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참으로 늦은 나이 35에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나 혼자만 온 것도 아니고 남편과 아들 둘을 데리고 나는 F-1 학생비자, 우리 남편과 아들들은 F-2, 학생비자의 배우자/자녀비자를 받아서 왔다.
2021년 7월 말, 학기 시작 약 한 달을 앞두고 시카고에 도착해서 이제 3년 차 미국 생활을 하는 중인 참으로 대책 없이 진행된 우리의 미국생활은 처음 그 시작부터 정말 대책 없고 우습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6월에 미국 비자가 나왔고, 5월에 비행기표를 끊었고, 4월에 집을 팔았으니까.
(비행기표와 집을 판 시점은 이것보다 더 빨랐을 수도 있다.)
정확한 날짜는 고사하고 몇 월이었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순서는 확실하다.
집을 팔고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고 그다음 비자를 받으러 갔고 한 달이 채 안되어서 미국에 왔으니까.
그러니까.. 일이 왜 이렇게 되었냐면,
당시 우리는 지방의 소형 아파트를 하나 갖고 있었는데 당시 부동산 경기가 너... 무 안 좋았다. 우리가 집을 살 당시는 서울 사람들이 지방의 소형 아파트에 투자를 해서 집값이 세상모르고 치솟았던 때였다. 그리고 우리가 집을 팔 2021년 4월? 그 당시는 그 갭투자의 거품이 다 빠지고 공실들이 넘쳐나던 때였다.
최고점에 사서 최저점에 팔아야 하는 그런 신세. WOW 대출금 갚고 나면 집 팔아서 빚만 질 지경인데...?
그저 웃음이 나오는 상황에서 나는 한 가지 결단을 했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샀던 그 가격에서 인테리어비용 (약 천만 원) 빼고 그 가격에 팔겠다고 집을 내놓자.
지금 시장가격이 얼마인지 알지만 빚을 지고 갈 수는 없으니 그렇게 집을 정리하면 유학초기자본은 가져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생각하는 유학 초기자본: 2,000만 원
... 되겠냐?
그러니까 이렇게 얼토당토 한 계획을 갖고 집을 내놨고, 물론 시세보다 비싸서 당연히 바로는 안 팔릴 것을 알기에 예정보다 빨리 집을 내놨던 것이다. (내게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그 동네 주위 시세들을 전부 보여주며 이렇게는 안 팔린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던 공인중개사분의 단호한 얼굴과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여하튼 그래서 집을 내놓은 일이 첫 번째가 된 것이지...
그런데,
집이 이주일만에 나가버렸다.
이번에도 서울에서 온 어느 투자자 때문에.
'아! 잘됐다'가 아니라 솔직히 '뭐 됐다' 쪽에 가까운 당혹스러운 마음? 그래. 그렇구나.
이제는 가야만 한다.
집이 없어.. 7월까지 말미를 준다 했으니 - 내가 건 이 조건 또한 공인중개사분의 표정을 굳게 하는데 한몫했었다- 올해 가야 해.
아참, 학비는 없었다. 장학금을 '받을' 생각이었거든. 그러니까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아직' 그것도 정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알아보니까 빨리 사야 싸더라. 시간이 늦어질수록 하루하루 비행기표값은 그렇게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샀...지... 어떡해 그럼....
그리고 장학금 네고를 하고 (전액은 아니고 70%를 받았다) i-20 입학허가서를 받아서 미국대사관에 온 가족이 갔고 내 앞으로 줄줄이 4명이나 떨어뜨린 그 대사 앞에 서서 허둥지둥 중언부언했는데 그는 내게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오는 길에 물어봤다.
'여권 안 돌려줬는데.. 비자 준다는 거 맞지?'
그렇게 비자를 받아서 그 길로 세간살이 다 정리하고 그렇게 와서 3년째 살고 있다.
아, 오해할까 봐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얘기들을 여기에 따로 적어둬야겠다.
+ 미국에 둘째 동생이 10년째 살고 있었다. (여자, 싱글)
+ 나는 동생네 집에 들어가서 살았기 때문에 그 동네 시세보다 싼 월세를 내고 살 수 있었다. (월 $1,500)
+ 그 후로는 한국에서 영주권 진행 중이던 넷째 동생이 미국으로 오게 되어 그 동생과 함께 산지 반년째다 (여자, 싱글)
그러니까 나는 돈은 없었지만 가족이 있었다는 것, 즉 비빌 언덕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