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소망은 이뤄졌을까
아파트 담벼락 긴 그림자가 아이와 엄마를 따라왔다. 아이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달래도 달래도 우는 아이손을 잡은 젊은 엄마는 "니가 계속 울면 엄마도 눈물이 나" 라며 훌쩍훌쩍 우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엉엉 큰 소리로 울었다.
"아이야, 아이야, 왜 울어"
"엄마가 우니까요"
"엄마, 엄마 왜 울어"
"아이가 우니까요"
아이는 엄마를 다독이고 엄마는 아이를 다독이며 걸어가는 등 뒤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엄마손을 잡은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듯 웃음소리가 담벼락을 수놓았다. 대 여섯 발자국 뒤에서 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분홍색 꽃신에 분홍색 원피스, 분홍색 스타킹, 분홍색꽃모자를 쓴 아이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아이의 모습을 글로 쓰려고 책상 모퉁이에 있는 노트북을 당겼다. 노트북 옆에 있던 파일이 책상 밑으로 툭하니 떨어졌다. 오려서 파일 안에 쟁여놓은 신문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하나씩 집어 정리를 하다 내 눈에 들어온 22년 전 기고문하나. 그것은 2002년 4월 14일 여성저널에 기고했던 글이었다.
2002년,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상처받은 마음을 품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학교 폭력의 상처는 깊었고, 가정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그녀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떠밀리듯 사회로 나온 그녀는 2년 가까이 집에만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건설기계직업훈련을 받기로 결심을 한 후,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건설기계훈련을 받고 싶어요"
어린 아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순간 놀랬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자들도 버거워할 그 고된 일을 선택하기에는 나이도 너무 어렸고 한 눈에 봐도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한 아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이미 단단히 세뇌를 받고 온 상태였다.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절 그녀를 떠올리면 어린 마음에 각인된 고통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새삼 가슴이 아려온다.
시간은 흘러, 2024년 삼십대 후반이 되어 있을 그 소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갇혀 있을까, 아니면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파트 담길을 아이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
조심스럽게 그녀의 삶을 상상해 본다. 아마도 한때 자신을 짓누르던 아픔과 두려움을 완전히 잊지는 못했을 리라. 트라우마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세월은 그녀에게 조용히 치유의 시간을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 자신을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을 만나서 조금씩 상처와 화해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때로는 꿈속에서 어둠이 찾아올 때도 있었겠지만, 2024년 그녀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불안했던 그 시절 자신을 따스히 안아줄 수 있을 만큼 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녀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건설 현장에서 강한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도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과 아픔을 딛고 살아남은 그녀이기에, 어느 직업에서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가고,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가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내 나이 30대 후반에 만났던 그녀가 2024년 60대가 된 내 앞에 글로 나타났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지금 행복하기를 바란다. 과거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상처가 그녀의 삶을 지배하기 않기를. 그 상처를 품에 안고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거기에 덧붙여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낼 수 있기를 바란다. 걸어온 그 길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겠지만, 그 모든 여정이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2024년 어느 날,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잘 살아낸 증거이리라. 나는 그녀가 더 이상 상처받는 소녀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아름다운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염원한다.
만난 지 22년이 지난, 2024년 30대였던 내가 6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