강은숙은 파란 쟈켓이 분명히 왜가리에게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가리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동시에 같은 방향을 보게 되었다.
둘은 왜가리가 머물고 있던 건너편 쪽으로 천을 건너가기로 했나 보다.
경계지점의 끝에는 돌다리가 있는데 징검다리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조형화된 회색의 네모난 화강석 디딤돌이 놓여 있었다.
둘은 그 징검다리를 디딤돌 삼아 돌을 밟고 둔치를 건넜다.
트렌치코트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물이 무서운지 다소 긴장하는 듯이 보였다.
이런 트렌치코트를 보면서 파란 쟈켓은 팔을 잡아줄까 말까하는 망설임 같은 모습으로 뒤에서 주저주저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건너간 둔치 옆쪽에는 천의 범람을 막을 언덕이 쭉 이어져 있다.
그 언덕에는 많은 풀꽃들이 피어 있었고 들국화를 닮은 예쁜 봄꽃도 어울려 있었다.
역시 트렌치코트가 여러 풀꽃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는듯 했고 파란 쟈켓은 역시 열심히 듣는다.
통통하지 않고 좀 마른 듯한 황갈색 청둥오리 몇 마리가 물에 둥둥 떠서 이들을 무심히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이 청둥오리들 또한 잔잔한 두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하기는 유모차와 매한가지였다.
사람사이의 연결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휘발유처럼 초반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는 홀라당 타버리는 연결이 있다.
모깃불처럼 불도 아닌 듯이 은근히 타다가 소리 없이 꺼져버리는 연결도 있다.
처음에는 불 붙이기 어렵지만 시간과 공을 들여 일단 불이 붙으면 잔잔하게 오래오래 타는 장작불 같은 연결도 있다.
사랑이 또한 그렇다.
휘발유를 부은 것처럼 열정적이고 뜨겁지만 일찍 소진해 버리는 급진적인 사랑이 있고
모깃불처럼 긴가민가 하며 연기만 내다가 끝내 불 아닌 것으로 스러지는 미약한 사랑도 있다.
정말 좋은 사랑은 장작불 같은 사랑이다.
너무 호들갑스럽게 화라락 불이 붙지 않기에 여유를 두고 정성을 들이고 기다리는 과정을 갖는다.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불이 붙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기다림이 가능하다.
2016년 방영했던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나온다.
여주인 한여름이 남주인 강태하에게 한 말이다.
너랑 만날 때는
사랑이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헤어지고 생각해 보니 의지의 문제였어.
'내가 얼마나 이 사람을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이 사랑을 지키고 싶은지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
이 대사는 사실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따온 내용이다.
제대로 된 사랑이란,
급속히 타오르고 스러져 버리는 고작 3개월에서 2년 만에 사라지는 도파민에 취한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과 인내로서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 사랑이 정제된 사랑이고 제대로 된 사랑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 불이 붙은 장작불을 닮은 사랑은 안전하고 따뜻하며 잔잔하고 오래간다.
게다가 한 번씩 파동을 타는 도파민이라는 잘 마른 장작개비를 주기적으로 툭툭 던져 넣어 줌으로서 죽을 때까지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불이 붙기까지의 기간 즉, 초기 어색함의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물론 이것도 사랑의 시작이기에 둘의 감정과 교감이 없다면 애초에 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랑에 있어서 감정은 중요하며 그 형태만 다른 것이다.
많이 이성적인 사람들이거나
뭔가 제약 요인이 있거나
쉽지 않은 상황적 요인이 있을 때
고민하고 숙고하는 시간들에 놓이다 보면
그것이 감정적 간극과 접점 앞을 헤매면서 어색함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장점은
미리 예방주사를 맞고 시작하는 것과 같아서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위기에 대단히 견조하다.
영국왕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심슨부인에게 첫눈에 반했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그는 재위 1년 만에 왕위를 버렸고 그녀와 결혼했으나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들의 사연은 첫눈에 반하는 오직 감정에만 치우친 휘발유 사랑의 끝을 보여주는 예화가 되었다.
그래서 사랑은 의지의 문제라는 말에 공감한다.
처음에 어떤 형태로 시작하든 감정의 시기가 지나면 의지의 시기가 온다.
이 의지의 시기를 지켜주는 힘은 처음 시작할 때 형성하는 신뢰와 정성의 기간만큼 깊어져 있는 믿음과 신뢰가그 본질이 아닐까 싶다.
ys는 영화의 장면들을 보듯이 베이지코트와 파란 쟈켓의 동선을 따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간의 자신의 추억, 그동안 본 영화나 드라마, 읽은 책들 그런 것들이 뒤섞여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트렌치코트는 둘이 함께하는 내내 웃는 모습이 거의 없었다.
잔잔히 얘기만 할 뿐이었으며 긴장을 해서 그런지 조심스런 성격인지 원래 담담한 건지 지금의 모습으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반면, 파란색 쟈켓은 그런 트렌치 코트를 한 번씩 돌아보며 별 말은 없었지만 자주 바라봐주고 귀 기울여 주고 또 잘 웃어주었다.
삼성천을 건넌 둘은 유모자를 지나치고 산 밑의 교회를 지나치고 왜가리를 지나치고 청둥오리를 지나쳤으며 디딤돌 징검다리를 건너 들꽃을 바라보며 함께 이야기를 하고 간간이들 웃으며 그곳 역시 지나서 걸어가다가 204동 앞에 놓인 또 다른 징검다리를 만났다. 그리고 이번 징검다리는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다리를 건넜고 그리고는 그들이 원래 왔었던 204동 쪽으로 함께 사라졌다.
그들이 지나간 삼성천 둔치에는 갑작스런 향기가 돌았다.
아까 그들이 잠시 멈춰 섰던 교회 쪽 산에서 그들이 걷는 느린 발걸음을 엿보던 아카시아꽃 향기가 강은선의 시선처럼 호기심 많은 꿀벌이 되어 몰래 따라왔나 보다. 그리고 더이상 갈 곳이 없게 되자 그곳에 멈췄고 그대로 남은 잔향이 되어 트렌치코트와 파란 쟈켓이 다시 돌아오면 또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