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부잣집의 첫째 딸로서 딸들이 엄마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잘하는지, 얼마나 서로에게 좋은지 경험적으로 알았던 터라 '나는 나중에 딸만 셋을 낳아야지.'라고 야무진 꿈을 꾸었었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알지도 못하고..
지맘대로 될 줄 알고...
그렇다고 아들만 셋을 낳을지는 더더욱이 몰랐지만...
첫째가 아들이라는 소식에, 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ㅠㅠ 그래. 건강하기만 하면 다 괜찮아.
둘째도 아들이라는 소식에는, 아... 말도 안 돼..!
이번에도 아들이라니..! 이건 진짜 아니잖아..!
그렇게 두 살 터울 아들 둘을 키우고 나니 셋째는 생각도 안 나 버린 것이다.
미국에 오기 전, "여보, 미국 가기 전에 정관수술을 하는 게 어때" 했는데, 미국 오기 이틀 전까지 일을 했기에 정말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또 남편이 그다지 적극적(혹은 협조적)이지 않았기에 -아이, 내가 조절(?) 잘할게. 이런 헛소리나 하고 앉았어서 - 미처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왔던 것이다.
작년 5월,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지원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재작년 말부터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그림을 그려가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신중하고 싶어 대학 때 은사님을 뵈러 로드트립을 다녀왔다.
차로 8시간 거리를 왕복 16시간 동생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홀로 운전해서 다녀왔고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마침내 그다음 행보가 정해졌다. 자,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아우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이틀을 내리 자다 깨다 정신을 못 차리고 헤롱 대다가 갑자기, 문득 어..? 나 혹시 임신 같은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에이 이 타이밍에 무슨. 그건 아닐 거야.
아니, 아니어야만 해.
임신테스터기에 두 줄이 떴을 때,
나는 정말 좌절했다. 내 계획은 모두 다 쓸모없어졌다. 이전도 아니고 이후도 아닌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은 진짜 정말 아니잖아...
나의 대좌절 앞에 남편도 나를 위로하기 바빴다.
내가 지금 6주 차 임산부라는 것이 싫었다.
아이한테너무 미안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나는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번뜩 정신이 든다.
내게 주어진 이 생명을 단 한순간도 온전히 기뻐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제야 내게 찾아온 이 생명이 소중해진다. 잃어버릴까 봐.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배가 욱신 아프더니 손바닥만 한 동그랗고 미끈한 핏덩어리가 뭉텅하고 쏟아졌다.
안돼!!!
정말로 그런 외마디 비명이 나오더라.
하나님 제가 잘못했어요 도와주세요.
모든 게 다 지나가고 나는 지금 37주 차 임산부이다.
물론 셋째도 역시 딸이기를 바랐고 이번엔 정말 그럴 거라 철석같이 믿었지만 이번에도 나의 이 헛된 기대는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 운명인게지...
건강하기만 해 다오..! 엄마가 바라는 건 정말 그것뿐이야.
그렇게 건강한 우리 두 아들들과 함께 셋째를 기다리며, 오늘도 우리 집은 소란스럽고도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