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의 고리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노랗게 물든 잎사귀에는 검은 점들이 시간의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청춘처럼 푸르던 색이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어 이제는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겼다.
생명의 끝에 서서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는 나뭇잎은 우리 인생의 단면을 비추고 있었다. 자연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순환을 한다. 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 안에 인생이 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 설렘과 젊은 날의 열정, 중년의 지혜, 노년의 평온까지. 길게 보면 전 생애가 짧게 보면 일 년 단위 인생사가 스며 있었다.
영고일취(榮枯一炊), 인생이 꽃피고 시드는 것은 한번 밥 짓는 순간과 같이 덧없고 부질없다고 한다. 은행잎도, 단풍잎도, 사람도, 우주 만물 모든 자연이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 하지만, 덧없고 부질없음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자연이 그렇듯 인생의 매 순간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의 슬픔, 기쁨, 눈물과 웃음이 쌓여 지금 이 순간 나를 만들고, 삶에 새로운 색을 더해 주니 말이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와 잎이 돋아나듯, 우리도 매 순간 새로이 태어난다.
순환 속에서 나무에 새싹이 돋고 잎이 나며 꽃이 피어나듯 매번 다시 살아난다. 때로는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듯, 한 시절을 놓아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길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또 다른 계절이 온다.
지난 토요일, 40년을 이어온 대학 동아리 모임이 있었다. 매년 돌아오는 계절처럼 변함없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울, 대전, 광주.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동기들이 대전에서.
60대가 된 우리는 여전히 우리들의 20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허름한 뒷골목에서 먹었던 라면, 자취를 하던 동기집에서 밤새 떠들었던 기억, 문학과 음악의 밤 행사를 준비하던 그때 그 시절. 우리의 기억 속에는 20대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동아리 모임을 보면서 우리도 계절의 순환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떨어져 살다 정해진 날이 되면 자연스레 다시 모여 20대를 회고하는. 푸르름으로 가득 찼던 청춘의 열정은 이제는 노랗게 물들었지만 추억과 우정은 여전히 우리 사이를 잇고 있었다.
20대 시절, 동아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도전과 희망을 나누던 우리였지만, 지금은 노후대책과 건강, 자식들 이야기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세월을 겪어낸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매년 한 자리에 모여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떨어진 나뭇잎이 흙으로 돌아가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듯 우린 새로운 힘을 얻는다. 모임이 끝난 후 각자 자리로 돌아가지만 그 만남 속에서 느낀 따뜻함과 웃음은 다음 해에 또 모일 동력이 된다.
40년 인연, 20대 젊음을 기억하고 있는 이 모임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삶을 되돌아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환의 고리다. 다시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각자 삶에서 각자 계절을 산다. 다시 만날 때마다 우린 조금씩 익어가고 있는 모습을 서로 발견할 것이다. 그 모습을 통해 나를 보게 될 것이고, 매 순간이 소중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