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재회
고등학교 졸업 후, 강산이 3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 지난 시점에 아주 우연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여고 동창생과 연락이 닿았다. 처음 앓아 본 독감으로 무척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데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학창시절을 소환하게 하는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니 없던 힘도 저절로 생기며 빨리 나아서 반가운 친구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감기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다.
기존의 친구 6명은 가끔씩 연락을 하며 지내다가 작년부터 ‘네잎클로버’라는 팀명으로 모임을 만들고 회비도 걷으며 1년에 2번씩 만나고 있었다.
친구 몇몇은 내가 결혼할 때까지 가끔 소식을 전하다가 연락이 끊겼는데 벌써 30년 이상이 지났다.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변했을지, 첫사랑을 만나는 것도 아닌데 만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많이 설레기도 하고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할지 고민될 정도로 마음이 방방 들뜨기도 했다.
엊그제는 일부러 메니큐어도 발라봤다. 이왕이면 깔끔하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 최대한 단정하게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줄 간단한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도 들렀다.
친구들과 톡으로 잠깐 대화하는데도 자기들만의 암호처럼 줄인 말을 사용하거나 생소한 단어를 사용해서 잠깐 적응이 안되기도 했다. ‘게하?(게스트 하우스)에서 보자’, ‘가랜드(행사용 장식) 준비’ 등.
조금은 바쁜 하루였지만 서둘러서 일을 마치고 조금 여유가 있어 다이소에 들렀다. 전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던 '가랜드(장식용 줄과 커다란 곰돌이 풍선과 작은 풍선)'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고르고 광주로 향했다.
그날은 금요일인 데다가 비까지 내려 교통이 너무 혼잡했다. 원래 '길치'라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오늘은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듯 이동했다.
네비가 목적지를 10km 남겨두고도 30분이 걸린다고 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 역시 약속 시간인 6시는 이미 넘어섰고 화장실 갈 타임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가자니 목이 말라도 물도 못 마시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일촉즉발'의 경험도 했다. 이렇게 교통체증이 심한지 새삼 느꼈다.
단톡에도 택시가 안잡힌다는 둥, 버스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문자들이 수시로 올라왔다. 마음은 이미 이곳에 도착해 있을텐데 멀지 않은 곳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이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숙소는 우리가 다녔던 여자고등학교 근처 '동명동'에 있었다. 서울의 ‘경리단길’과 비슷한 매력을 갖췄다고 해서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분위기였는데 시내 중심가와 가깝고 먹거리가 다양해서 1박2일 일정으로 충분히 멋진 곳이었다. 친구들 모두 나를 만나기 위해 먼 곳에서 하룻밤 같이 보낼 준비를 하고 흔쾌히 내려와 준다니 너무 고마웠다.
숙소에 짐을 먼저 내려놓고 근처 카페에서 한 명씩 기다리느라 저녁 식사 시간을 놓쳤지만 먼저 만난 친구들과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동안 배고픈 줄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가장 먼 곳에서 오는 친구들만 빼고 다 모인 것 같아 간단하게 음료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9시가 조금 넘어 드디어 일곱 친구가 모두 모였다.
세월의 흔적은 조금씩 남아있었지만 팔팔한 이팔청춘의 순수한 모습은 다들 그대로였다. 나이 50을 넘기다 보니 약간의 너스레와 유연함 그리고 아줌마 특유의 폭풍 수다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스타일도 다양했다. 나도 사진찍기를 좋아하지만 나보다 더 모든 순간을 사진에 담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정보가 필요하다 싶으면 순식간에 찾아내는 검색의 달인, 리더의 성격이 강한 친구, 예전에도 그랬나 싶을 정도로 많이 쾌활한 친구, 언니처럼 푸근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구 등...
고등학교 시절 전통악기를 배웠던 친구는 음악을 전공해서 시립국악단에 속해 있었고 나와 비슷한 직종을 가지고 있는 친구도 여럿 있었다.
사는 곳은 광주에서부터 인천, 대전, 전주, 목포 등 다양한 지역이라 한 번씩 모일 때마다 ‘친구들이 사는 지역에 들러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싶었다.
친구들은 밖에서 보면 몰라볼 정도로 '내가 가장 많이 변했다'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의 모습이 별로 기억이 안났는데 나중에 친구가 보내준 졸업 사진을 확인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올백에 안경까지 썼는데 지금은 안경도 안쓰고 짧은 애교머리에 긴 파마머리를 살짝 묶었고 특히 그때와 비교하면 얼굴 살이 많이 빠졌다. 남편에게 내 사진을 보여줬더니 '누구여?' 라며 역시나 몰라봤다.
그동안 왜 소식이 끊겼는지 나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애도 낳고 서로 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다행히 다시 보게 되어 더 고맙고 반가웠다.
친구들도 대부분 자녀들이 다 성장해서 '이제는 자주 만나면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보자'고 얘기했다.
불타는 금요일이어서인지, 맛집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서로 목소리 높여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잔을 부딪히며 한참을 이야기하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가게를 나왔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걷다 잠시 편의점에 들렀는데 문득 눈앞에 ‘추억의 벽’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교문이 우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우리의 모교였다. 고등학교는 이미 다른 동으로 옮겨 건물은 진작 철거되었지만 교문만은 그 자리를 꼿꼿이 지키며 이곳을 다녔던 많은 선배들에게 역사의 흔적과 오랜 추억을 선물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우리가 등교할 때 다녔던 좁은 골목과 자주 애용했던 구멍가게들을 잘도 기억했다.
정말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을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비 때문에 거리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들어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인생네컷을 찍기로 했다. 인원이 일곱이나 되는 데다가 커다란 머리띠나 장식품을 달았더니 공간이 좁아서 찍기가 쉽지 않았다. 맞은 편에도 비슷한 가게가 있어 이번엔 안경 같은 간단한 소품만 걸치고 깔끔하게 찍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가랜드도 설치하고 친구들이 준비해 준 파자마도 입고 편의점에서 구입한 빵과 과자들을 늘어놓고 파티를 했다. 일명 ‘파자마 파티!’
딸이 파자마 파티 한다고 하면 괜히 부러웠었고 작년에 친구들이 모여서 똑같은 잠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니 '나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은연중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바로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작은 소망 하나를 이루었다.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동안 반이며 담임 이름, 다른 친구들 안부를 물어보는데 내 기억력이 워낙 딸려서 호응해 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고딩 시절 몽글몽글 떠오르는 풋풋한 아련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질문만 하면 바로바로 답해주는 기억력 좋은 친구가 나의 자취방은 물론이고 시골집도 함께 간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전혀 기억이 안났지만 그만큼 '친하게 지냈구나' 싶어 그동안 챙기지 못한 미안함이 스멀스멀 밀려들기도 했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하는 서로에게 무슨 영양제가 좋은지, 더 젊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는 일상생활에 쓰는 물품들은 어떤 것이 좋은지 추천하며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나는 전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늦은 시각까지 내내 깨어있는 데다가 빗속에 장거리 운전으로 많이 피곤했지만 다들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보따리 풀어내느라 무거운 눈꺼풀이 사정없이 달려드는데도 불구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애써 참아가는 모습도 정답고 고마웠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예전의 기억 조각들을 다시 꺼내어 보고 봇물 터진 듯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모임 일정까지 의논하고 나서야 잠시 눈을 붙인 시각이 새벽 4시!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늦게까지 꼬박 밤을 새웠던 기억이 없었던 것 같은데 30년의 긴 세월을 한꺼번에 쏟아내자니 그 시간들 조차도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날이 밝자 또 금방 눈이 떠졌다.
숙소에서 준비해 준 빵으로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고 널널하게 늘어져 있다가 날씨가 맑게 개어 시내로 나갔다.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길거리와 가게들을 구경하며 그 시절 우리가 자주 드나들었던 유명한 빵집도 들르고 맛집에서 늦은 점심도 먹었다. 이렇게 발걸음한 것도 수십 년 만인데 언제 또 이 거리에서 함께 모이나 싶어 주변 사람들이 '외국인인가?' 생각할 만큼 자꾸 쳐다봤지만 꿋꿋하게 우리들만의 인증샷도 남겼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무척 똑똑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공부도 많이 했고 누구는 최근까지 직장에서 시험을 봤다고 했다.
'나이 먹고 고생한다'며 서로 응원해주는 모습도 참 돈독해 보였다.
다리도 아프고 날이 습해서 차분히 쉴 만한 장소로 이동했다.
예쁜 카페에 들어가 여러 포즈로 사진도 찍고 맛도 취향도 다른 7잔의 음료를 보면서 문득, 중년이 되어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7공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써니’가 생각났다.
우리도 다시 뭉쳤으니 '오래오래 챙겨주며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고 행복한 시간 보내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시간이 금방 지나 어느덧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고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도 다들 잘 도착했는지, 뭘 하고 있는지 톡으로 재잘거리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지면서 나의 오랜 친구가 곁에 있다는 기분이 어색하면서도 이상야릇하게 좋았다. 조금은 꿈속에서 머무르다 온 것 같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뭉실뭉실 가볍고 훈훈한 여운이 오래 남았다.
정작 묻고 싶었던 질문들은 아직 꺼내보지도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더 했다.
다음 모임은 두 달 후 '서울'이다. 물론 파자마는 항상 지참이다. 한쪽에서 고생하며 이끄는 대로 쫄랑쫄랑 잘 따라 주는 친구들 덕분에 서울 하늘 아래서 다시 뭉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진다!
‘친구들아~ 만나서 많이 반가웠고 즐거웠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