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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Jangs Jun 23. 2024

육 남매 중 첫째 딸의 이야기 #5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진짜 혈육이 아니었으면 상종도 안 했을 인간상"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

"난 다 괜찮아, 딱 너 같은 사람만 빼고."




나는 정말 웬만한 사람은 다 어울릴 수 있고 다 비빌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진짜 '이건' 못 참는다.

어차피 사람은 다 똑같고 피차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어지간해서는 눈도 깜짝 안 하지만 그런 내가 절대로 상종하기 싫은 인간상이 있다면, 첫째도 둘째도 '약자를 괴롭히는 비겁한 인간'이다.

나는 전형적인 강강약약인데, 회사생활을 해본 적도 없지만 (그간 개인사업자, 강사일만 해봤다) 했다 하더라도 이 같잖은 정의감 때문에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치졸하고 비겁한 어떤 상사(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악)한테 힘없는 누군가 당하는 꼴을 보고서는 눈을 까뒤집고 대들다가 쫓겨났을 듯하다.

내가 당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그렇게 못 참는다.

-

나의 이러한 강강약약 혹은 정의감 혹은 의협심 혹은 반사회적 기질에 대해 뭐라고 이름을 붙이던 실상은 그저 내 "발작버튼"인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나는 어쩌다 이런 역린, 아킬레스건을 갖게 되었을까?




내게 있어서 아빠는 재밌고 용돈도 늘 넉넉히 주고 성적 스트레스도 안 주고 그래서 뭐 나름 괜찮은 아빠였는데, 엄마에게 있어서 아빠는 바람을 피우고, 술을 마시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서 모든 것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등 아빠는 정말 남편으로써는 최악이었다.

그러니 늘 내게 아빠는 만년 가해자 엄마는 만년 피해자였고,

공격하는 아빠와 늘 지고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나는 내내 분했던 것 같다.

-

비단 아빠만 그런 건 아니다. 도대체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쟤 왜 저래'란 말이 절로 나오는 나의 혈육들.

정말 서로서로가 가족이 아니었으면 상종도 안 했을 인간이다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던 적이 몇 번이던가.

근데 그런 놈들이 밖에서는' 딸 삼고 싶다, 너무 착하고 성실하다, '등 기가 막힌 이야기들을 듣는 거다.

사실 그런 좋은 면모가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좋은 점이 많지ㅡ!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닌데?

-

보이는 면은 아주 극 소수일 뿐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진짜"를 우리는 아니까.

가족에게는 편하니까 그 본모습들을 다 드러내고, 또 오랜 시간 가까이서 함께 지내다 보니 그 민낯들을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거다. 

가족만 아는 그 얼굴. 또 아직 교화되기 전, 계몽되기 전, 사회적 상식과 체면을 습득하기 전, 태곳적 모습을 전부 봤으니 뭔가 좀 멀쩡한 모습을 보면 뭐랄까.. 영 잔망스럽달까ㅡ 


암튼, 누구든, 어떤 유형의 인간이든, 결국 연약하고 유한한 모순 덩어리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든 존재들이기에 내가 겪은 인간상이 지긋지긋해서 '그것만은 싫어!'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머지는 다 괜찮아!"는 사실 다른 사람의 민낯은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그 실체를 몰라서 한 말일뿐. 결국 어느 타인도 가족이 되면 반드시 '저거는 진짜 아니다. 정말 싫다' 하는 그것을 목도하게 될 테다.



진짜 고양이 대신 인형으로 대리만족
뭘 보고 있니?
형아가 만들어 준 모빌.. 눈에 뭐가 보이나? 이제 컬러 구분할 수 있는 80일 아기
저리가..
멀리서 서로 보기만 하자고....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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