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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그리고 우울증 극복을 위한 노력



어머니는 아내와 방 안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희는 아기 계획이 어떻게 되니?"

"남편이 회사를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고 제가 자신이 없어요."

당시 시댁과 처가댁에 나의 우울증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하루하루 회사를 다니는 것이 힘들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에 회사를 가려고 눈을 뜬 순간부터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이동하는 과정까지 머리가 심하게 지끈거렸다. 그리고 일을 하는 중간에는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에게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아내가 어머니에게 내가 회사를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이유를 나로 핑계 삼은 것 같아 화가 많이 났다. '내가 어떻게 하다 우울증에 걸렸는데..' 아내는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가시고 난 후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어머니랑 단 둘이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

예민해져 있던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내었고 아내도 화를 내며 말했다.

"맞는 사실이잖아. 매일 회사 가는 거 힘들어하고"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회사를 다녔는데 아내가 내 심정도 모르고 그렇게 이야기하니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의지가 사라졌다.

"회사 가서 그만둔다고 이야기할게. 내가 더 다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나에게 회사는 '돈을 버는 곳'으로만 여겨졌고 커리어적인 성장이나 더 다녀야 할 동기부여를 찾지 못했다. 아내는 과거 학창 시절 장인어른이 사업을 하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고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며 나에게 다시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변함없었고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아내에게 당신만 돈을 버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가 건강 회복하는 대로 다시 일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회사에 가서 상무님께 우울증이 심하여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우울증이 온 사유는 결혼 후 가정문화차이 때문이었지만 허리디스크 때문에 온 우울증이라고 말씀드렸다. 상무님은 신혼 시기에 우울증을 겪게 되니 안타깝다며 위로를 해주셨고 일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직서를 받아주셨다. 아내는 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상무님께 사직서를 냈다고 이야기했다. 



휴직이라는 방법도 있었지만 회사 운영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변하고 있어 내가 휴직을 하게 되면 팀원들이 더 고생을 할 것 같았다. 휴직으로 한 명 부족하게 일할 바에야 내가 나가면서 한 명을 뽑아 충원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회사 규정 상 휴직이 5개월밖에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나는 그 안에 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또 나중에 복직하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2주 정도는 침대에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침대에만 있자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영어회화학원을 다녔다. 아침 8시에 기상하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학원에서 영어회화연습을 하였고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헬스를 했다. 약 1달 정도 꾸준하게 하니 생활패턴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약물 및 상담치료를 꾸준히 하였고 나는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회사로부터, 그리고 고부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다 보니 우울증이 많이 나았다. 약 1달 반 정도 지나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고 2군데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1군데는 중견기업, 1군데는 대기업이었다.



대기업 면접을 먼저 보았고 약 3년 만에 보는 면접이라 떨렸다. 떨리는 감정이었지만 내가 건강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씀드렸고 현재는 거의 나아졌다고 말씀드렸다. 우울증으로 인해 퇴사했다고 말씀드리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것 같아 이전에 겪었던 허리디스크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현재는 이상이 없는지 재차 물었고 나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머지 직무 관련 이야기들도 면접관들이 납득이 가게 설명을 했고 며칠 뒤 면접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전 회사가 계속 성장하는 회사였고 연봉도 적지 않아 더 좋은 직장을 가기는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 대기업으로, 그것도 연봉도 높여서 이직을 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총 2개월의 공백기 밖에 없었고 내 나름대로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제가 이제 우울이라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해서 약을 조절해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의사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회사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게 되면 약을 줄이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시댁과 처가댁에 우울증을 잘 극복하고 있고 연봉도 올려서 대기업으로 이직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게 평소 눈물을 보인적이 없었지만 통화할 때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도 눈물이 나려 했지만 애써 참았다. 그리고 처가댁에도 제가 잘 극복해나가고 있고 더 이상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우울증은 잘 극복되는 듯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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