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택배가 있는 건 환영할 일이다. 구매를 줄여본다고 해도 살 게 있고 필요한 게 있다. 택배박스고 비닐이고 뽁뽁이고 모두 쓰레기지만 마트에 없는 물건도 많고 가성비를 따져본다면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게 나을 때가 많다. 쿠팡을 지울 수 없는 이유이다.
오늘도 집 앞에 택배가 있었다. 그런데 김00앞으로 온 택배다. 우리 집엔 김씨가 없다. 하물며 양가를 통틀어도 김씨가 없는데 무슨 일인가. 자세히 보니 골프가방이다. 주소는 우리집인데 누가 잘못 기입을 한 것이다.
요새 택배는 개인정보도 보호해준다. 0503으로 안심번호 지정도 되어 있다. 동네 사람 중 누가 잘못 기입했겠지 하고 사진을 찍어 맘톡에 올려두고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개인번호로 연결된댔나 뭐라나 하면서 전화 연결음이 갔다. 받지 않았다. 하긴 나도 모르는 전화번호는 받지 않는다. 전화도 연결되니 문자도 연결되겠지 싶어 사진과 택배가 잘못왔다는 연락을 남겼다. 보면 가져가겠지 싶었다.
한시간쯤 뒤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혔다. 혹시나 해서 받았더니 역시나 골프가방의 주인이다. '혹시 택배 잘못갔나요?' 왠 젊은 여성이었다. '네 김00님이신가요? 저희 집 잎에 있습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 분은 할 말이 남았다. '저희 집에 아무도 없어서요, 000동 000호로 갖다주시겠어요~?' 순간 잘못들었나 싶었다. '네?'하고 되물었다.
'000동 000호인데 갖다주세요~.' 오마이갓. 내가 제대로 들었다. 왜 이러세요. 왜 타인의 선의를 강요하시나요.
'택배를 김00님 댁으로 갖다달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저희 집 앞에 있으니 가져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 분은 옆에 엄마가 있었나보다. '가져가라는데? 할머니도 안계셔? 알았어' 하더니 '알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까우니까 당연히 가져다 주겠지 생각한 걸까. 주저함이나 미안한 기색이 없이 가져다 달라고 하는 건 전혀 나쁜 의도는 아니었겠지. 하지만 택배가 우리 집 앞으로 온 건 택배회사의 잘못도 기사의 잘못도 아닌 그 분 잘못인데 말이다. 잘못이라 하기엔 사소할 수도 있다. 주소기입 오타난 게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쎄. 두 시간쯤 후 현관 벨이 울렸다. 택배 가져가려고요 하며 공동현관을 열어달라고 중년의 여성분이 찾아왔다. 그 여성분의 엄마였을까. 복도에서 택배를 가져가셨나 보다.
나는 그런 적이 없나 생각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타인의 선의에 기대거나 나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 했던 적은 없는가. 분명히 있을 거다. 되도록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나를 다시금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