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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되는대로 May 02. 2024

새나루 #1

우리 잊지 말기로 해요

새나루1단지....

그중에서도 102동은 삼성천변 아파트들 중에서도 유독 높은 고층이다.


올해 나이 마흔일곱 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자신은 여전히 어리다고 자부하는 ys는 능력이 있는 직원으로 인정받는 회사원이다. 그녀는 독신이다. 딱히 부족한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 지금 현재에 만족하기에 남들이 부럽지 않았고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전망 좋은 자신의 베란다에서 삼성천 둔치의 유유자적한 바람을 감상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오늘처럼 오가는 사람 없는 평일 오후는 그것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ys만의 힐링 방법이다.


작정한 날에는 대부분 베란다에 햇볕이 가득했다. 그런 날이면 그녀는 영국 왕실의 도자기처럼 금색 테두리가 백색의 커피잔을 꺼냈다.  인도산 물소뼈 가루를 섞어 반죽해서 구워진  고퀄리티의 커피잔은 매우 가볍고 투명한 느낌이 났 티타늄처럼 강하고 소리도 경쾌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그 새하얀 잔에  향내가 좋은 터키쉬 커피를 직 내려 찰랑찰랑하게 다. 그리고 그 위로 베란다에 들어온 햇볕을 한 뼘만큼만 토핑해 얹었다. 그런 고급진 정성에 스스로 감복하며 잔에 담긴 커피와 그 위에 떠있는 햇볕을 홀짝거렸다.


그러면 그녀의 행복은 은은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회사원이지만 누가 공무원 코의 전형적 관상이라고 해주던 그녀의 하얗고 날렵한 코는 얼굴 특징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 중의 하나였다. 그런 콧대 끝선에서 나오는 가느란 비음이 콧노래가 되어 나오니 이국적인 커피 향기처럼 은은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누리는 것들 문득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잘사는 삶이 정말 이런 것인가 싶 좋은 마음도 들었다.




그녀는 오늘 별다른 이슈 없이 하루 연차를 냈다.


느슨한 오후, 하루를 쉬던 그녀는 거실 소파에 누워 '카더가든'의 노래를 들으며 평소 좋아하는 '커튼멍'을 하고 있었다.

졸음이 올락말락 하는데 갑자기 맑은 멜디 소리가 들린다. 세탁기에 넣었던 이불 빨래가 벌써 다 끝났나 보다. 그녀는 귀찮음을 누르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세탁기 손잡이를 당긴 그녀는 물기때문에 다소 차가운 느낌을 주는 잘 세탁된 이불을 꺼내어 끌어안았다. 섬유유연제 샤프란 향이 하양하양하게 올라오는 막 꺼낸 그것 수확한 신선한 열매를 안아보는 느낌.  

그녀는 자신이 애정하는 이트 바탕에 핑크빛 은실 자수가 그려진 이불을 두 팔에 가득 안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러나 이런, 하늘은 파랬지만 해는 구름 뒤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네!


ys는 다소 아쉬운 마음을 뒤로 밀쳐내며 베란다 외창을 힘주어 열어젖혔다.

갑자기 상그러운 바람이 집안으로 화아악 밀려 들어온다.

거기에 봄의 꽃내음까지 자기도 바람과 함께 따라 들어가겠노라 틈을 비집고 다리를 낑구고  뻗대 들어왔다.


ys의 마음에 정말 봄이구나 하는 탄성이 올랐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ys은 베란다 안전펜스를 의지해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고 열어젖힌 창밖으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새나루 단지의  아파트들은 참 예뻤다. 보통 빨간색 분홍색이 조잡하게 섞인 인근의 다른 아파트들과는 다르게 정제된 색감이 세련되어 보였고 보기에 흡족했다.

특히 마주 보이는 2단지는 더 그랬다.


진한 청회색과 순한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톤을 페인팅하여 옷 입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단지 주변을 둘러싼 산과 강이 조화롭고 아늑하게 2단지를 품어주었다.




ys는 그중에서도 삼성천 건너 바로 맞보이는 204동에 유독 정감이 갔다.

우선 아파트 높이 아담했다.

그러다 보니 명히 없는데 담벼락이 있을 것 같고 그 모퉁이 풀숲이 있을 것 같고 그 속에 노란 수선화 피어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ys는 바깥 날씨가 수상하다 싶으면 우선 베란다 밖 204동 쪽 하늘부터 살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줄기에 씻겨 청량해졌고

눈이 오는 날에는 언뜻언뜻 하얀 눈발 속에 숨어서 신비했고

해가 돋는 날에는 환한 햇살이 노래처럼 번지며 빛났다.

또한, 달이 뜬 밤에는 머리를 올린 환한 달빛 외로웠으며

바람 심한 밤에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별빛과 함께 강 흔들리고 있어 애처로웠다.


것이 그녀가 새나루 102동에서 바라다본

삼성천 건너 새나루 204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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