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일까요?
편지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난생처음 받았던 편지.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 친구는 학교에서는 절대로 펴보지 말라고 부탁하고는 총총거리며 돌아갔습니다. 당장 편지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나는 친구의 부탁을 먼저 꼭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에도 가만 눈치를 보다가 나 혼자 비밀스럽게 조용히 편지를 펼쳤어요. 지금은 편지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예쁜 그림이 있는 편지지에 색연필로 아기자기하게 쓴 글자는 또 어찌나 예쁘던지요.
그래요. 고백편지였어요. 한동안 저녁마다 편지를 펼쳐보면서 설레었습니다.
편지와 함께 걱정이 하나 더해졌습니다. 마땅히 답장을 전해야 할 텐데 답장을 쓸 수가 없었어요. 한 번도 편지를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답신을 쓰기 위해서 받았던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곤 나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집에는 예쁜 편지지도 없었고 예쁜 색연필도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공책을 찢어서 답장을 쓰긴 했지요.
그런데 두 편지를 놓고 보니 너무 달라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편지, 그런 걸 받고 나면 내가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너무 성의 없게 대충 쓴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어요. 어렵게 쏟아놓은 나의 대답과 고백이 그보다 훨씬 작고 초라한 편지 뒤에 가려질까 겁이 났어요.
그 뒤로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흐릿한 걸 보면 내가 전학을 갈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지는 결국 전해주지 못한 채 나는 가족을 따라 낯선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고백은 아무나,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려서도 자라서도 고백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고백해야 할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고 고백의 시기와 순간을 적절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 나의 고백으로 상대와 멀어지더라도 후회하거나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 용기. 고백은 그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와 다시 그 시간을 산다면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을 것 같지만 그건 이미 그 뜨거움을 지나왔기 때문이고. 여전히 고백의 적절한 온도를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고백은 늘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을 더 배려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편지를 쓰는 것은 나만의 웅덩이가 찰랑거리는 느낌입니다. 설탕을 살짝 뿌린 토마토 맛이나 햇빛 냄새가 나는 빨래의 촉감 같은 걸 전하려는 마음이죠. 같이 사는 강아지가 아무 이유 없이 다가와 가만 눈을 맞출 때처럼 편지를 쓰는 마음에는 받는 이의 마음도 있네요.
나는 아내에게 생일마다 편지를 씁니다. 그러니까 일 년에 한 번 편지를 쓰는 것이지요.
맨 처음에 제가 아내에게 전한 편지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아요. 편지를 받았던 아내만 기억이 납니다. 무심한 듯 받아서 내가 없는 곳에 가서 몰래 읽고는 지금까지 소중하게 상자에 모아두었습니다. 마치 상장을 처음 받은 아이처럼요.
편지는 편지를 쓰는 사람의 손을 생각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글을 적어 내려가는 손, 쓰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창밖을 향하는 눈. 그 순간 보이는 시원한 바람과 구름. 그리고는 다시 가만 연필을 쥐어 눈처럼 살포시 내려앉는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는 손.
편지는 손과 함께 도착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송이가 내려앉듯 다가오는 마음, 때때로 읽던 것을 멈추고 창밖을 향하는 눈,
편지를 주고받는 둘은 따로 있지만 잠시 함께 흔들립니다.
이 글은 제가 아내에게 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입니다만 듣는 이가 누구든 기분 좋아지고 그의 발이 따뜻해지는 한 통의 편지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