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주인공
영화 속 또 하나의 주인공은 80년 언론사 통폐합으로 폐간될 예정인 신문사의 사회부장 고기자입니다. 그는 군부독재에 반대하며, 신문사의 강제 퇴직과 신문사 통폐합에 저항하는 언론인입니다. 언론인 특유의 뻣뻣함과 고집이 있는 사람으로 80년 군부와 전두환에 저항을 합니다. 그러한 저항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그는 사진과 영상을 통한 삼청교육대의 기사 조작에 강력하게 저항하다 결국은 육공 트럭에 매달려 목숨을 잃게됩니다. 언론의 역할과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사람입니다.
80년 언론인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근 기레기로 불리기도 하는 기자에 대한 평가와는 그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입니다. 90년대 언론고시라고 불리던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80년에도 언론사 입사도 그 사람의 능력과 자질을 높게 평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정의로우며, 사회에 대한 냉철한 시선을 가졌다는 평가가 따랐기 때문입니다. 언론사를 신뢰하는 대중에게 기자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신뢰를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기자들은 똑똑하다는 인식 외에도 일반인에 비해 세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상을 보는 현명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현명함과 함께 세상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들의 기사가 힘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정론직필이었습니다. 많은 언론사들이 대표적으로 쓰고 있는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기자들은 엘리트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중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맞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영화에서 그들은 주인공으로 묘사되었고, 세상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캐릭터로 우리의 인식에 남았습니다. 권력자들의 불의에 맞서고, 정의로움을 통해 세상의 바람을 지켜가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그들은 더 이상 엘리트가 아닙니다. 세상을 비판하고, 그 방향성을 주도해 가는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힘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의 흐름을 비껴가기는 어려울 터입니다. 생존을 위한 언론사의 수익 구조는 항상 그들의 기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니 언론인들만 비난하기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80년대처럼 기업을 견제하거나 감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 기업을 팍팍 밀어줘야 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기업의 잘못을 까발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가려주거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으로 기자들의 행동 양식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깐깐하고 고지식하게 세상의 정의와 공정을 말하던 그런 꼬장꼬장한 기자는 더 이 없습니다. 알아서 기업 광고를 수주할 수준을 가늠하고 지키는 기자들은 수두룩한데 말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즈는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하는 바람에 작은 기업들의 기회가 위축되고, 더 나은 것을 소비할 소비자들의 권리가 사라져 버렸다라고 했습니다. 예전의 독과점 형태가 세련되게 바뀌어서 더 이상의 독과점 형태를 보이지 않지만 미디어, 언론이 이를 보충한다고 했습니다.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미디어가 거대 기업들을 지원하니 작은 기업은 기회가 줄어들고 소비자는 거대 브랜드에 종속되어 더 나은 제품을 사용할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하고, 그 반대 급부로 언론의 비호를 받는 이 구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시장 경쟁은 어쩔 수 없다 말하며 말입니다.
80년 군부 독재에 저항했던 기자, 그 해직 기자들의 꼬장꼬장함이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며 지켜야 할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도 없기 때문입니다. 80년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도 나만 보고 생각하는 세상을 살았습니다. 인류의 존속을 이어온 공동체 의식을 외면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는 동안 공공의 질서와 가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언론도 힘을 잃었습니다.
래거시 미디어라며 권위를 말하는 언론들은 과거에 비해 정말 힘을 잃었습니다. 꼬장꼬장하고 대쪽같았던 기자정신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초국적 기업은 거대 자본으로 언론의 힘을 얻고 세상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빅데이터를 말하고, 인공지능을 말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막고, 세상의 힘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권위를 내세우며 더 이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빅데이터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를 넘어선다 주장하며 말입니다. 게다가 소수의 누군가를 위하며 말입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우리 모두에 앞서 언론부터 대체할 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소수의 누군가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80년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꼬장꼬장한 사회부장 고기자, 화석처럼 지나간 이야기로 보여질 수 밖에 없지만 그와 그의 정신은 길을 잃은 우리에게 다시 길을 보여줄 것입니다. 잊었던 대쪽같은 기자정신과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