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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되는대로 Nov 03. 2024

새나루 #9

나의해방일지를 보다 – 관계편 1


김길환은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뒤늦게 시청했다.     


강은숙이 자신의 최고의 인생드라마로 꼽는다고 몇 번을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았던 그는 시간을 핑계로 시청을 미루다가 끝내 킷리스트가 되기 전에 시간을 내었다.

강은숙의 마음에 울림을 준 작품이라면 그마음의 저변을 느끼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그는 퇴근하면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하루에 몇 편씩 시청했다. 종반으로 다가가면서 그의 머릿속에 몇가지의 생각이 정리되어 갔다.   

  

사람의 생각이란 같은 상황을 놓고도 마다 다 다르게 이해하고 반응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다른 세상에 산다고 하였다. 이를 일컬어 불가에서는 ‘업식(業識)’이라고 한다.


태어나 자라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자신이 겪거나 당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도 있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한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도 다.  자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마음에 쌓아온 인식의 스펙트럼 반사같은 것이다. 똑같이 생긴 필터에 분명히 같은 물을 부었는데 어떤 필터는 빨간색 뱉어내고 어떤 필터는 노란색, 초록색 물을 뱉어낸다.


같은 청국장인데 냄새를 구수하게 느끼는 한국인, 역해서 도저히 먹지 못할 최악의 음식으로 생각하는 외국인도 있다. 같은 치즈인데 똥냄새 같다고 느끼는 한국인도 있고 침샘을 자극하는 구수한 느낌이라며 좋아할 스위스도 있다.  모두 '업식'의 영향이다.


이렇듯 저마다의 상황과 경험이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투사'되어 에먼 사람에게 투척 되는 경우가 있다. 과잉반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생각보단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다. 우려 했는데 무덤덤  경우는 다행이지만 문제는 큰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에 대방은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을 했나 의아해 하며 당황하게 된다. 반응의 정도에 혼란스럽다.


그래서 오래 볼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저변을 볼 노력도 해야한다. 그러면 특별히 더 조심하거나 갑작스런 상황을 피할 방법이 있다. 이것을 노력한다는 것은 대단히 가치있는 존중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절대치의 잘못이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한다. 업식과 상관없는 실수의 절대량이다. 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상식적으로 화를 격하게 반응하게 되는 잘못의 큰 정도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해서 그래서 사람은 오래 지켜봐야 하고 대화를 많이 해봐야 한다. 즉시적으로  판단하고 바로 재단할 것이 아니다. 그래야 '밀리언달러베이비' 같은 보물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강은숙은 항상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느라 바다.


그녀가 사람들을 먼저 찾는지 사람들이 그녀를 먼저 찾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녀의 주변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생각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던 김길환은  그녀의 마음 한켠에  관계의 피곤함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길환과 강은숙이 본격적으로 교류를 시작하고 얼마의 기간이 지난 무렵 강은숙에게 갑자기 건강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그는 그녀 건강문제에 염려를 시작했다. 그녀를 지켜보며 (질투가 정말 약간은 섞인) 걱정스런 '건강염려증'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을 잦게 만나면서 그녀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사람들을 만나면 기빨린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자신은 집에 와서 잠을 많이 자야 에너지를 충전된 말하면서도 항상 약속이 많았다. 그렇게 밖에서 기운을 소하고 들어와 힘들어하는 모습 그는 못마땅한 마음도 들었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는 그러한 감정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눈치빠른 그녀에게 항상 들켰다.  그녀는 그가 말하는 것에 점점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말을 못하고 우회적으로 염려를 섞어 말해도 다 알아 들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다'라는 표현이라든지 '사회생활'이라는 용어에는 민감하고 반응하고 강게 반발했. 그말이 꼭 비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인데 그랬다. 밖에서 많은 약속을 가지면서도 김길환의 염려를 점점 더 곡해해서 듣는 식이었다.


김길환의 말들은 그가 잘 몰랐던 그녀의 이전의 어떤 상처버튼을 건드린 것 같았다. 그것도 여러번... 그래서 그것이 결국 터졌고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한 단서였다는 것이 드라마를 통해서 유추하게 된 것도 있다.


김길환으로서는 그가 자초한 면도 있지만, 억울한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그가 깨워냈고 그 결과, 그가 생각하는 그의 잘못보다 훨씬 더한 다른 사람의 몫까지 더해서 뒤집어 썼다는 억울함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 화산 어느 기슭에서 잠들어 있던 백설공주를 깨워버린, 어떤 트리거를 당겨버렸다.


수차례 사과를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항상 그랬다.

"어차피 또그럴거면서"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들도 사과를 했지만 반복되었다"는, 이미 불신을 깔고 김길환을 바라보고 있었. 그래서 어떤 말도 먹히지 않고  무슨 말이든 좋게 듣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꾸만 스로 앙금을 쌓고 벽을 높여 갔다.

 "그들저럼 너도 그릴것이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관계적 측면에서 이 한정된 에너지를 타인에게 쏟는 것은 개인 마다의 방식이 있다.


에너지를 여러사람에게 고루 잘 분산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 ‘인싸’ 기질이라고 표현기도 한다.

반대로 배우자, 자녀 등 가족 위주나 많지 않는 친한 사람에게 더 집중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는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란 긴 인생에 있어서 보험의 한 측면이다.     


분산된 관계 에너지가 넓고 얕으면 어딜가든 아는 사람이 많아 환영받고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직장 등 몸담을 주된  바운더리가 파하는 상황이 올 때 공허함이나 외로움 그에 비례해서 감당해야 한다.

직장이란게 유난히 친한 동료라는 게 있고 함께 있을 땐, 형 동생을 외치며 천년만년을 말하지만 ‘필요성’이라는 연결고리는 시간이 되면 끊어지게 되어있다. 지금 당장 친하게 지내며 주로 어울리는 사람도 결국은 필요성을 깔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학교도 지역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 필요성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언제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자신의 바운더리로 돌아가게 된다. 이는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보게 되는 사람살이의 면면이고 앞선 경험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완벽함이란 없기에 특정 몇에게 집중된 에너지를 쓰는 사람도 잘못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집착이나 갈망으로 인한 외로움을 부르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런 생각을 그녀에게 직간접으로 전하는 김길환에게 그녀가 느낀 분노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그녀는 그가 말한 모든 것이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몬다고도 했다.

김길환사과했고 오해를 풀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렇게 불신되었다.

그럴수록 그녀의 말도 함부로 나왔다.

그럴수록 김길환스트레스커져갔다.

잘 참는 것이 그의 특기이지만 특별하게도 드라마에서는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힌다.


김길환의 잘못은 그것이었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더해 충고나 조언을 하려고 했다.

그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인데 그녀의 생활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려 했다.


사람들의 문제는 항상 그런 식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상대방이 바뀔 것을 기대하고 요구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도 노력은 하겠지만 보통은 자기의 필요에 의해 바꾸거나 하지 않는 한 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관계의 묘약은 존중이 아닐까 싶다.


김길환의 말들이 그녀에게는 많은 부분에서 간섭으로 들렸을 것이다. 자신과 함께 어울려온 특별히 친한 각별한 사람들을 비꼬은 것으로 이해했고 그들과 어울리는 자신을 간접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이해해버린 것이다.

김길환은 너무나 억울했고 진심이 호도된 것에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이해와 생각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강은숙에게 했던 권면들도 짐짓 숙제와 짐이 되었나 보다. 심지어 그녀는 입원할 때도 빡빡한 병원짐 캐리어에 책을 두권이나 넣었다. 감사하게도 김길환을 묵직하게 생각하는 강은숙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둘의 관계적 느낌을 사주로 치면 정관(正官)의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정관은 관직이나 벼슬을 말하기도 하지만 특히 여자에게는 더한 의미가 있다.


정리해보자면 이러한 오해와 곡해가 없기에는 결정적으로 그녀의 처한 상황이 쉽지 않았다. 매사를 대하는 마음이 넓을 수가 없었다. 건강문제와 거기에서 파생된 일련의 직장상황의 진행경과(인사이동 때 우여곡절)등 많은 것이 녹록치 않았다. 상처난 자리 붓고 통증이 왔으며 불면증에 시달렸다. 찾아온 우울감까지 그녀를 힘들게 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를 매우 의지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포용을 기대했기에,  크기 만큼 서운함과 야속함 반발력이  컸을 것이다. 그것이 풀리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도 없는 일이다.



나의 해방클럽에 나오는 중요한 대사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조언하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는다.

강은숙의 머릿속 생각을 어찌 다 안다고 함부로 조언을 했을까...

그녀의 치료과정을 함께 했다고 어찌 함부로 원하지 않는 위로를 말할까...

그때는 조언이고 위로였겠지만 상황이 바뀐 지금은 간섭을 느낄 것이었다.

치료과정의 힘들었던 시기를 위로한답시고 말을 다시 꺼내는 것은 기억하기 싫은 아픔또다시 떠올리게 하므로서 화를 돋우게 한다.


하지만 사람은 바뀐다. 왜냐하면 상황은 바뀌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김길환의 머릿속을 내내 머물렀던 오직 하나의 생각은 이렇듯 관계의 피곤함이었다.


그리고 이 인간관계의 피곤함을 잘 드라마화한 이야기가 '나의해방클럽'이었다. 

드라마 작가가 주인공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였다.


강은숙이 자신의 삶과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을 노력들, 이로인한 인간관계의 피곤함, 을 작가가 대신다고 그녀는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강은숙이 이 드라마에서 극강의 위로와 공감을 얻었을까?


드라마에 막내 아들역으로 나오는 염창희(이민기)도 그녀의 하나뿐인 동생과 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그 점도 신기했고 그러한 점이 그녀의 공감을 이끈 한 양념이라는 생각도 했다.


-2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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