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며칠째 엄청난 추위를 동반한 폭설이 내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온통 하얗다. 한파가 몰려오고 있어 눈길이 미끄럽고 넘어질 수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외출을 삼가라고 안전안내문자가 실시간 핸드폰에 답지하고 있다. 올해는 설날연휴 내내 폭설과 한파로 발길을 붙들기도 했다.
그래도 자동차를 타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많이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어서 일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누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제각각이지만 세상은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틀리고 맞는 것을 따지지 않고 퍼즐 맞추듯이 대었다 떼었다를 반복하며 완성된 모양은 아니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어느 것이 옳고 틀렸다고 단정 짓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닌듯하다.
우리가 상식을 갖고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다른 부류는 맞다고 한다. 그렇듯 사람들은 누구의 성품을 닮았는지 모르지만 다양성을 가지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성향일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이 살아오신 세대와 우리들이 살아온 세대가 그렇고 지금 청년들이 살아가는 세대가 또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천천히 흐르는 물을 따라 흐르며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급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가치는 분명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각박한 세상인심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세대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하게 시대적 욕구가 반영된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환경이 각각 다르고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의식주 환경이 다르므로 달라진 환경에서 파생되는 가치의 다름도 인정해야 한다.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반질거리는 길을 걸으며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를 타고 나오려다가 아직도 인도에는 눈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차도는 어느 정도 녹았으나 미끄러운 듯 보였으며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걸어가기로 했다.
모임장소까지는 차로는 평소에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오늘 걷는 길은 눈 위를 걷기에 25분 정도 걸렸다.
공원에는 설경이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니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탓인지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요즘 내리는 눈은 습설이라고 한다. 습기를 머금고 내리는 눈은 잘 녹지 않고 무게가 있어서 시설물에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인심도 변하고 내리는 눈도 변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이렇게 눈이 내리든지 비가 쏟아지든지 바람이 부는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경험하며 별다를 것 없다는 듯이 지나쳐 왔다. 가끔씩은 기후의 변화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맞이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이 든다고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변하지 않는 시절이었기에 당시의 문화나 전통에 영향을 받고 자라왔다. 어른들의 가르침에 항상 겸양지덕을 소중한 덕목으로 알고 살아왔다. 또한 인간관계를 이어오면서는 맹자가 성선설을 기초로 주창한 세 가지 마음을 도덕성 가치로 배우고 실천해 왔다. 자라면서 이웃과 친구를 알아가게 되었고 측은지심을 갖게 되었다. 언제나 나를 돌아보고 자기 성찰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수오지심을 소중한 가치로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나 정의롭지 않는 일에는 나서지 않는 판단력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논리적이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시비지심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한 차별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를 이어 나에게까지 전해진 소중한 가치로 자리하고 있다. 가끔은 나에게도 세상이 변해가는 시류에 몸과 마음이 쏠리기도 했지만 지금도 최소한이지만 지켜가고 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도 아는 이가 없을 때 엄마를 제일 먼저 알았고 다음으로는 아빠와 가까운 친인척이나 이웃 사람들을 익혀왔다. 아직 세상이 두려운 아이 떼는 자주 보는 사람에게는 무한 신뢰를 보내지만 낯선 사람은 견제하고 마음을 주지 않았었다. 그렇게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사회적 적응단계를 거치면서 내편과 남의 편이라는 편 가르기의 사회성을 기르게 된다.
점차 자라면서 나를 사랑해 준 사람과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하게 된다. 다양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면서 친구라는 존재가 만들어지고 우정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안목을 습득하게 된다.
점점 더 자라면서 뼈가 굵어지고 호르몬의 분비를 느끼게 되면 이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연애를 통해 파생되는 아픔도 알게 되고 만남과 이별도 자연스럽게 터득해 간다.
사람은 어찌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점점 이기적이 되고 자기만의 성을 구축하고 자기중심적이 되어간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생존본능을 위한 치열한 경쟁사회에 적응해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평생 사회에서의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당당히 영광스럽고 빛나는 자기 인생을 이룩하고자 하는 욕망일 것이다. 대부분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생태적인 방어본능이 공격성을 띠면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탐욕이라고 한다. 탐욕이란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이라고 했다. 욕심이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대단한 영향력이 있어 날로 커져만 가는 특성이 있다. 버리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이미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욕망으로 스스로를 철저히 옭아매는 덫과 같은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한 인간이 거치는 단계적 과정에서도 많은 갈래로 변화해 간다. 즉 수많은 과정을 겪으며 두려움을 알게 되고 그 두려움과 맞설 용기도 얻게 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 갈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소모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후회와 아쉬움이 시행착오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의 판단에 의해 평생을 좌우한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매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몰입되어 진리를 이야기할 수 없고 정의를 분별할 수도 없다.
나는 오늘 워크숍이 있어서 일찍 서둘러 집에서 나와서 걸었다. 미끄럽지 않은 스파이크가 있는 신발을 신고 눈길을 긴장하며 걸었다. 마치 내 인생의 지나온 길을 걷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대중 앞에 서서 우리를 이해시키려고 자기만의 말하는 기술을 보이는 나름 리더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모습에서나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대중기망을 설파하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공감대의 형성과 진정한 소통의 자세를 견지하고 존중하고 섬기는 자세를 견지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수많은 집단에서 그들만의 문화와 신뢰만이 세대를 이어준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정의임을 모른 체 배척하고 차별하는 가식적인 설득에 심취한 지도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영원히 영향력을 이어가고자 한다. 건전한 기성집단이나 왜곡된 이단 집단이나 모두 더욱 강한 높은 성을 쌓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으려는 자격지심 때문에 고집과 편견을 버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조직문화에 지배되는 사람은 결국 존재감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져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기도 한다. 조직문화와 사회문명은 사람 위에 군림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인성을 중시하고 신의 영역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필요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자칫 세대 간에 조화롭게 화합하지 못하게 되어 모든 계획을 송두리째 망가 뜨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에게 솔직해야 할 가치를 이야기할 때는 전통적인 가치와 새롭게 형성되는 가치를 조화롭게 반영해야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낮아지고 상대를 존중하고 섬길 때 우리 모두의 상호 간에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그 관계가 튼튼해지면 비로소 균형 잡힌 계획을 실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외형적인 본능적 탐욕과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충분한 소통문화의 실천을 할 수 없다면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어렵다. 모두가 신뢰하고 뜻을 모을 수 있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섬김과 신뢰는 성스러운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날마다 새롭고 낯선 순간들을 경험해 보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자존감을 가장 우선시하며 자기의 존재가치를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인생의 깊이와 품격을 갖추므로 삶의 완성도를 이뤄가는 아주 섬세하면서도 민감한 반응의 지혜의 길을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려야 하는 인간의 존엄과 기품과 권위를 지켜가는 것이 세상에 나온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창밖에는 찬 공기가 온 동네를 휘젓고 있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폭설이 내리고 있다.
나는 오늘도 공허함과 정돈되지 않은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있다. 삶을 살아오는 여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가 오늘 나에게 던져진 화두가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보편적이며 절대가치인 존중과 배려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혹 오래전 헤어진 연인에게 속없는 미련이 남아있거나 지우지 못한 흔적을 숙명처럼 여기고 있는 그런 것일까?
이렇게 하얀 눈 때문에 온전한 어두움으로 덮지 못하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많은 의문과 답을 찾으려는 부질없는 생각에 나는 어쩜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늘도 워크숍에서 임기응변에 급급한 리더들이 내 맘에 들지 않으니 사람들의 속내는 참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