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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설 연휴

by Anna

준비하신 산낙지가 꼬물꼬물 춤을 추고 있었다.

점심메뉴 준비하신 낙지에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먹어댔다.

처음 맛보는 낙지의 몸부림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낯설어하다가도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자꾸 끌리는지 수북이 쌓여있던 낙지 탕탕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점심도 맛나게 얻어먹었겠다, 밥값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기름내가 잔뜩 범벅이 될 것을 예상하여 막 입는 트레이닝복, 유니폼 같은 앞치마에 니트릴 장갑까지 장비 착용을 마쳤다.

내 베개보다 큰 사이즈의 팬에 동그랑땡, 생선전, 배추전, 굴전, 두부까지 야무지게 구워본다.

위 지방은 폭설로 난리라는데 거제는 거센 강풍이 불어 나를 괴롭혔다. 토할 것 같은 기름내가 진동을 하지만 창문을 열어두니 손가락이 뽑힐 듯 아렸다.

찬바람 앞에서도 정성으로 구운 전은 고소하니 맛있기도 하다. 일 년에 2~3번을 기름 쩐내 샤워를 하며 전을 굽지만 아직 질리지 않은 것을 보니 종가 맏며느리가 맞긴 한가 보다.

짭짤한 향이 나는 전복과 소라, 문어도 순서대로 잘 조려냈다. 익으며 똬리를 치는 문어가 안쓰럽다. 8개의 발을 4개씩 잘 돌려익혀 꽃이 피는 것처럼 모양을 잡았다. 문어의 지능이 높아서 사람 얼굴도 기억하고 도구도 쓸 줄 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로 문어와 눈을 마주하고 조리하기가 영 껄끄럽게 되었다.

오늘 만난 문어는 평소보다 2배 이상 커서 그런지 지능도 더 높아 보였다. 죽을 때 고통을 느낀다는 문어야..... 한 몸 희생해서 차례상 상석을 차지하는 문어야... 내가 아직 힘이 모자라 차례상에 오른 너와 눈을 마주쳐야 하는구나....

차례상에 올라갈 나물에 전, 해산물과 갈비 준비를 다 놓았는데 저녁 메뉴를 또 해야 했다.

"배추전 먹어볼래?" 물음에 입맛을 다시며 "네!"라고 대답하니

늠름한 모습으로 어머님이 커다란 배추 하나를 밭에서 뽑아 트로피처럼 들고 들어오셨다.

그렇네. 여긴 모든 게 다 있는 곳이었네.^^

얼음장같은 물에 배추를 한 장 한 장 뜯어 담가 흙과 불순물을 씻어 물기를 빼놓았다. 장갑을 껴도 손이 시릴만한 온도지만 배추를 씻기에는 참 좋았다. 차가운 물 덕분에 배추가 더 싱싱해졌다.

배추를 부침가루 반죽에 한 장씩 담갔다 기름 위에 얹어 뒤집개로 꾹 누르면 치지직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난다.

소리만으로도 사람을 끄는 능력이 있는 배추전은 아이들과 남편이 들락날락하며 한 입씩 얻어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다.

오늘처럼 입김이 하얗게 새어 나오는 추운 날.

고소함이 몇 술 더 첨가되는 맛난 음식.

시부모님이 농사지으신 배추전에 토실한 우럭을 네댓 마리 구워 상에 올리면 생선 살이 절로 발라져 아이들 밥그릇에 올라가는 따신 밥상 풍경이 만들어진다. 콩밥의 콩을 골라내는 녀석, 어머님 노안 때문에 끼어들어간 가시를 모르게 살짝 빼내는 녀석.

제 입맛대로 저녁 한 상 맛있게 먹고 나면 수십 개의 그릇이 남겨지지만 눈치라는 걸 장착한 남편이 고무장갑 팔꿈치까지 단단히 끼고 걸리적거리니 얼씬도 거리지 말고 부엌에서 나가라 하네.

배추전 굽다 딸 안마도 받고 설거지 서비스도 받았으니

이번 설도 분노 버튼 push 없이 무탈하게 잘 지나가려나 보다.

설은 특별하다.

평소와는 다른 일의 양.

명절에만 뵙는 시어른들, 친척.

오며 가며 도로에서 보내야 할 답답한 시간.

무엇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생각하는 나와 모든 걸 바꿀 수 없는 수동적인 자아의 싸움.

올해도 어김없이 두 번째 자아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세계 일주를 꿈꾸는 나의 아들처럼

나도. 그런 명절 문화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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