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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Jul 28. 2024

너무나 빤한 답, 세월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하고싶은일 해야할일 나의 선택은?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중 어느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부모님의 결정으로 군산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같은 친구들과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는 복불복이었는데 미션스쿨에 입학했다.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는 여상을 다녔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선택이었다. 고3 때 취업 해서 4년쯤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쩌면 처음 내 의지로 야간대학을 결정했다. 그때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문예창작과를 갔으면 됐을 텐데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는 식품영양과를 선택했다. 현재 나는 영양사가 아니다.     

나는 10대 시절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교내 독후감대회 에서 소소한 상을 받기도 했다. 글을 쓸 때는 편안했다.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소심한 사춘기 때는 글 쓰는 것이 내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길이던 것 같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어딘가 구석에 숨어버리고 말았다. 안정된 상황을 좋아하는 나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이 쉽지 않다.


나는 커가고 있는 자녀들에게 젊을 때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거라고 말했다. 그래야 나이 들어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고.     

정말 그럴까?

이젠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보니 내게 다시 묻게 된다. 내 자녀를 비롯해서 요즘 20~30대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더 익숙해 보인다. 부럽기도 하다. 

반백 년 살고 보니 결국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떤 모양으로든 찾아가는 것 같다. 비록 주업으로 못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식품영양과를 졸업하고 결혼 전 영양사로 일을 했다. 출산과 양육으로 경력 단절 여성이 됐다. 주경야독한 것도 아깝고 면허증이 있으니까 다시 돌아가보려 했다. 현장에서 일한 지가 오래된 나이 많은 아줌마는 채용하지 않았다. 

‘두 자녀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사회생활은 해야지’  여성일자리센터에 구직 등록을 했다. 그것을 계기로 관공서에 기간제로 근무하게 됐다. 주님 은혜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직이 됐다.

 


지금 뒤돌아보니 내 인생의 대부분이 이끌어 가는 대로 내가 되었음을 본다. 물론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살았다. 나는 계획적인 편이고 성취욕구도 가지고 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 짝꿍 H도 가정환경상 기계공고에 입학했다. 취업을 나갔다가 늦게 전기공학과에 들어갔다. 지금은 관련 없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자리마다 열심히 살았다. 성경에서 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 같으며, 순간의 꿈안개나그네 같다고 말한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시간을 하고 싶지 않은 일과 보낸다. 지금 행복을 누리는 일보다도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며 참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당장 눈앞에 해결할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머리로는 깨닫지만 행동까지 변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류시화의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에서는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침마다 남편과 커피 한잔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행복.

비 온 뒤 맑게 개인 도로를 지나며 싱그러운 초록이들을 보면서 지어지는 미소.

직장에서 작은 일상을 나누며 웃음 터뜨리는 시간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따스한 가정에 들어설 때의 편안함.

온 가족 식탁에 둘러앉아 휴가를 계획하는 순간들. 

아주 오랜만일지라도 반갑게 통화할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음을.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찾아오는 만족감.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     


인생은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올바른 길을 찾고자 끊임없이 애쓰며 산다. 한 번밖에 살아보지 못할 삶이라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일까? 

내가 직접 겪어본 일은 그 누가 조언을 해도 생각이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인 나도 고생하며 얻은 깨달음을 자녀에게 앉으나 서나 얘기하게 된다. 비록 잔소리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젊었을 때 주먹 꼭 쥐고 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일들이 스르르 느슨해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생각일 뿐이구나.

정답은 없구나.

모든 경우 최선만이 답이 아닐 수도 있구나차선이 더 나은 선택일 때도 있구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살던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던지 그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으리라!

나의 자녀도 대학 졸업 후 무슨 일이든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 8시간 이상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낼 것이다. 부디 그 시간 속에서 행복감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한다. 산을 오를 때 처음부터 저 멀리 있는 정상만 바라보다가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느라 얼마큼 왔는지도, 옆에 무슨 나무들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저녁은 감자전을 노릇노릇하게 부쳐야겠다. 간장과 청양고추 썰어 넣은 소스에 찍어 감자전 한 입 가득 물어야겠다. 창밖 빗소리가 더욱 리듬을 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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