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은 갈증

꿈만 꾸는 노인

by 남재 이진주

나는 30년을 직장생활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 마음준비도 한다고 해왔다.

어떻게 하면 퇴직 이후 노인이 되어가는 길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선을 행하는것일까?마음속에 조화를 이루는 것일까?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일까?

때때로 지혜로운 노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 보기도 했다.

아프지 말고 돈욕심 버리고 앞장서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스스로에게 겸손을 덧입혀 가야 한다고 지혜로운 선인들의 이야기를 따르려고 했다.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삶에서 결코 외롭지 않고 소소한 행복과 자유를 느껴보고 싶어서 몇가지를 정해 보았다.

첫째는 잘 노는 것이다. 아직 팔다리 성할때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도 만나고 아내와 여행도 하고 맛있는 식도락도 즐기고 싶었다.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싶었고 우리나라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마음의 문을 열어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담고 싶었다. 감성하나 챙겨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취미생활이다. 직장생활로 미뤄두었던 문학과 그림, 서예에 몰입하고 싶었다. 서예보다는 캘리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캘리그래피는 마음의 위로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남다른 시각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다시 맞을 수 없는 시간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파아란 하늘에서 다시 보지 못할 구름이 그린 그림을 담아보기도 하고 어쩌다 부는 바람도 담아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립고 마음 졸이던 애틋한 순간들도 클로즈업하여 간직해 보고 싶었다.

세 번째로는 끊임없이 학습하는 일이다. 일상에서 책을 놓지 않고 많은 작가들과의 글 속에서 소통하며 새로운 강좌에 나가며 배움의 즐거움을 실현하고 싶었다. 전문분야의 지식탐구와 실천 가능한 분야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까지 마음으로만 생각했던 분야에 깊이 들어가고 싶다.

나는 혼자가 아닌 마음 통하는 친구와 이런 모든 바람을 실현하고 싶은 바람이 자연스럽게 제기 되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여유를 느낀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나는 40세에 서예에 입문해서 13여 년을 거쳐 전라북도 미술협회 서예 초대작가가 되었다. 이후 10여 년 만에 전라북도 미술대전 서예분야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퇴직을 앞두고 주체할 수 없는 감성에 이끌려 생애 처음으로 열정을 담은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정년퇴직을 기념하여 그동안 간간히 써왔던 시를 모아 잘 다듬지는 못했지만 개인 시문집도 출간하였다. 그렇게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바람을 담은 기본사항은 갖추어 놓았다.


오래된 나의 꿈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물론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고 멋진 캘리그래피 작품을 하여 많은 지인들에게 하나씩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듯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 나가며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퇴직 이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국과 베트남에서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글쓰기를 계속하여 신춘문예에서 수필이 당선되고 문단에서 시도 우수상을 받았으니 내가 꿈꾸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캘리그래피를 공부하여 서예와 캘리그래피로 지역에서 개인 초대전시회도 열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림도 독학으로 공부하여 수준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쉬지 않고 열정을 품고 공부하는 습관은 퇴직 이후의 삶을 보람되이 보낼 수 있었다. 6개월간의 완산도서관 전문작가 자작자작공작소 집필실에서 사색하는 생활을 마치고 나서도 더욱 배움의 뜨거움은 식지를 않았다. 사람들은 더러 나보고 이젠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일을 택하라 하지만 나는 오늘도 배움의 배고픔이 더욱 갈하다.

나의 만족하지 못한 가슴은 우울하고 허전하게 하는 바람은 생각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갈급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보다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갈증이 남아 있다.

인간의 한없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열정의 시간들에서 마지막 모닥불의 열기를 살리고 싶었다. 더 많은 양서를 읽고 더 멋진 글을 쓰고 싶다. 작은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양지쪽 산중턱에 예쁜 목조건물을 짓고 푸른 하늘과 바람과 사시사철 변화하는 세상을 가슴에 담아보고 싶은 것이다. 따뜻한 햇살이 다가오면 시원한 아이스에스프레소 한잔을 두고 꽃향기에 사랑을 하고 싶다.

해가지는 해변에서 석양에 물든 붉은 바다를 보면서 감성에 충만하여 시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꿈은 항상 현실을 핑계로 목적지를 비켜가지만 이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그 꿈은 영영 빛이 바래 없어지지는 않았더라.

얼마 전 나는 두 권의 책을 쉬지 않고 독파하게 되었다.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와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내 생애 단 한번”이었다.

글에서 두 사람의 공통적인 부분은 능력 있는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서 크게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교육을 향한 남다른 지도와 빈곤함 없는 생활력이었다. 그 두 사람은 나와 거의 동시대를 살면서 공감하는 내용들을 글로 표현해 놓았다. 우리는 중고등학교도 거의 진학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못다이룰 꿈을 꾸었지만 이 두 책에서 주인공은 어떻든 최고의 학벌을 갖게 되었고 삶에 비참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들과 비교하면 어림택도 없는 비참한 가정에서 잡초처럼 버려져 살아가는 인생이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오롯이 생계유지에 간신히 견디고 있는 실정이었다. 꿈은 꿀 수도 없었고 꿈은 뜬구름인듯 금새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은 것이었다.

어쩌다 보면 잘 될 수도 있겠지, 성실하게만 살다 보면 우리 아버지처럼 가난하게 살지는 않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이 전부였다.

나는 아버지처럼 무기력한 아버지는 안되고 싶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도 지구는 대만원”이라는 구호를 내걸던 우리네 청년시절은 먹고사는 문제가 최고의 관심거리였다. 나도 둘째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예비군 동원훈련에 가서 훈련을 제외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정관수술을 하게 되었다. 나는 끔찍할 정도로 나의 삶이 아버지의 인생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아이들 많이 나아서 아이들에게 책임 없는 삶을 강요하게 내 몬다면 내가 꿈꾸지 못한 세상을 또 물려주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서 무서웠던 정관수술을 단행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후회막심하기도 했다.

나는 남들처럼 대학까지는 다닐 수 있기를 원했고 국어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삶을 꿈 꾸워 왔다. 창이 넓은 서재에서 달려드는 햇살을 안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 모습을 꿈꾸어 보았다. 무쇠 난로 위에 김이 나는 차를 달이는 주전자를 올려놓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연이 전하는 소식에 감성을 버무려 보는 삶을 꿈꾸었다. 창밖 화단에는 색색으로 꽃들을 심어놓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아름답고 신비로운 꿈을 꾸고 있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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