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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

- 나에게 조금 특별한 친정 엄마 -

by Anna Apr 01.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새로 바꾼 핸드폰 전화가 울린다.


'엄마'라고 적힌 단어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하아." 하고 


한숨을 쉬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한숨이 


천정에 가 닿기 전에 


통화 버튼을 밀어 


"여보세요."라고 답한다.



'엄마'라는 단어가 


핸드폰 화면에 보일 때부터일까?


아니다. 



아이들 아침 등교 시간 


바쁜 타이밍.



내 전화기에 


알람이 아닌 


전화벨을 울리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으로 특정됐기 때문에


한숨이 쉬어진 것이 아닐까?




내 한숨을 모르는 '엄마'는


계란 프라이를 구우며 한 손으로 


통화 버튼을 민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전화를 건 목적인 즉슨,


일전에 만져주고 간 TV의 매뉴얼이


시원찮아 마음에 들도록 


다시 와서고쳐 주었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아주 신생아였던 그 시절이었나.



3시간 간격으로 


배고프다 울어대던 그 시절은 


밤잠도 못 자고 유축을 해대던 


시기라 어쩔수 없이 


가까이 살던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아이가 신생아이던 단 3개월 


외에는 엄마에게 


힘들다 도와달라거나


하려던 일이 벽에 부딪혀도


삶의 지혜를 구하는 일을


엄마에게 부탁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어보는 일이


있었다면,



그저. 삶이 진부했을 


엄마의 삶에 


조금이나마 


이벤트를 주려고 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신생아인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발길을 끊은 것인지,


내가 요청을 끊은 것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엄마는 그 이후


엄마 나름대로의 삶에 집중했고,



나는 나대로의 삶에 집중하며


육아에 대한것부터 


자잘하고 큰 집안일까지


도움 요청은 하지 않고 지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무렵에는


산후 우울증이 심각하게 와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지만,



'엄마'에게 나의 


힘든 이야기, 


슬픈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엄마' '친정 엄마'라는 말은


어떤 이에게는 기댈 수 있고 


포근한 존재이겠지만,



나에게 '엄마'는 


그냥 말하지 않고 


혼자 두 발로 서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그런 존재였던 듯하다.



그렇다고 나의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딸 셋을 낳아 기르면서


얼마나 많은 고된 시간을 


지났는지는 늦둥이면서


가장 막내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둥이, 늦둥이인 나는


나이 든 엄마의 모정이 


필요하다 느낀 적이 별로 없다.



직각으로 딱 떨어진 모성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이



욕먹지 않을 정도로 


보이는 것에 


집중한 모성애였을까?



딸 셋은 모두 공부도 잘했고


어긋나는 것 없이 


순둥 순둥 하면서 


사고 치는 법도 없이 


무사히 4년제 대학교를 


잘 졸업했건만,



나이 든 엄마는 


대학교 졸업을


취집에 중요한 


발판쯤으로 생각해 주었다.



나의 능력, 나의 적성에


집중하여 주거나 


관심을 기울여


생각해 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괜찮은,


그런 사람으로 키워주었다.



무심한 듯한 엄마에게 


불평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어떨 때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썩 괜찮은'이 


제법 능력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엄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취집'을 보내기 전까지


좋은 대학과 좋은 평판을 만들어


잘 키웠다는 


뿌듯함을 주는 딸이었을까?



오래된 엄마와 요즘 생각을 가진 딸


다른 결을 가졌다.



오래된 엄마는 엄마 생각에 


잘 키운 딸을 '취집'도 


괜찮게 시켜 


이제는 마음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전화가 온다.



아침나절에 오는 전화는


거의 '엄마' 로부터이다.



'엄마'는 나에게 복잡 미묘하다.


'효'라는 것을 다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납작 엎드려 엄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맞추어 주면


자괴감이 느껴진다.



나는 이상했다.



'친정'이라는 단어와


'친정 엄마'라는 단어에


눈물을 훔치고 


가슴 아파하는 


주변 사람들과


다른 감정이 드는 것이 


생소했다.



학습에 예민했던 '엄마'는


1등이라도 낮아진 성적에


매를 들었었고,



이것이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어도 


엄마가 잔뜩 


기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피멍이 들도록 


많이 맞기도 했다.



억울한 감정은 없었다.



그것이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일이었는지,


나의 미래를 걱정한 


부모의 걱정이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성적에 관련하여서는 


딸 셋 모두가 


편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당장 앞에 닥친 불안을


해결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에 대한 후회를 


가지기 싫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나를 사로잡는


그 '죄책감'과 '효'라는 것이


참 많이도 힘들게 했다.



내가 못다 한 '효' 때문에


죄책감이 드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우울감을 만들었다.



그래서 남겨진(?)


엄마에게 내 남은 '효'를


충분히 아름답게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뀌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더라.



내 부모임에도 


진심이 뼛속까지 진심이


아니었으니,


이것은 숙제가 되고


어깨에 짊어진 짐이 되었다.



딸 셋을 키워낸 


팔순이 되어가는 엄마는 


당신이 일궈낸 세 명의 딸 농사가


훌륭해 보이신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그 어떤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인지 '친정 엄마'가 


가장 공을 들인 큰언니는 


사회의 주요 인사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노모에게는 


딸들이 장성하여 


세상에 잘 자리 잡은 것이


누구보다 뿌듯하고 


더 바랄 것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를 키워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점도 있다.



내 기대를 뛰어넘은 아이와


가려운 내 등을 긁어줄 아이.



그리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 줄 아이가


두루 갖추어진 셈이다.



엄마가 편히 마음을


놓아버릴 만도 했다.



내가 끝내 


버리지 못하는 '효'



일찍 돌아가신 아빠 덕분에


가지게 된 '죄책감'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나는 '엄마'에게 슬픈 일과


어려운 일이 없는 


즐겁고 행복한 일만 


알려주는 딸이 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친정 엄마와 나





더불어,



엄마는 딸 셋을 잘 키워내고


딸들로부터 


행복한 소식만 듣고 있는


무난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남은 기간은,


길어야 20년 안쪽이다.




내가 아빠에게 가진 죄책감을 


털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20년 남은 것이다.



엄마에게는 20년이 남았다.



행복한 소식을 들으며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귀찮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여 해결하여 줄 수 있는


당신의 주니어들이 


힘써 줄 수 있는 날이. 



문득 설거지를 하다


"엄마."라고 혼잣말을 한다.



내 삶이 서글플 때 내 진짜 '엄마'를 


찾는 혼잣말이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볼을 비벼 줄 '엄마'를


내도록 혼잣말로 불러본다.



나에게도 친정이 있다.



반찬을 냉장고에 넣어주고


딸이 어찌 될까 걱정하며


당신에게 닥친 일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친정이 아니라,



나는 내 할 도리 다 했으니 


이제는 내가 요청해도 자식에게


미안하지 않고 하고 싶은말


다 할 수 있는


그런 친정이다.



'친정엄마'가 없다면? 



이라고 생각하면 아빠도 없는 내게


너무 가혹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아침 등교 시간에 전화벨을 울리는


'친정엄마'에게 


진절머리 나는 표정이 되는 나.



'나'는 이렇게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결국은 나도 늙고 지칠 텐데.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올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엄마'가 찍힌 전화벨 소리를


무심한 듯 받아보려 한다.



엄마는 나에게


나는 엄마에게 


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그 다른 의미는 


'특별하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엄마'


그중에서도 '친정엄마'라는 


단어에 갇힌 


내 선입견이 더 무서웠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는 조금 다른 '엄마'지만


'엄마'가 없는 세상이


조금 더 무서울 것 같으니까.



따뜻하게 안아주며


내 마음을 달래주는 사치는


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엄마가 나를,



강하게 잘 키웠다 생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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