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위한다.
세월 참 빠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넋두리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 어느덧 인생의 뒤안길에 서있는 나의 해거름에 비친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간 세월을 원망하며 수를 헤아려 보아도 살아온 시간만큼 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니 살짝 서글픈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젊었을 때의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전기와 수도가 없고 내방도 없는 겨우 먹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과제였을 뿐이다. 가난과 돈이 없어 죽음으로 치닿는 질병과 비위생적인 생활정도였다. 매일 씻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갈아입을 옷도 변변치 않아 땟국물 그대로 입고 살았다. 이런 우리네에겐 꿈도 절망도 사치였고 오직 운명에 내 맡겨진 보호받지 못한 야생의 이름 없는 벌레 같은 것이었다.
어둑한 세상을 가로질러 살아오면서 운명처럼 찾아오는 상실과 허탈은 감히 내색할 수 없는 시대적 업보였다.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나보다 훨씬 더 처절한 환경에서 겨우 목숨만 의지했던 무학의 친구들도 있었지만 소년시절 가슴에 응어리 진 탓인지 일찍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지금껏 살아왔다. 부와 명예를 움켜쥐지는 못했으나 험난한 인생을 살지는 않은 듯하다.
"나는 나를 위한다."라는 문구를 액자에 담아두고 바라보던 어떤 선배의 인생살이에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에는 무심했고 저런 게 뭐라고 애지중지 하나 했더니 세월이 한참 지나 노년의 길에 들어서니 새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나밖에 아무도 알 수가 없고 알아주지도 않는다. 누구나 자기 인생에 고립되게 되고 자기만이 안고 살아갈 고통과 지독한 외로움은 오롯이 자기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았을까? 가족들을 위해서? 나의 빛난 미래를 위해서? 사회적 위치와 풍요를 위해서?.....
다양한 질문을 던져 보지만 나는 내 속에 감추어진 진실과 가식을 다 내어 놓을 수 없기에 그냥 웃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성공적인 삶을 얻기 위한다는 핑계로 겉과 속이 다른 나에게는 숨겨진 비밀과 진실로 욕망을 탐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나의 신념과 가치관은 내 삶의 진정한 목표를 향하고 있었으며 청렴하고 투명하게 살아왔는지 묻게 된다. 남을 의식하며 나만의 인생을 살아오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나 자신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져 본다. "너는 너만을 위해 살아보았는가?" 지금쯤에는 어떤 답이라도 내어 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삼스럽게 나의 인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논어에 보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성찰하는 구절이 있다.
첫째, 나는 인생을 살면서 좋은 생각만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묵묵히 나의 길을 가고 있는가?
둘째, 배움에 싫증 내지 않으며 배움이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셋째, 남을 가르침에 있어서 게으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이다.
나는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쁜 놈, 싸가지 없는 놈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번 맺은 인연은 어떠한 이해관계가 발생하더라도 내가 먼저 손절하는 일은 없었다. 때론 배반과 억울한 음해를 받는 일이 있었어도 그 사실을 규명하고자 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자기가 살기 위해 잔인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살기 위해서 나를 밟고 가겠다면 흔쾌히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 생각과 같은 사람이 어디 하나라도 있겠는가?
나는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를 원망해 보거나 공격해 보지 않았다. 언제난 나에게 진실하고 상대에게도 관용을 아끼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남다른 덕목으로 일찍 승진하여 직원들의 본이 되었고 집안에서도 늘 겸손과 존중, 배려와 사랑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칭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늘 내 몫을 다하지 못한다는 상실감에서 울적한 마음이 가득 채워질 때도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소중한 가치를 목표로 두고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먼저 등진 어깨동무 친구들에게 내가 좀 더 배웠다고 으스대 본 적 없고, 그 배운 것으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자만하며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알려주기를 꺼려본 적이 없다.
“배움은 즐거움으로 하고 나누는 것이 진정한 위대한 배움이다”라고 했다.
나는 회사에 다닐 때 세 가지 습관을 늘 강조해 왔다.
첫째, 소통하는 습관. 둘째, 상호존중하는 습관. 셋째, 끊임없이 학습하는 습관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학습하는 습관을 먼저 가지도록 권면하기도 했다.
늘 배움 앞에서 겸허하고 성찰하는 자세로 살아가리라 다짐하게 된다.
오늘도 많은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오니 체감 온도는 더욱 춥게 느껴진다.
꽁꽁 얼어버린 전주천에는 백로 몇 마리만 남아 한다리는 날개밑에 넣고 목을 구부리고 추위를 견디고 있다. 텃새가 된 전주천 토박이 오리가족은 어디에 숨어 들었을까?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미세먼지 주의보까지 내렸으니 마스크는 더욱 단단히 쓰고 길을 걷는다.
요즘 손녀딸 하우가 어린이집이 방학이라 집에 와있다. 지 엄마아빠는 맞벌이 나가고 아내가 돌보고 있다. 하지만 밥 먹을 때 만은 내 무릎에 철썩 붙어 앉는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랑스럽다.
아이가 놀다가 잠이 들면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퇴직하고 나서 이렇게 눈이 내리고 추운 날은 바깥활동을 줄이고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았다.
책을 읽기도 하고 캘리도 써보기도 한다.
오늘은 시를 써보고 있다. 부지런히 준비해서 두 번째 시집을 내놓고 싶어서다.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읽기도 하고 우수한 시작 기법도 나름대로 배워보기도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 줄의 응축된 시어를 구사하는 데는 많은 공부를 통한 테크닉도 있어야 한다.
시란 딱 부러지게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다. 그동안 시류는 많은 시인들을 통해 흘러 왔다. 그렇게 시작의 방법도 장르도 매우 다양해졌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다고만 생각하면 단 한 줄의 시도 쓸 수가 없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쩜 우주의 공간에서 한 행성을 만나는 것처럼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신비로움에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훌륭한 선생님들의 시를 배우고 답습하고 똑같은 시를 쓸 수 없다. 시는 극히 독창적이고 시인의 심오한 세계를 단어에 함축시켜 내어놓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나만의 시어로 시를 쓰고 있다. 전통적인 기법으로 측량한다면 감히 얼굴도 못 내밀 수준이라고 인정한다.
다만 시란 나만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감성의 표현이기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려워하지 말고 무겁고 응축된 단어를 고집하지 말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써보라고 하고 싶다.
그 길이가 길면 어떻고 짧으면 또 어떠랴. 시나 글은 읽는 누구와 공감을 하게 된다면 그 글의 쓰인 목적은 달성된 것이라 할 것이다.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못내 이루지 못한 목표를 아쉬워하며 내 인생을 담은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 권은 에세이 형태로 서로에게 이해와 설득을 위한 형식을 택했고, 두 번째는 시문집으로 시와 문장을 엮어 보았다.
두 권의 책을 내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새로운 공부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이 두 권의 책에서 나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열등감과 차별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이 묻어 있다.
두서없이 써내려 가기도 했지만 때론 모방도 서슴지 않았고 창작의 깊은 세계를 접해 보기도 했다. 때론 부끄러움도 있었으나 내가 소중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과감한 분투가 필요함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를 호도하기도 하고 자만심과 만용도 버리지 못했다.
나는 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남아있기 위해서 많은 인내를 감내하며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 지인들에게 또 다른 작은 희망을 주고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하게 된다면 나는 큰 과제를 마쳤다는 안도감도 얻게 될 것이다.
직장에 아직 머물 때 어느 날 퇴근길에 한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사장님, 오늘 아침에 하신 말씀에서 제 마음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쌍방향 소통의 결과요, 게으르지 않는 배움을 선택한 보람인 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도 책상 앞에 앉아 한 줄의 시를 쓰면서 배움에 싫증 내지 않고 인생을 성찰하는 섬세하고 감동적인 문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긴 설연휴에는 폭설이 내려서 꼼작 못 하게 하더니 설 지나고는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감기환자가 많아지고 미세먼지도 자주 등장한다. 아내도 며칠 전부터 감기가 왔다면서 병원에 며칠째 다니고 있다. 나도 몸 컨디션이 좋지 못하더니 콧물이 주르륵 흐르는 코감기 증상이 나타났다. 입맛이 없어졌는지 갑자기 구수한 된장국이 먹고 싶다. 아내는 된장이 없다고 사와야 한다고 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방한복으로 무장하고 편하지 못한 걸음걸이로 마트에 가서 비닐봉지에 담아서 파는 버섯 된장찌개를 사 왔다. 그냥 데워서 먹으면 되는 간편식이었다. 간 김에 내일 아침에 먹을 양상추와 양배추도 한 포기씩 사 왔다. 요즘은 건강을 생각하여 아침에는 양상추에 당근과 사과를 얹은 샐러드와 삶은 계란하나, 쑥인절미 두개, 우유한잔에 그래놀라 조금넣어서 먹는다. 매일 토마토 먹는것은 잊지않는다. 게을러서 몸이 아프고 배우고 싶은것을 못배울까봐 걱정이 크기때문에 먼저 건강을 생각하게 된다. 엊그제 진안에 사시는 장소장님께서 눈밭에 놓아둔 배추 몇 포기 주셔서 돼지고기 구워서 쌈으로 잘 먹고 있다. 조금 남았는지 아내가 배추전을 부쳤는데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된장국이 울엄마가 끓여 주시던 그맛에는 못비기지만 맛있게 먹었다.
눈 맞은 쌈 배추에 누렇게 잘 익은 삼겹살 한 점 올리고 쌈장을 발라 입안에 넣으면 추운 겨울도, 반갑지 않은 지독한 요즘 감기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겠지...
별다를 것 없는 인생살이를 조금이라도 허투루 살지 않으려면 시시때때로 자기를 성찰해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남보다 허물이 많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