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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회고

by Han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수요일부터 머릿 속이 부산스러웠다. 커튼콜은 아직 이른가보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누나랑 함께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적이 있었다.

거실 한 편엔 드라마가 우리 대화 소리에 묻혀 잔잔한 배경음악처럼 재잘거렸다.


식탐이 많아서 고기가 다 익는걸 기다리지 못해서 입안으로 마구 넣으려고 하면

엄마와 누나는 덜 익었다고 기겁하고, 나는 문제 없다고 다 익었다면서 한사코 우겼다.


도란 도란 앉아서 별 의미 없는 얘기로 실랑이 하는게 너무 행복했다.

입안 가득 구겨 넣은 고기만큼 만족감이 차오를 때, 누군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TV에서 누군가 쥐어짜는 소리로 울면서 엄마 죽지말라고 소리치는게 귀에 꽂혔다.


그 때가 아마 처음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마주했던 때 같다. 나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마구 울어버렸다.

누나는 옆에서 깔깔 웃어댔고 엄마는 왜 그러냐면서 재차 채근해댔다.

처음으로 느낀 무력감과 공허함에 대한 공포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어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죽는게 무섭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항상 머릿 속에서 싸워댄것 같다.

어렸을 땐 떨쳐내기 위해서 피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종교나 다른 사람에 기댈 수도 있었지만,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은 승률이 꽤나 올랐다.


삶은 무용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화내고 울고 슬퍼하고 기뻐할까 궁금했다.

영원함과 삶의 무용함에 대해 받아들이고 나서는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조금 변한 것 같다.


캐릭터를 성장하는 게임도 결론을 정해놓고 결론을 향해 시작해버리면 너무 뻔하고 재미 없지만,

현재에 집중하면서 그 다음을 위해 조금씩 나아갈 때 재밌었다.


어차피 썩어 문드러진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 집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가장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걸 알고 있다.

무의미하게 사라질지라도 지금의 내가 나라는 의식이란걸 갖게 된 시점부터 지금의 삶을 최대한 느껴보려한다. 그리고 나서 그 동안의 모험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떠올리면, "10분만 더"를 외치지 않고 만족스럽게 로그아웃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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