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이 저출산이 문제가 될 줄 모르고, 한 치 앞도 모르고 나라에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니,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무자식이 상팔자! 를 외치던 그 시대의 사조 속에서 저~기 어디 산골짜기에 있는 집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 있던 우리집은 하나도, 둘도 아닌 여섯을 낳은 대단한 집이다. 당시에는 다자녀 혜택 같은건 어림도 없었고 건강보건료도 무슨 벌금 내듯이 더 내야 했다고 하던데, 그것보다도 주위에서 아주 무식한 사람 보듯 우리 엄마를 그렇게 보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다. 40년도 채 안된 때의 이야기니까.
두 분이 그렇게 금술이 좋으셨나?
천만에.
우리 아버지는 정말 사랑이 많으셨다.
사랑이 너무도 많아서 미스김한테도, 미스리한테도 여기저기 넘치도록 퍼주고 다니셨던게지.
사업을 하다보니, 술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유전이라(?) 등등 그냥 바람을 밥먹듯이 피웠는데 그 중 두 번은 꽤나 진지했어서 까딱했다가는 정말 이혼을 할 뻔 했다. 나는 첫째딸이라 너무 자연스럽게 이래저래 그냥 많이 보고 알게 되었는데, 아직 넷째가 막내이던 시절에 엄마에게 자식 때문에 살지 말고 이혼을 하라고 권했더랬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애를 많이 낳았냐...,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한 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서 할머니 이야기를 좀 해야겠는데.. 정리를 하자면,
1.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가 낳은 첫 아들이다
2.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낳기 전, 밖에서 총각행세를 하며 멀쩡한 처녀를 꼬셔서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을 데리고 들어옴
3. 그 당시 딸만 셋 있던 할머니는 그 후 드디어 아들( 아빠)을 낳았고 데려온 자식과 낳은 자식을 다 키움
4. 우리 큰아버지는 결혼해서 아들을 낳음
5. 우리 아버지는 결혼해서 딸을 낳음
6. 또 딸을 낳음
7. 또 딸을 낳음
8. 너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 우리 집의 진짜 장손인 네가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지!-족보도 없는 집에서...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
결혼 전에 할머니 속만 썩이던 망나니 아들은 결혼을 하자마자 갑자기 급하게 효자가 되어서 자기 아내에게 대리효도를 강요하능데...?
아들을 낳아야해...! 아들!!
이렇게 하다가 육남매가 되어버렸을 뿐...
그러니 순서가 어떻겠는가?
그렇다. 딸 다섯에 막내가 아들이다.
태어나자마자 효도는 끝나버린 우리집 막내.
아직도 생각이 나는 일화 1.
엄마가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와서 누워계시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다.
아 할머니, 안녕하..
뭐냐?
네? 아.. 딸이요
-뚝
일화 2.
할머니댁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보통 듣게되는 인삿말.
"워매.. 쓸모없는 딸년들이 줄줄이 들어오네!"
다시 말하지만 나는 38살이지 38년생이 아니다.
당시에는 성별을 가르쳐주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그래도 사정이 딱해서 (이미 딸만 둘이라) 셋째부터 어떻게든 성별을 미리 알았고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를 지우라는 압박을 받았었다.
그래서 수술대에까지 가서 누웠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뛰쳐나오기를 두 번, 다섯째때는 아빠가 '실수로' 배를 치기도 했단다.
엄마는 참으로 미련하게도 그런 남편과 헤어지지 않았고 참으로 고집스럽게도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다.
끝까지 엄마는 아빠와, 아빠와의 사이에서 낳은 우리와 함께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엄마의 존재는 정말 막강하다.
엄마는 우리 육남매에게 그 어떤 위인보다 더 큰 위인이고
우리는 엄마의 상급들이다.
이제는 자식이 다 커서 셋은 미국에 셋은 한국에 있는데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막내를 제외하곤 다들 독립을 해서 집에 사람이 없다.
자녀 양육 기여도 0.9%정도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너무 적게 낳았어! 하나만 더 낳을것을..
아버지, 아버지는 밖에서 자식 낳아서 데리고 오지 않은 걸로 걍 잘했어... 배다른 형제 없는게 그냥 그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