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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Oct 22. 2024

아들의 분가

서울은 화장실도 좋다

올해 초 백수였더  작은 아들이 취업을 했다. 그야말로 경사중의 경사다. 은둔생활, 칩거생활, 군대제대 후 방에 콕 박혀 있었다. 공무원 시험준비라도 하라는 부모말에  "억지춘향"처럼 4~5년 고시생으로 살았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부모 눈에는 자고 싶은 것 다 자고 언제 되랴 싶었다. 결국 혼자 공부 3년만에 서울로 보내달라고 햇다. 자식 공부하겠다는데 신림동에 월셋방을 얻고 학원도 등록하고 본격적인 공부를 하러 보냈다. 코로나가 터지고 학원들은 대면강의가 없어지고 노트북 갖고 까페에 앚아 공부하고 혼자 2년을 버티다 그만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짐을 싸서 집으로 복귀했다. 


  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청년지원 프로그램에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강남까지 지하철을 갈아타고 두 시간씩 걸려 꾸준히 다니면서 재미를 붙였다. 육개월 과정을 마무리하고 함께 했던 팀원들도 하나 둘 취업이 되어 나가고 아들도 부지런히 이력서를 넣는 것 같다. 예민한 문제이니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무관심한 척 하며 기다렸다. 간간히 술 한잔 할 때면 예전 팀원들과 프로젝트로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고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한 해가 또 저물어갔다.


  이력서를 보고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부모로서 뛸 듯이 기뻤다. 그래도 조용히 기다렸다. 아들은 유난 떠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조용히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는 성격이다. 남편과 나는 작은 일에도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면접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 출근해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회사에서 판단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가는 뒷모습에 부담감이 느껴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돌아온 아들은 지쳐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아들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니 물어 볼 수도 없고 그 날은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서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별 말을 하지 않는다. 큰아들과 며느리고 기대는 하고 있지만 기다리고만 있다. '아들 연락왔어?' 내가 묻자 대수롭지 않은 듯'응, 출근하라는데' 참 쉽다. 그런 좋은 일을 왜 이야기 하지 않았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마음만은 뛸듯이 기뻤다. 아들은 가족이 모인 식탁에서 합격소식을 알리고 축하받고 싶었단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었다.


  학익에서 강남까지 출근시간에 너무 밀려 아들은 이른 새벽이면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탄다. 다섯 시 삼십분 출발해서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씻고 회사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여섯 시 퇴근 후 집에 오면 여덟시 삼십분 정도 되니 거의 출퇴근이 네 다섯 시간은 되는 셈이다. 그 때부터 독립의 이야기가 나왔다. 혼자서 사는 것은 요리도 잘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이니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직장생활해서 저축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들은 주거지를 알아보러 꾸준히 다니는 것 같았다. 지난 주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여러 은행에 청년전세자금 대출도 알아보고 등기부등본도 떼서 보고 마음의 결정이 섰는지 가계약을 하겠단다. 우선 이백만원 계약금을 보내고 일요일 부동산에서 집주인과 만나 계약하기로 말했다.  일요일 서울에 있는 부동산에 함께 가기 위해 출발했다. 아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첫 계약이니 우선 마음이 떨렸다. 길이 밀릴 걸 예상해서 미리 출발했지만 생각보다 길이 여유로웠다.


  한강도 보이고 우뚝 솟을 롯데 타워도 늠름히 서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따라 여유롭게 산책하고 운동하는 서울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가을 하늘이라 맑아서 도봉산의 늠름한 바취도 선명하게 보인다. 배가 고프다는 아들의 말에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와 브런치를 주문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혼자서 커피를 마시거나 노트북을 놓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여유로운 풍경이다. 화장실을 들리러 가니 키도 패드를 대는 자동이고 백화점 정도로 깨끗했다. '서울은 화장실도 좋구나' 돌아와서 말하니 남편이 웃는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주인부부도 함께 앉아 화면을 보며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체크한다. 각자의 서명란에 도장을 찍고 집 주인과 계약자의 사이가 형성되었다. '살아보니 첫 출발이 어디서인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라는 주인아저씨의 말처럼 좋은 동네에서 시작하니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라고 덕담을 해 준다. 이사 날짜를 조용하고 서울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서울은 늘 어려운 곳이었다. 길이 밀리고 사람이 많고 그래서 서울에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서 다녔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길도 넓고 주변도 깨끗하고 공원도 여기저기 잘 정비되어 있어 서울이란 동네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은 깨진 듯 하다. 아들의 분가로 인해 이리부분의 서울에 대한 인상이지만 ' 서울은 화장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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